upright 이웃사랑 31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요즈음에 동사 뒤에 붙는 어미 두 가지에 마음이 가고 있었다. 하나는 ‘~가다’. 살아가다, 쉬어 가다, 이런 말이 참 좋다고 느꼈다. 나머지 하는 ‘~내다’였다. 살아 내다. 해내다. 살아내자, 살아낼게. 이 말을 스스로와 누군가에게 자주 해주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책의 제목을 만났을 때 더욱 반가웠다. . 작가는 ‘세월호 생존자 학생’이셨다. 책의 부제는 ‘세월호 생존 학생이 청년이 되어 쓰는 다짐.’ 그런가. 벌써 시간이,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9년이 흘렀으니 세월호 생존 학생들은 스물 일곱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반가웠고, 그 다음에는 호기심이 일었고, 책장을 펼쳐 읽으면서는 이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움. 내가, 기성세대인 한 독자로서, 책을 이렇게 심상하게 여기면서 읽으려고 했구나. ..

〈히어〉 Hear

저자 야마네 히로시는 일본의 심리 상담사이다. 관계에 대해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 중 큰 부분이 ‘대화의 기술’. 작가는 ‘듣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이를 연구해 책을 펴냈다. 흔히 말을 잘 하는 달변가, 센스가 많은 사람, 말 주변이 좋은 사람. 이런 이들을 대화의 달인이라고 여기어 왔다. 하지만 작가는 반대를 말한다. 달변, 말주변이 아니라 그저 ‘듣기’만 훌륭하게 하여도 대화를 원활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이다. “당신은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인가요?” 굉장히 단순한 이 질문이 나의 마음을 건드렸다. 이번 독서의 목표의 최종점은 바로 저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6개의 파트를 통해서 작가는 논지를 전개한다. 《일단 들어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

베니스의 개성상인 1,2

서양 바로크 미술의 한 거장으로 꼽히는 화가 루벤스. 그의 작품 중에 『한복을 입은 남자』 라는 1617년 그림이 전해온다. ​ 한편 임진왜란 때 조선인들이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잡혀간 아픈 역사가 있었다. 일본인들은 포로를 함부로 대하는 일이 많았는데 조선인들을 서양에 노예로 팔기까지 했다. ​ 작가 오세영의 은 조선인이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외국으로 팔렸다는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을 가미한 소설이다. 안토니아 코레아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했다. ​ 루벤스가 제목을 남기지 않아서, 그림 속의 인물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오래전의 역사이기에 한계가 존재하지만, 뚜렷이 발자취를 남긴 사실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어서 매우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다. ​ 포로로 일본에 건너간 ..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었다는 걸. 이태석은 가톨릭 사제로 8년동안 남수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의료를 펼치다 가 갑작스런 암 진단으로 선종하신 분이다. 뉴스를 통해서 나 역시 이 사실은 알았었고 좋은 분이었다는 단편적인 느낌 만 갖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가 발표된지 12년만에 이 책으로 이태석 신부님 이야기를 들 을 때 눈물이 계속 흐를 줄은 정말 몰랐다. 구수환 작가는 2010년의 의 감독이었고 지난 12년 동안 여러 기관, 학교, 교회와 사찰, 교도소까지 곳곳을 찾아가서 이태 석 신부의 삶을 강연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이태석 신부님의 숭고한 삶은 그분이 돌아가시고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 고 있음을 책으로 처음 알았고 그것이 내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경험을 ..

허리케인에서 탈출하기

2005년에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시. 그곳에 카트리나 라는 허리케인이 상륙하여 많은 이들이 위험에 처하고 다치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어린이 소설 는 이 사건을 다루면서 실제 역사를 만나게 하는 책이다.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뛰어난 아동소설가인 작가의 펜 끝을 거쳐서 무척 실감났고 어른으로써 읽기에도 생생했다. 15년도 더 전의 일이고 미국의 한주의 일이라 솔직히 처음에는 좀 거리감을 갖고 책을 펼쳤다. 그러나 ‘자연재해’란 나라를 가리지 않는 것이기에 이내 금새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해서도 정확히 자세히 알게 된다. 카트리나는 4급의 태풍(급수는 총5급)이어서 역대급 이었고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시는 미국에서도 가난한 주로 여겨지는 주였다. 초대형 강력한 태풍이..

임민경〈자해를 하는 마음〉

자해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해 자체가 아니라 지금 겪는 감정적·존재론적 고통이며, 자해는 그저 그것을 해소하거나 밖으로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하다. (15쪽) 처음에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한번 더 글자를 확인했다. 자해를 하는 마음? 그만큼 자해라는 단어는 께름직하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었다. 저자의 직업은 임상심리학자이다. 자해를 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고 상담하는 이, 이 ‘행동’을 연구하는 이. 그의 전문적이고 섬세한 글을 책을 통해 만났다. 책은 이렇게 단언하며 시작한다. ‘자해’행위는 보편적인 인간 행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친 사람’이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어렵고 괴로운 일을 만났을 때 ‘당신’도 저지를 수 있는 일이며 이른바 ‘관심종자’가 관심을 끌려고 하는 행위도 아니라고 한다. ..

청포도

시인이자 독립투사셨던 이육사 님에 대한 책을 읽는다. 아 이분의 시들은 정말 얼마나 멋진가. 독립운동으로 투옥되어 수감생활 할 때의 수인 번호가 264. 그걸 필명으로 하신 건 얼마나 패기있는 일인가. 중국 베이징의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고 끝내 밀고를 하지 않고 온 몸이 상해 비참하게 돌아가셨다. 그 세밀한 묘사에 눈물이 왈칵. ㅠ 그때 안 죽을 수도 있었던 서른 아홉의 최고의 조선 시인이셨다 ㅠ 한 편 적어본다.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제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예전에 김원봉에 대해 픽션화한 책을 읽었었다. 이번 또..

〈인생의 답은 내 안에 있다〉김이섭

혓바늘 치료 중이다. 극한의 정점은 찍고 오늘부터 한결 편안해짐에 신께 감사하며 새로 온 책과 만났다. 저자 김이섭 님은 집필하고 번역한 책 30여권, 전공분야 논문 70권 등을 낸 작가셨다. 이번 책은 제자들에게 멘토링을 하듯이 총 9개의 주제로 인생에 대해 썼다. 극심한 아픔에서 ‘해방’된 직후여서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여서 일까. ㅎ 와, 이 책 기대 이상으로 좋다. 삶에 대한 성찰들, 철학적인 사유로 파헤치는 세상, 감수성 뿜뿜 하는 글 유러피안 스러운 사색, 짧고 위트있는 말. 촌철살인의 한마디 들. 인문학 에세이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여백이 많아 시원하고 구성도 정돈되어 있다. 「인생에 대한 아포리즘」이라는 틀 안에서 펼치는 저자의 글이 어쩜 이리 편안할까. 연말에 마음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