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28

겨울의 색채

언제인가 도서관 서가를 거닐면서 소설 코너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와 우리나라의 소설가가 진짜 많구나. 저렇게 무수한 소설들을 사람들은 얼마나 읽고 있을까 싶었다. 아무리 도서관에 서점에 진열되어 있어도 누군가 찾지 않으면 그 작품은 기약 없이 잊혀질 터. 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한 가을 어느 날, 몰랐던 소설들을 만나는 일을 소박하게 시작했었다. 그 중에는 단편집이 많았는데 이번에 읽은 이야기도 소설집이다. 총 네 편의 단편(중편 하나)을 수록한 서동욱의 . 겨울을 앞둔 지금에 어울리고 미지의 작가를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읽어나갔다. 『당장 필요한』은 25살 마리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냉장고 제조공장에서 일하고 있고 남친 준과 동거하고 있다. 거창한 꿈은 없고 생활을 소박하지만 살아가는 것에..

창작 2023.10.28

〈혼자라는 건〉 오도네라 후미노리

근래에 일본 소설 두 편을 무척 좋게 읽었다.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과, 판타지 전문 작가의 작품. 두 작품이 모두 ‘쟝르소설’적인 면이 강했는데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를 찾다가 이 책을 만났다. . 주인공은 가시와기 세이스케. 돗토리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나 스무살을 맞은 푸릇한 청년이다. 앞 부분에서 세이스케는 큰 시련을 맞는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 사실 세이스케는 고등학생 때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돗토리에서 도쿄로 대학을 왔던 세이스케. 천애 고아가 되었고 수중에 약간의 돈 밖에 없는 채 월세 5만엔의 자취집에 덩그라니 남았다.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도쿄에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둔다. 구직할 생각은 있고, 당연히 해야도 하지만 너무도 막막한 현실에 짓눌려서 세이스케는 그냥 길거리를..

창작 2023.08.06

〈남한산성〉 소설

영화 을 봤었다. 개봉 때는 못 보고 나중에 봤는데 참 명작이었다. 작년에 이 인기였는데 나는 아직 안 읽었다. 을 읽고 나니 이 무척 읽고 싶어졌다. 1636년 12월에서 두 달 남짓의 역사인 ‘병자호란’. 사실 나는 ‘임진왜란’에 비해서는 병자호란에 관심도, 지식도 부족했다. 작년에 영화 「올빼미」를 보고는 그 시대가 궁금해졌고 이번에 소설로 그 사건을 자세히 만날 수 있었다. 옆으로 중국이라는 대륙이 있고, 일본이 있는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늘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명나라가 청나라로 바뀌고, 이 때 조선이 청에 맞서보려고 하다가 패배한 전쟁. 그게 병자호란 이었다. 병자호란이 임진왜란에 비해서 기간이 짧았지만, 그 피해상은 막대하고 극심했음을 이번에 비로소 느꼈다. 당시의 임..

창작 2023.04.16

각본집 〈안개〉 김승옥

1967년작 영화 는 김수용 감독의 멜로 영화이다. 60년대는 한국영화 르네상스기였는데 나도 아직 이 영화는 못 봤다. 이번에 그 영화의 시나리오집이 나왔다. 처음에는 지금 갑자기 ‘안개’ 시나리오가? 놀랐는데 그 계기를 알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노래 ‘안개’ 때문이었다. 정훈희가 부른 가요 ‘안개’는 영화의 OST 수록곡이었다. 얼마전에 영화제에서 정훈희 선생님이 라이브로 부를 때 탕웨이씨가 눈물을 지어서 화제가 됐었다. 원래 각본집, 시나리오집을 좋아하는데 는 1967년작이니 그렇게 많이 기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근데 이 흥미로움은 뭐지? 오래전에 ‘무진기행’ 소설을 읽긴 했지만 까먹고 있었는데 소설가 김승옥님이 직접 각색하였다는 시나리오는 소설의 예술성을 견지하고 있었다. 주인공 ..

창작 2023.01.01

어른의 문장력

정돈된 문장으로 머릿속을 정리하자. (89쪽) 10월 말부터 유튜브를 좀 많이 시청했다. 댓글들을 읽다보니 나도 참여를 했고 한 논쟁이 끝날 때까지 댓글을 살피다 보니 글을 많이 읽게 됐다. 그렇게 한주 한주 흘러 한달을 넘겼는데 언젠가부터 보니 내 글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영상매체 가벼운 소통에 대단한 문장을 기대한 건 아니었으나, 이건 너무 언어파괴 잖아 자책감이 생길 즈음. 김선영의 전작 을 재밌게 읽었다. 이번에 그 후속타가 나왔다고 해서 냉큼 집어들었다. 저자가 말하는 ‘어른’은 무슨 대문호를 일컫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직종에서 좋은 문장으로 말하고 글쓰는 이를 말한다. 어른의 문장은 다음의 세 가지를 반드시 갖췄다는 김선영 작가. 첫째는 대화 목적. 어른의 문장은 목적이 있고 장황하거나..

창작 2022.11.21

북극 허풍담 6

미지의 소설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양가적인 감정을 동반한다. 설레임과 긴장감. 기대를 너무 많이 하면 실망도 할 거 같아서 약간 마음을 비우는 것까지 있다. 덴마크의 소설이라는 것만도 낯선데 북극의 그린란드가 주 배경이라고 한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은 그린란드에서 생업을 갖고 있는 16여명의 남자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연작소설의 형태인데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냥 하나의 이야기로도 느껴졌다. 첫 수록작 는 유독 텐션감을 갖고 읽은 이야기. 기겁할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행히 건전한 결말로 매듭지어졌다. 이 소설들은 이런 분위기인 걸까? 젼혀 가늠할 수 없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와 그런데 두번째 이야기부터는 정말 이야기에 쑥 빨려들어갔다. 1980년대 작품이고 낯선 북극이 배경이기에 오..

창작 2022.11.13

개의 날

열림원 출판사에서 작년에 「프랑스 여성작가 선집」 을 시작했다. 이 시리즈를 통해서 소설 『엄마의 크리스마스』를 읽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이번에도 미지의 소설가와 두근대게 만났다. 이라는 심플한 제목의 소설집을 쓴 이는 카롤린 라마르슈. 6개 단편들의 모음인데 작품들이 서로 무관하지 않고 같은 모티브를 공유한다. 그건 바로 ‘개’의 등장. 『트럭 운전사 이야기』 1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제목 그대로이다. 주인공은 이름은 나오지 않고, 파리에서 브뤼셀까지 화물을 운송하는 일을 한다. 길은 멀긴 해도 단조로와서 아무 생각 없이 질주하거나, 또 반대로 무언갈 깊이 생각하기에 좋다. 주인공은 글을 쓰는 취미가 있는데 정확히는 신문사,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는 걸 즐긴다. 그가 어느날 고속도로에서..

창작 2022.08.07

은희경 〈빛의 과거〉 장편소설

배우 송강호가 칸 수상소감으로 “수많은 한국의 영화팬들에게 감사합니다” 했을 때 나는 찐으로 감동했다. 되게 일반적인 멘트로 들리지만 ‘20년 이상의 한국영화 애호’에 대한 최고의 찬사로 들렸다. 누가 뭐래도 나는 아니까. 갑자기 영화배우 얘기로 시작한 건 은희경 작가의 장편소설을 읽으며 내가 든 기분이 이것과 흡사해서였다. 정말 우연찮게 ‘요즘에 은희경 작가 활동하시나?’라는 궁금증으로 알게되어 구해 읽은 소설. 이야기도 재미있고, 문장력은 더 단단해졌으며, 깨알 같은 유머러스함 등까지 모든 게 나를 만족시켰다. 소설을 읽는 이유가 저 세가지에 거의 포섭이 되기에 충분히 행복한 독서였다. 그런데 는 그 이상의 의미로 내게 자리 매김할 예감이 들었다. ‘소설’. ‘한국소설’이라는 자장 자체에 나를 편입시..

창작 2022.06.30

이렌 네미롭스키 〈무도회〉

마르쉘…, 뭘 원하니? 그게 바로 삶이야. 날 것 그대로의 삶은 그런 거야. (139쪽) 소설가 이력을 읽는데 작가가 요절했다는 정보를 만나면 가슴 철렁해진다. 이렌 네미롭스키 또한 그러한 작가다. 그런데 첫 중편 를 읽으며 몰입하게 되었고 재기발랄한 표현들에 재미를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표제작 [무도회]는 14살인 주인공 소녀의 시점으로 프랑스의 사교계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1928년의 프랑스의 귀족,부자들의 모습은 현재 기준으로 봐도 향락적이어서 충격이었다. 작가 네미롭스키가 얼마나 깊숙히 부유층을 관찰했는가에 놀라게 된다. 소설집은 작가의 첫 컬렉션을 내면서 4편을 선별하여 수록했다. 중편인 ‘무도회’를 거쳐서 《다른 젊은 여자》가 나오는데 1940년작이다. 1928년에서 갑자기 12..

창작 2022.05.15

이담〈나를 지워 줘〉다른 출판

모두가 한마음으로 모르는 체했다. (93쪽) 디지털 장의사 라는 직업을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인터넷에 퍼진 자신의 신상정보나 사생활을 지워주는 일. 는 이 일을 하는 주인공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리고 있다. 특이한 점은 주인공 강모리가 17세 고등학생이란 것. 어느날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하나 둘 누군가의 사생활을 ‘정리’해 주게 된 모리. 그게 마침 소소한 벌이도 되기에 아마추어로 홈페이지를 개설해 활동중이다. 그런데 소설이 시작하면 뜻밖에 경찰서에 불려 간 모리가 나온다. 완전히 합법은 아니어도,나름대로 의뢰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에 그걸로 보람도 느꼈던 모리였다. 그런데 경찰이 인터넷 범죄를 수사하다가 모리의 아이피를 발견해서 일종의 참고인으로 불려간 것이다. 다행히 큰 혐의는..

창작 2022.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