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된 문장으로 머릿속을 정리하자. (89쪽)
10월 말부터 유튜브를 좀 많이 시청했다.
댓글들을 읽다보니 나도 참여를 했고
한 논쟁이 끝날 때까지 댓글을 살피다 보니 글을 많이 읽게 됐다.
그렇게 한주 한주 흘러 한달을 넘겼는데
언젠가부터 보니 내 글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영상매체 가벼운 소통에 대단한 문장을 기대한 건 아니었으나,
이건 너무 언어파괴 잖아 자책감이 생길 즈음.
김선영의 전작 <어른의 문해력>을 재밌게 읽었다.
이번에 그 후속타가 나왔다고 해서 냉큼 집어들었다.
저자가 말하는 ‘어른’은 무슨 대문호를 일컫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직종에서 좋은 문장으로 말하고 글쓰는 이를 말한다.
어른의 문장은 다음의 세 가지를 반드시 갖췄다는 김선영 작가.
첫째는 대화 목적. 어른의 문장은 목적이 있고 장황하거나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을 쓰지 않고, 전해야 할 내용을 무성의하게 빠뜨리지 않는다.
두 번째는 타깃. 어른의 문장은 구체적인 타깃이 있다. 나 혼자 읊조리는 것이 아니고 불특정 다수에게 전하는 말이 아니다. 타깃의 특성을 먼저 파악하여 그에게 가장 맞는 문장을 짓는다.
마지막은 배려. 어른의 문장에는 배려심이 있다. 발신자의 메시지가 수신자에게 온전하게 닿도록 도와준다. 정확한 단어와 풍부한 어휘를 쓰고자 최선을 다한다.
가능하면 퇴고를 거쳐서 표현하는데 이는 읽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려는 노력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예의가 있고,
오래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는 또 그게 걸맞는 배려가 있어야 하는 것.
자신의 SNS에 불특정 다수를 포함한 글은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을 거쳐서 메시지를 발화해야 한다.
결국 말과 글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자 매개체이기 때문에
멀리 보면 그런 관점으로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는 저자의 관점이 정말 공감되었다.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과의 대화라면 혹 무신경해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상대가 있고, 그와 나 사이에 어떤 관계를 형성해갈 의향이 있다면
상대에게 무슨 말과 글을 건넬 때
진심과 노력을 담는 스킬이 필요할 것이다.
김선영의 <어른의 문장력>은 아주 기본적인 문장 쓰기에서 시작해서
이후에 보이지 않는 뉘앙스를 전달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차근히 단계별로 고급 스킬들을 알려주는 친절한 책이다.
처음에 나의 나름대로의 ‘절박함’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들에 점점 빠져들어갔다.
왜 ‘엉망’인 문장과 ‘뜬구름만 잡는’ 공허한 소통이 이어지는지를 뼈 때리게 밝히는 대목들은 진짜 통쾌하기 까지 했다.
꼭 내가 참여한 담론이 아니어도
누군가 두, 세명이 참 재미나게 얘기하는 영상, 책의 일부를 접하면
왜 그렇게 빠져들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겉으로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대화에는
정제된 언어, 상대를 언제나 배려하는 마음, 유머와 재치가 곁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내가 고민했던 문장에 대한 고민이 싹 날라가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말을 참 ‘예쁘게’ 하는 분들을 다시금 존중하는 마음도 생겼다.
노력, 시행착오, 그리고 문장이 갖는 영향에 대한 믿음 없이는
좋고 아름다운 말과 글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는 것.
<어른의 문장력>은 그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
본문 중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는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가 술수나 악의를 써서가 아니라 오해나 태만 때문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지금보다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애쓰자. 원활한 소통, 원만한 인간관계는 모두 내 생각을 어른의 문장으로 정리하려는 수고에서 시작한다. (21쪽)
어른의 문장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맥락을 품고 있다.
문장력은 어쩌면 ‘지레짐작’의 반대말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43쪽)
어른의 문장은, 상대방과의 심리적 거리를 염두에 둔다.
내가 생각하는 마음의 거리와 상대가 생각하는 마음의 거리가, 언제나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53쪽)
어른의 문장은 일을 잘하는 사람의 필수 조건이다. (70쪽)
정갈하게 표현할수록 관계는 단단해진다. (84쪽)
형식을 무시하는 사람이 무시당한다. (189쪽)
어른의 문장은, 작은 규칙도 성실하게 지킨다. (192쪽)
어른의 문장은 허세와 기름기가 없고, 담백하다. (203쪽)
말하듯이 글을 쓰고 글을 쓰듯이 말하라.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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