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림원 출판사에서 작년에 「프랑스 여성작가 선집」 을 시작했다. 이 시리즈를 통해서 소설 『엄마의 크리스마스』를 읽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이번에도 미지의 소설가와 두근대게 만났다.
이라는 심플한 제목의 소설집을 쓴 이는
카롤린 라마르슈.
6개 단편들의 모음인데 작품들이 서로 무관하지 않고 같은 모티브를 공유한다.
그건 바로 ‘개’의 등장.
『트럭 운전사 이야기』
1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제목 그대로이다.
주인공은 이름은 나오지 않고, 파리에서 브뤼셀까지 화물을 운송하는 일을 한다.
길은 멀긴 해도 단조로와서 아무 생각 없이 질주하거나, 또 반대로 무언갈 깊이 생각하기에 좋다. 주인공은 글을 쓰는 취미가 있는데 정확히는 신문사,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는 걸 즐긴다. 그가 어느날 고속도로에서 버려진 개가 위험하게 도로를 달리는 걸 본다. 그는 즉시 내려서 다른 운전자들을 위해 수신호를 한다.
중년을 앞둔 남자의 생각들을 의식의 흐름으로 느끼게 한다.
『천사와의 싸움』
역시 1인칭 남자의 시점이다. 그는 가톨릭 사제이다. 성당에서 신도들과 교류하는 이야기, 성경 속의 한 대목에 대한 영적인 생각들. 그리고 소피라는 여자 신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부가 집전하는 예배당은 18세기부터 있어온 곳인데 그곳을 묘사하는 대목들이 매무 사실적이었다. 성당에는 부속 도서관이 있는데 꼭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마을 주민들이 애용하는 공간이다. 이 부분에서 뭔가 기시감이? 소설 이 떠올랐다. 짧은 단편이었지만 성당 도서관과 책들에 대한 부분이 무척 흥미로왔다.
작품이 끝날 때 쯤에는 소피에 대한 ‘신부님’의 관심이 살짝 지나친 느낌을 준다. 성직자, 그것도 신부님의 ‘시험’으로 그려지는데 그게 심각한 건 아니었다.
경쾌한 터치로 젊은 신부가 겪는 통과의례로 다루어진다.
이 단편에서는 한 성인 (Saint) 일화 속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개가 나온다.
『생크림 속에 꽂혀 있는 작은 파라솔』
앞의 두 소설로 작가에게 적응했다면은, 이번 수록작으로 작가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은 여성이며 가까운 과거에 애인에게 결별을 고했다. 굳이 말하자면 그녀가 그를 버린 것. 허나 그녀의 마음은 복잡하고, 소설은 이를 절절하게 드러낸다.
화자는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러 가던 날 고속도로에서 버려진 개의 질주를 본다.
첫 번째 단편의 설정과 똑같은 상황으로 보인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 다른 두 사람이 어떤 사건을 겪고 무얼 느꼈는지를 견주는 재미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주인공 남자는 불면증이 있고 우울증이라 할 수 있는 광기의 감정에 시달린다.
잡념이나 혼란을 떨치려고 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걸 즐긴다.
이쯤 되니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이 된다.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는 개를 맞닥트린 것이다. 화자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개를 발견해서 급작스레 멈춰야했고 그래서 부상을 당한다.
『별수 없음』
이 단편의 화자는 중년의 여성이다. 남편과 어렸을 때부터 알았는데, 열두살 때 같이 숲에 갔다가 고속도로변에서 차에 치여 피를 흘린 채 쓰러진 개를 본다.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고하면서 시간대를 오가는 이야기이다. 여자는 남편 ‘니코’를 얼마전에 사별했는데 죽음의 이유는 암이었다.
『영원한 휴식』
스무살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 작품집의 모든 이야기는 1인칭 화자의 시점이다.
주인공은 몇 달전에 아빠가 돌아가셨고, 엄마가 운전하는 아우디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가고 있다. 여기에서 화자는 도로를 위험천만하게 달리는 개를 발견한다. 사고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어딘가로 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무관심한 반응이다.
주인공은 비만한 몸을 갖고 있는데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커지는 중이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다가 맛있는 것들을 잔뜩 먹고 자책감으로 자신을 질책한다.
연작소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제대로 경험한 읽기였다.
은 벨기에에서 권위있는 문학상을 탔다고 한다.
실험적이고 미학적이며, 어려운 점들이 있었지만
도발적이면서도 문학다운 소설 이다.
책 중에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선이 있는데, 그런 시선은 나를 흥분시킴과 동시에 나에게 두려움을 준다. (26쪽)
오늘날, 미온적인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정열적인 사람들의 열정은 히스테리와 유사하다. (45쪽)
나는 이런 글을 쓴 여자는, 향유를 품에 안고 무덤으로 달려가는 막달라 마리아 같은 여자라고 생각한다. (63쪽)
하나씩 하나씩 나의 방어벽을 허물어 나를 벌거벗은 채로 부서지기 쉬운 상태에 노출시키는 일. 이 무한한 사랑이란 것. (74쪽)
광기는 집을 짓는 거미와 비유할 수 있다. 그것은 천천히, 실을 분비하기 위한 휴지기를 가지며 집을 짓는다. 광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실이 아니라 흔적의 거대한 혼선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둘은 같다. 그 혼선은 일시적 소강상태를 거치지만 폭풍우를 피할 수 없다. (96쪽)
혼자 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그만이었다. (100쪽)
내게는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필요가 있다. (14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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