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의 시간이자 성찰의 시간

〈어른이 되기 전에 꼭 한 번은 논어를 읽어라〉

사나예 2023. 1. 14. 21:50

 

 

배우나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생각하나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   공자

 

교육학자이자 논어 전문가인 판덩.

그가 이번에 청소년을 위한 논어 인문서를 펴냈다.

 

이천년  중국의 시대에  문파를 이루어 3천명의 제자를 길러낸 공자.

공자의 대표작 ‘논어 10여명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되 원문에 충실을 기한 본서는

어른 독자에게도 흥미롭고 유익하게 다가왔다.

 

한자어를 같이 수록하였고 어려운 글자는 바로 해석해 놓았다.

리뷰에서는 풀이해 놓은 뜻을 위주로 살펴본다.

 

공자가 말하였다. “배우고 제때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 

 

논어에서 매우 익숙한 구절 중의 하나이다.  말은 언제 들어도 마음을 유쾌하고 훈훈하게 한다. 한편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함을 갈수록 느낀다.

그렇기에 되새길 가치가  구절이다.

 

『공자가 말하길. “유야! 안다는  무엇인지 가르쳐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언틋 일반적인 표현같지만 이천년전에 이러한 가르침을 했다는  대단하다.

본서의 작가는 ‘논어 말하면서 동서고금의 현인들의 사상과 지혜를 덧붙이고 있다.

SF 소설가 류츠신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연약함이나 무지가 아닌 오만과 자만이다.”

 

 

『공자가 말하길.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道는 진정한 진리를 일컫는다. 공자가 다소 극단적인 어법으로 저렇게 말한 것은,

그만큼 진리에 대해 강한 열망과 간절함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당나라 때의 시인 ‘한유 이렇게 말했다.

 「도를 깨닫는 것에는 먼저와 나중이 있고, 기술을 익힘은 그것에 정통한가에 달려 있다.」

 

도를 깨닫는  한순간의 배움이 아니라 언제나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다르게 말하면 평생 동안에 깨달아야  도가 있다는 .

 

이는 요즘의 사회에서 말하는 스펙쌓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판덩 작가는 말한다.

어떤 목적과 수단으로써의 배움이 아니라, 배움 자체를 즐기는 것만이 진정한 도를 깨우치는 길이라고 공자는 말했다.

 “깨우침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즐겁다.”

 

공자는 사람을 크게  가지 단계로 분류했다고 한다.

첫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둘째는 배워서 아는 사람,  번째는 곤경에 처해야 비로소 배우는 사람. 마지막은 곤경에 처해도 배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태어나면서부터 지식을 지닌 사람이 있을 수는 있으나, 자신은 살면서 한번도 그런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대다수는 배움을 통해서 앎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공자는 후대에 성인으로 칭송받았으나, 자신 스스로는 성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공자는 빈이락 貧而樂  삶을 추구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가난해도 즐거운 삶을 뜻한다.

공자는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고, 그의 사상은 지극히 풍요로운 유산을 남겼다.

 


 

 

증자가 말하길, “나는 매일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충실했는가? 친구와 사귀면서 믿음이 있었는가?

전수한 것을 익혔는가?

 

충실함, 최선을 다해 열의와 성의를 쏟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전문성이라   있다.

오늘날은 정보와 지식의 홍수시대이다. 그런데 지식은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함을 논어는 말한다.

배운 것을 제때 익히는 , 이다.

 

『공자가 말했다. “옛것을 익히고 거기에 새로운 것을 더하면 남의 스승이   있다. 

 

논어에는 한국사람들이 일상에서,  생각을 표현할  쓰는 단어들이 적지 않음을   있다.

사자성어, 한자어 속에는 유교의 폐습이 담겨서 지양할 것도 있지만

알고보면 뜻이 좋은 언어도 많음을 알게 된다.

요컨대 버릴 것은 버리면서, 아름답고 지혜로운 표현들은 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문화 컨텐츠가 각광받는 시대에 ‘창의성 모두의 화두이다.

 이상 완전히 새로운  없다는데, 그럼에도 끊임없이 참신한 것들은 등장한다.

어떻게 창의적인 생각을 해낼  있을까?

논어는 일견 가장 고루해보이지만,  속에는 지금도 가치를 찾을  있는 것이 곳곳에 숨어 있다.

 

 것을 그저 배격하지만 말고, 존중하는 자세로 바라보며  속에서 가치있는 것을 찾는 노력. 온고이지신은 이것을 말하고 있다.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사색하지 않으면 학문이 체계가 없고,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오류나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

 

논어를 수시로 접하면서 좋은 점은, 그때 그때 와닿는 문구가 달랐다는 점이다.

학이시습지 불역호아, 만큼이나 이번에 좋게 다가온 문장은  부분이었다.

 

배움에는 체계가 있어야 하고, 독단으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는 .

유튜브로 무언가를 배울 때의 맹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열식으로 잡다하게 배운 것들은 생각을 어지럽힐 뿐이다.

엄청 자극적이고 화려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내용들은 뭔가를 비방하거나, 본인을 과시하는  대부분이었다.

이는 기분을 상하게 하는  둘째 치고라도, 올바른 지식도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는 동시에 생각을 해야 해요. 지식을 꼭꼭 씹어서 완전히  것으로 소화시키고 구슬을 꿰듯 배운 내용을 하나로 모으되, 분별력 있게 구별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배우는 동시에 성장할  있습니다.》  145

 

본서의 마지막 채프터는 ‘락지자 樂之者  이르고 있다.

즐거워할 . 배움의 끝판왕이 락지자  .

 

  『공자가 말하였다. 지식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락지자는, 지지자, 호지자 위에 있는 최상의 경지이다. 한마디로 어나더 레벨.

배움을 즐기는 사람들이 공부하고 훈련하는 목적은, 순전히 그것을 정말 좋아해서,  배움의 과정을 누리기 위함이다.

 

지지자 일반적인 학습자이고 ‘호지자 노력하는 학습자이며,

락지자 배움을 즐기고 향유하는 사람이다.

 

공자의 ‘논어 그저 엄근진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공자는 경직되지 않고 유연한 스승이었고, 맛있는 것과 음악, 풍류를 즐길  아는 이였다고 한다.

제자들의 존경을  몸에 받았지만,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어른이 되기 전에   번은 논어를 읽어라> 1.

원전 原典에 대한 선입견을 거두고, 마음을 열고 읽으면 

한층  친근하게 논어를 해석할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