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사브리나 (1954) Sabrina 오드리 햅번

사나예 2022. 9. 25. 23:05

몇 달전에 히치콕의 <이창>을 보면서

고전 영화만의 재미와 멋짐에 감탄했었다.

1950년대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완성도가 있는 영화들이

헐리웃에 많겠구나 어렴풋이 느꼈던.

영화 <사브리나>도 1954년 작품이다.

장르는 멜로 드라마.

이러한 작품에 대해 글을 쓸 때

‘허점’을 지적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주인공들이 삼각관계이고 남자들이 형제 사이라는 것부터 진부하다고 할 수 있고

여성의 주체성 측면은 말할 것도 없이 피동적이다.

하지만 195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를 생각하며

본작이 독립·실험영화가 아니라는 걸 고려하면

당시의 트렌디한 로맨스 영화로 받아들이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큰 기대감은 내려놓고서

보기 시작한 <사브리나>.

그래서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다.

절대 대충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

오드리 햅번, 험프리 보가트, 윌리엄 홀든 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을 기용하여

신분의 차이라는 장애물을 두고 벌어지는 로맨스를 흥미롭게 그렸다.

이러한 삼각관계는 지금에서야 흔하디 흔하지만

이제 막 부흥기에 접어든 50년대 헐리웃에서는 대중적인 코드였던 것 같다.

소재, 설정 자체는 평범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녹여내느냐에 따라

범작과 수작이 갈리게 된다.

<사브리나>는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

배우들의 세심하고 재치있는 연기에 힘입어서 뛰어난 영화로 발돋움했다.

무엇보다도 ‘대사들’에 감탄했다.

지금은 ‘티키타카’라고 부르는 방법.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사들이 너무도 찰졌다.

시나리오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런 주거니 받거니 대사를 한 씨퀀스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브리나>에서는 적어도

세 네 군데에서 그런 ‘말 맛’의 향연이 펼쳐졌다.

로맨스나 멜로라는 장르가 타 장르보다 평가절하되는 때가 있는 거 같다.

하지만 잘 만든 멜로는 그 속에 시대상을 담아내고 있음을 느꼈다.

멜로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의 ‘직업’이 중요하고

그 묘사가 얼마나 디테일 하냐에 따라서 캐릭터에 설득력이 부여된다.

그런 이후에 어떤 ‘장애물’을 만들고 거기에 주인공들을 집어 넣고

시련을 통과하게 한다.

마침내 시련을 극복하고, 주인공 남녀의 사랑이 맺어지는 데에서

특유의 ‘카타르시스’와 쾌감을 전하면서 끝맺는다.

대중적인 멜로는 보수적이긴 하지만

뛰어난 감독들은 그 속에서 은밀한 묘사나, 대사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사브리나>가 대단한 걸작 멜로라는 건 아니다.

다만

오랜만에 로맨스 영화의 ‘가치’를 제대로 느꼈기에

장르 자체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헐리웃이나 우리나라나,

걸출한 로맨스 영화가 안 나온지 몇 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이건 어쩌면 시나리오 작가들, 제작자들의 태만함이 아닐까.

너무 비슷비슷한 장르들이 양산되고,

범죄의 세계라든지 우주SF 같은 쪽에 영화들이 편중되는 현상

꼭 바람직한 건 아니리라.

다 떠나서

오드리 햅번의 독보적인 아우라를 만날 수 있어서

팬으로써 너무도 행복했던

새로운 발견 <사브리나> 였다~~.

필름 스피릿 for Na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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