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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사나예 2022. 7. 17. 22:06

 

 

 

미국에 살았던 경험을 한국인의 눈으로 풀어낸 책을 얼마전에 읽었었다.

미국에 대해 많이, 비교적 정확히 안다고 생각했던 나의 인식을 넓게 해주었기에 재밌고 유익했다.

이번엔 러시아에 대해 쓴 책을 만났다.

 

이건 또 정반대의 경험이었다.

러시아에 대한 두꺼운 책?

 

러시아 역사는 학창시절에 배운 게 다고, 아주 가끔 유튜브에서 러시아를 ‘희화화’하는 영상 댓글에 보면 그냥 웃고 넘어가는 정도.

이게 내가 아는 러시아의 전부였다.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으로 우리들도 새삼 관심을 갖게 된 나라.

역설적이게도 ‘만행’으로 인하여서 러시아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근데 러시아, 러시아 사람을 알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막막한 이 때에 딱 적임자인 작가가 이 책을 펴냈다.

 


 

 

일리야는 방송을 통해서 간간이 접했던 사람.

몇 년전에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는, 반가우면서도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저자가 한국에 온 초창기에 주변의 한국 지인들이 러시아에 대해서 던지는 질문이나 생각은 일리야를 많이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그 일화들은 곧장 나에게도 적용이 되었다.

 

어떤 나라에 대해서 잘 모를 수는 있다. 그곳에 안 가봤다면 그런 게 일면 당연하다.

허나 모르는 상태에서 ‘편파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정보들을 계속 접할 때에는 인식의 왜곡이 일어난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러시아를 1년 내내 겨울인 나라, 겨울에 전국이 꽁꽁 얼어붙는 나라

이런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지리’ ‘날씨’ ‘기후’에 대한 선입견부터 이야기를 꺼내는 일리야.

 

러시아는 한반도의 117배 되는 나라이고, 영토의 65프로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영구 동토’라고 한다.

 

러시아에서도 서부, 북부, 동부, 블라디보스토크 (일리야의 고향)는 

다 기후가 다르고 특색이 달라, 문화와 역사에 큰 차별성이 있다.

근데 한국인들은 러시아 하면, 추위, 겨울의 엄청난 기온,

시베리아의 황량함 이런 것만 주로 떠올린다고 한다.

 

러시아 사람들도 서로가 로를 무척 다르게 대하고,

출신에 따라 짖궂은 농담도 있고 그렇다고 한다.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일리야를 통해서 몰랐던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니까

이해가 쏙쏙 되고, 재미까지 있게 책을 읽어갈 수 있었다.

 


 

 

이 책으로 러시아를 다 알았다고 할 순 없지만,

러시아에 대한 무지 無知가 낳은 오해에서는 한결 벗어날 수 있었다.

 

러시아도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문화를 갈망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

한층 러시아가 가깝게 느껴졌다.

 

좀 뜬금없지만 내가 러시아에 친밀감을 느끼는 한 요소에는

테트리스 게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처음 해봤다.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접하고 오랫동안 향유한 문화는 커서도 내면에 뚜렷이 자리잡는 거 같다.

 

오락실에서 즐긴, 어찌보면 2류 문화였지만 ^^

테트리스에서 늘상 보던 러시아 무희 舞姬의 익살스런 모습,

한 판이 끝날 때 나오던 단조풍의 흥겨운 음악은 나의 무의식에 있었다.

그렇기에 러시아의 음악은 유독 나에게 거부감이 없고

라흐마니노프 교향곡은 나를 심쿵하게 하는, 손에 꼽는 클래식 음악이기도 하다.

 

이참에 러시아랑 손절(?)할 뻔 했는데 그런 생각을 되돌리게 한 한권의 책.

 

유서깊은 전통,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

알고보면 따뜻한 사람들을 느끼게 한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다.

                                             Aslan

       책 에서

한국에 살다보면 러시아에 대한 수많은 편견과 오해를 마주하게 된다.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편견이나 선입견이 불쾌해서라기보다는 이것을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까 하는 막막함 때문이다.  (35쪽)

 

지금 내 정체성은 무엇일까.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국가란 곧 국적, 여권 색깔을 의미한다. 민족이나 언어는 내 여권의 색을 결정하지 못한다. 다른 나라로 귀화하면 배신자 소리를 듣지 않느냐는 질문도 들어봤다.

한국인들은 국적을 바꾸는 걸 자신의 정신적인 뿌리까지 포함한 정체성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55쪽)

 

「할리우드 미소? 그건 위선이야.」

러시아인들이 왜 이렇게 무뚝뚝하고 잘 안 웃느냐고 질문을 받으면 러시아 속담을 꼭 알려준다. “이유 없는 웃음은 정신병자의 증상이다.” 조금 과한 말이지만 러시아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속담이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웃음=진심’이다.

웃음은 항상 진실한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80쪽)

 

러시아 사람에게는 ‘자유’라는 개념과 ‘무질서’라는 개념이 동일하다. 소련이 해체되고 등장한 새로운 정권은 워낙 자유라는 말을 남용해서 이제 러시아 국민에게 자유는

무질서와 불평등, 비리와 횡령, 권력 남용과 다름없는 말이다.  (133쪽)

 

쓰는 작업을 하는 내내 러시아에 대해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게 아닌지 많이 경계했다.

 (331쪽)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러시아와 한국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은 주변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을 잘 파악하고 국력을 키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나라다. 국가적인 이슈가 생기면 모든 국민들이 힘을 합쳐 새로운 역사를 쓰는 데 익숙하다. 조율과 열정이 한국인들의 특징일 수 있겠다.

러시아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한 뒤로는 제국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제국을 이루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희생이나 소모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디테일보다는 방향이 중요하고 끌려가기보다는 먼저 이끌어가려고 한다. 한국이 러시아에 대해 느끼는 이질감은 바로 이런 시각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329쪽)

 

한국과 러시아는, 서로 외면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운명적 관계이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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