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달콤, 살벌한 연인>

사나예 2008. 1. 10. 08:44

박용우와 최강희가 주연을 맡고 신인감독 손재곤이 연출한 우리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은 개봉당시 평단과 관객의 호응을 모두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조금 뒤늦게 비디오로 출시되어 보게 되었는데, 역시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 우리 영화계의 로맨틱 코미디와는 상이한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있는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 하지만 일면은 허무맹랑함도 엿보입니다. 하긴, 파격을 갖춘 영화라면 이런 모순은 어느 정도 내포할 수 밖에 없겠지만요.



황대우(박용우)는 소심한 성격이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을 닮았고, 반면 저돌적으로 사랑에 임하는 면에서는 <101번째 프로포즈>의 달재와 아주 비슷합니다. 도입부에서 대우가 정신과로 예상되는 기관에 찾아가 “자신이 왜 사랑을 하지 않는지”를 역설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은 하소연이어서 웃음을 자아내게합니다. 이 때부터 대우라는 이 캐릭터가 상당히 흥미로워지며 영화에 몰입케 하지요. 사실 TV 단편드라마나 몇몇 영화들에서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오피스텔에서 생활하며 사랑을 꽃피우는 장면이 30대 초반 미혼인 저에겐 늘 판타지로 여겨졌습니다만, 이와 같은 작품에선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대우는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대학강사이고, 미나는 유학준비생으로 친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냉장고 운반을 돕다가 미나를 알게 된 대우는 그녀의 미모와 더불어 미술학도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그녀에게 대쉬라는 것을 하죠. 30대에 아직 제대로 여자도 못 사귀어보고 키스도 못해본 이 남자에게 가혹하게도(?) 그녀는 첫사랑입니다! 그간 많은 영화들에서 ‘쑥맥’인 남성들이 등장했지만 2006년 버전의 손재곤이 직접 각본을 쓴 이 영화는 또 다른 초상을 만드는데 성공한 듯 보입니다. 중반부까지는 상당히 유쾌하고 독특한 아우라를 맘껏 즐길수 있는 요소가 많은데 특히 ‘혈액형 맹신론’에 대한 모티브가 눈에 띕니다. 친구에게 미나를 소개시키는 장면에서 대우가 “혈액형은 독일의 어떤 사람이 재미삼아 연구한건데 일본 사람이 다시 만들었고 그걸 우리나라가 아직도 쓰고 있다”며 개탄을 하죠. 필자 주변에도 심심치 않게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가볍게라도)하는 분들이 있는데.하하.

이미나는 그 속을 알수 없는 여성입니다. 최강희라는 연기자와 더없이 어울리긴 하지만 박용우/대우에 비해서는 애매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스토리상으로는 적절합니다. 대우가 미나의 정체(!)를 알았음에도 미련이 남아 호텔로 찾아갔을때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이 이야기의 지향점이 블랙코미디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검도옷을 속에 입고 온 대우에게 내가 칼로 찌를줄이라도 알았냐고 하는 미나는 너무도 천연덕스럽고, 작별키스후에 오열하며 ‘내가, 한명만 죽였어도 말을 안하는데 너무 여럿을 죽였다’는 대우에 이르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어요. 큭



흔히 말하는 대사발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박용우는 누구나 인정하듯 한국영화계에 색다른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감독 특유의 (어쩔땐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농담은 또 다른 ‘작가’의 출현을 보는 듯 하지요. 하지만 미나(최강희)라는 여성캐릭터만큼은 아쉬움이 저로선 많이 남습니다. 쓸쓸한 표정은 그녀의 살인의 정당성을 연민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장미’라는 친구로 나와 결정적 순간에 자매애를 발휘하는 ‘조은지’는 어떤 면에선 미나의 취약성을 보완해 줍니다.

감독의 독특한 세계관과 배우들의 기대 이상의 호연으로 탄생한 또 하나의 창의적인 사랑이야기 <달콤, 살벌한 연인>. 보기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분명 최근 한국영화계의 신선한 수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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