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불

다산 정약용 평전

사나예 2023. 3. 17. 21:43

새로 나온 책을 만날 때는 늘 일정한 설레임이 있다.

좋아하는 소설가, 에세이스트의 신작일 때 그렇고

베스트셀러를 손에 쥐었을 때도 기대감이 솟을 것이다.

 

그런데 ‘평전’이라는 장르, 논픽션을 만났는데 너무도 설레여하는 나에 놀랐다.

조선 후기의 천재로 불리는 정약용. 그의 평전이다.

 

나는 다산 정약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몇 년전 영화 『자산어보』에서 잠깐 등장한 정약용 씬에 감동했었던 기억.

정조대왕 시절을 그리는 사극 드라마, 영화에 늘 신 스틸러처럼 나왔던 인물.

그러나 막상 깊이있게는 알지 못했던 분이기도 하다.

 

평전으로 만나는 정약용은 ‘픽션’의 단골소재가 되기 충분하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사대부의 가문에서 태어나 관직에 올랐고, 비범한 능력으로 고위직에 등용되었다.

임금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측근이 되어 천재적인 기질로 화성을 건축했다.

 

갑작스럽게 정조가 승하하자 신분이 나락으로 떨어져서 유배형을 받았으며,

18년이라는 짧지 않은 귀양살이를 했다.

 

정약용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서, 당시 조선의 정치를 엿볼 수 있었고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책 저술을 통해 미래를 준비했던 한 선각자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의 위대한 인물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분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분들로 세종대왕, 이순신, 현대의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나는 이번 평전을 읽고 감히 정약용도 베스트 10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다산이 집필한 책들을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특히 『목민심서』, 『경세유표』를 올 해에 꼭 읽고 싶어졌다.

공직자에게는 공정한 판단, 청렴한 생활을 강조하였고

유배생활 중에 집필한 저서를 통해서 조선의 폐단을 진단하고 장래를 내다 본 

다산 정약용.

 

그가 박해받는 말년에 자신의 뜻을 책으로 펼치고 후세에 남겼다는 것은 후대인 우리에게 분명 커다란 선물이 아닐까.

책 중에서

‘자찬묘지명’은 정약용이 귀양에서 돌아와 61살에 고향에서 쓴 글이다. 스스로 지은 자신의 묘비명으로, 숨김도 거짓도 미화도 비하도 없는 내용이다. 36쪽

 

정약용은 서학의 천주사상과 동양의 중용 사상을 함께 받아들여 체화시킨 큰 그릇이었다. 55쪽

 

목민관은 주색에 빠져 거드름 피우면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자리가 아니다. 정약용은 학구적으로, 그리고 중앙에서 관념적으로 추구하던 실학정신을 현장에서 행정으로 실행하고자 했다. 113쪽

 

이 때에는 이용후생을 본질로 하는 새로운 세계관이 자리를 잡아가고, 국내에서도 북학파에 의해 세계의 객관적인 인식과 과학문명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노론 계열은 공리공담론에 빠져 국리 민복보다 낡은 질서와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에만 집착했다. 자신들은 군자당이고 반대파를 소인당으로 몰아 숙청하면서 권력을 독점했다. 152쪽

 

정인보는 정약용을 가리켜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라고 평가했다. 정약용은 “시대를 아파하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167쪽)

 

(다산이 자식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끝을 보면 그 근본을 헤아릴 수 있고, 흐르는 물을 건너다보면 수원지를 찾아낼 수 있다. (172쪽)

 

목민관은 하늘의 권한을 위임받은 자이다.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만 한 일도 세밀히 분별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하게 하고 흐릿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은 살리기도 한다. (238쪽)

 

조선 시대 선비들 중에는 노동을 천시하면서 학문과 과거시험을 본다는 구실로 놀고먹는 유한계층이 많았다. 정약용은 이를 경계했다.

책상 앞에서 독서만 하는 선비들, 즉 현실은 외면한 채 이론에만 집착하는 조선 지식인들의 폐단을 잘 꿰뚫고 있다. (262쪽)

 

시 ‘노인일쾌사 육수효향산체’ 중에서.

노인의 즐거운 일 하나는

붓 가는 대로 마음대로 시 쓰는 것

어려운 운자에 신경 안 쓰고

퇴고하느라 더디지 않고

흥이 나면 뜻을 싣고 / 뜻이 이르면 바로 시를 쓰네

나는 조선 사람이기에 즐거이 조선 시를 쓰노라

그대는 그대의 법을 쓰면 되지

시작법에 어긋난다 떠드는 자 누구뇨

중국 시의 구구한 격률을 먼 곳의 우리가 어이 안단 말인가 (302쪽)

 

이황과 이이를 능가하는 평가를 받을 만큼 훌륭한 정약용의 업적이 조명을 받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와 뜻을 함께했던 남인 세력이 몰락하고, 노론 벽파가 구한말에 이어 국치(조선병탄)에 가담하면서 식민 통치기에도 지배층의 한 축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해방 후 급속한 서구문화에 편입되었다.

즉 “일제에 의한 조선 왕조의 패망과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계승발전 노력이 배제된 채 서구 모델에 따른 근대화의 추구”가 정약용의 업적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318쪽)

 

다산은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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