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 이론과 비평

불편한 시선

사나예 2022. 7. 27. 02:42



유튜브에서 가끔씩 ‘민감한’ 이야기에 댓글로 참여할 때가 있다.
분별없고 맥락없이 달리는 악플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한 귀로 흘리는 법은 익혔다.
더 이상 악플에 상처받지 않는다고 자신했었는데 지난주에 받은 짧은 문장이 이상하게(?) 잊히질 않는다. ‘드럽게 깐깐하네.’

자신만의 ‘소신’이 있는 이라면 그 해당분야에 대해서만큼은 ‘못 참지’ 하는 게 있을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둥글게 살자 하는 말은 꽤 자주 합리화의 레토릭이 된다.

리뷰하는 도서 은 미술학자인 이윤희가 펴낸 미술 비평서이다.
책의 겉표지, 서문에서 지적하는 문제 제기는 참으로 엄청났다.

나도 서너번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깊이 파고들 엄두는 못 냈던 주제.
왜 서양 미술사에는 남자 화가들만 있지?
유명한 그림, 심지어 걸작이라는 회화에는 왜 항상 여성 누드가 있는거지?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해박하지는 못한데
이런 도발적인 궁금증을 이윤희는 전문가로써 과감하게 펼치는 것이다.

그림이 가장 꽃을 피운 시기인 르네상스에 최초로 ‘메이저’한 여성 화가가 등장한다. 당시 인정받는 화가의 한 지표가 영국 ‘왕립 미술원’ 회원 여부인데 거기에 두 명이 있었던 것이다.
책을 통해서 16세기에 시작되어 꾸준히 실력있는 여성 화가가 나옴을 알 수 있음은 반가웠다.

하지만 그들의 여건은, 동료인 남성 미술가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음을 알고는 또 한숨을 쉬게 된다.
단지 꽃과 정물화를 그리고,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소박한’ 화가에 머문 이들이 많았는데 이는 실력과 무관하게 철저히 당시의 풍토 때문이었다.

여성 화가의 성공은 뚜렷한 제한이 있었다. 궁정화가 정도가 당시의 ‘성공’의 최고치였다.

미술을 아주 많이는 알지 못하는 나도 ‘자화상’ 그림을 여럿 안다.
그 대다수는, 아니 전부가 남성 화가들인데 부드럽거나 강렬하거나 다양한 화풍이 있었다.
그런데 여성 화가의 ‘자화상’은 ‘정숙한 여성’의 이미지를 크게 벗을 수 없었다.

초창기에는 심지어 반드시 옆에 누군가 사람이 있고, 피아노를 치거나 하는
보조적인 구도를 반드시 취해야 했다.
남성 화가와 비교하면 이는 뚜렷하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면’에서 그렇지 못한 구도였다.

홀로 외롭게 활동하는 것보다 둘, 셋으로 여성 화가가 있다면 이는 분명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미술계는 이도 가만두지 않았다. 두 명이라면 그 둘을 어떻게든 ‘비교’를 했던 거다.
노골적으로 외모를 평가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비교거리를 찾는 이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었을까.

여성 화가들의 작품이 남성 화가들보다 ‘열등’한 결과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당연한 현상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체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야, 사람을 그리는 그림체가 형성되는데
남성 누드를 배울 기회조차 박탈당했던 여성화가 연습생들이 그림에 발전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남성 화가 ?그리고 관람객-의 시선의 객체가 되기도 했다. 단순히 응시하는 것인가, 관음증인가는 민감한 문제일 수는 있는데,
다수의 작품에서 여성은 결코 주체가 아니었음은 맞았다.

본 책은, 미술사에서 숱하게 수작, 걸작이라 칭송받은 작품들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했다.
이는 기존의 화가, 작품들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리는 이도 보는 이도 남성 편향적이었던 미술의 고질적인 풍토를 밝히는 의도였다.

어린 소녀들이 주인공인 남성 화가들의 그림들.
그림체는 무척 예쁘고, 작품 속 소녀들도 자유분방해서 뭐가 문제지 싶었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소아성애’의 무의식을 분석하는 작가의 글에는 깜짝 놀랐다.
관람자인 나 또한 여성이면서도 얼마나 기존의 ‘유명세’에 길들여졌나를 느꼈다.

그렇게 예민하면 어떻게 소녀를 그릴 것인가 반문할 수 있겠는데
예전에 그림은 사진의 이미지를 가진 대단한 위상을 지닌 예술이었다.
남성 성인 화가로서 소녀를 주인공으로 그린다면 좀 더 아이들을 배려하는 섬세한 감각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어찌 됐든 그림 한점 한점으로 수입을 버는 전문 직업인들이고, 때로 명성도 얻게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여성 화가가 그린 소녀 그림은 어떨까.
한 점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남자들이 그린 소녀상하고 전혀 다른 결이 느껴졌다. 좀 더 자유롭고, 관음증에서 완전히 해방된 소녀를 봤달까.
한참을 보고 나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미소지을 수 있었다.

20세기가 되어 사진 예술이 미술로 들어오고 전위적인 그림이 각광을 받았다.
그 동안 억눌렸던 많은 여성 창작자들은 금기를 깨고, 파격적인 예술 세계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주제는 당연히 이전에 남성 화가/관람자의 시선으로 단정지어졌던,
여성 화가라 해도 셀프 검열해야 했던 소재를 탈피한 것들이 많다.

이 파트에서는 개인적인 취향 탓에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작품들도 많았다.
너무 자극적인 것, 신체를 변형하는 미술에 아직은 보는 눈이 없어서기도 하다.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서, 기존의 미술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많은 여성 화가들의 창작 활동에 지지를 보내고 싶다.

현대미술은 잘 모르겠으나, 이전부터 즐겨온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에서 평소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생각들을 가질 수 있어서 유익했다.
그놈의 ‘여류’ 미술가라는 수식어가 얼마나 차별적인 거 였는지도 확연히 깨달았다.

어느 예술이건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이니 섬세함이니 하는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여성도 격렬할 때가 많지 않은가. 또 남성 화가라고 세상 스윗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말이다.

그냥 ‘그림’일 뿐인데 거 되게 깐깐하다고 혹자는 말하겠지.

지금은 시각 이미지의 시대이다. 모든 매체의 중심에 정적인 비쥬얼, 영상이 있다.
한 점의 그림, 사진, 미술품은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지 않아야 하고,
양성 兩性이 서로 소통해야 할 존재로 존중하는 세계관을 담아야 한다.

한정된 리뷰로 쓰다보니 메시지에 주목했지만
책은 그냥 재밌게, 흥미롭게도 읽을 수 있는 교양 인문서 였다.
(컬처블룸 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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