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연 純然 하다.
영화를 보고 모니터를 끄면서 이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이리 저리 생각한 단어가 아니고 그냥 저절로 떠오르더군요.
개봉한 작년 1월에 이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호감은 있었으나 어쩐지 진부해보였거든요.
<슬로우 비디오>에서 새로운 발전을 보여준 차태현이었으나 이번 영화는 어쩐지 동어반복같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스토리는 뻔하지만 동력이 되는 큰 요소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재하의 노래입니다.
작곡가 진이형. 그는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혼수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깨어보니 자신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있는 걸 알게 된 이형.
그는 다섯명의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는 일을 통해서 그들의 인생에 동참하게 됩니다.
여고생 김윤혜, 이혼위기 아저씨 성동일, 짝사랑 중인 배성우, 치매 할머니 선유용녀의 몸을 갈아타는 차태현.
이형은 그들의 일생일대의 고민과 시련을 해결해주게 됩니다.
새해 초인 1월 4일에 개봉한 <사랑하기 때문에>.
포스터에는 힐링 코미디라는 카피가 크게 자리하고 있네요.
익살스러운 배우들 표정과 동작을 보면 미소가 흐믓하게 지어집니다.
그러니 영화의 기조를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당신의 예상이 거의 맞았어요~!
각각의 사연들이 우리의 주변에서 혹은 바로 자신에게서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결을 지녔어요. 그래서 영화의 소재가 흔하다고 할 수 있지만.
흔하다는 건 그만큼 공감대와 보편성이 있다는 게 아닐까요.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역시 차태현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입니다. 어느 정도 동어반복이라고 할지라도 편안한 그의 연기를 보는 것은 분명 유쾌한 경험이었어요.
영화의 다른 신의 한수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유재하의 노래였습니다.
그동안 영화에서 자주 나오지 않았던 노래들이 스크린을 물들이면서 관객인 저의 마음도 촉촉하고 말랑해졌습니다.
생각보다는 차태현의 원맨쇼의 향연은 또 아니더군요. 코믹한 배성우, 듬직한 성동일, 내공있는 박근형과 선우용녀의 캐릭터가 영화를 탄탄하게 받쳐주었습니다.
저는 김유정을 특별히 칭찬해 주고 싶더라구요. 진이형의 존재를 유일하게 아는 고등학생이자 자신을 스컬리라고 부르라는 4차원 소녀를 맡았는데요.
역할에 주어진 발랄함과 엉뚱함을 연기하면서 나중에 차태현의 모습을 보면서 펑펑 눈물을 쏟는 모습이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카멜레온같은 연기자를 칭송합니다.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으면서 연기력도 있는 배우들을 쳐주는 거죠.
하지만 차태현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대중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자신도 그 경계를 크게 넘을 생각은 없어 보여요.
그렇지만.
항상 같은 모습인 상태에서 한 걸음씩 깊어지는 것도, 깊어지는 거라는 생각이 저는 이번 영화를 보면서 들었습니다.
자신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더딜지 몰라도 깊어지기.
차태현은 이렇게 깊어지는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태현의 연기 철학을 신뢰하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다음번에도 이처럼 익살스러우면서 편안한 캐릭터로 관객들을 찾아오겠죠. 그 때를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아. 순연하다고 했죠. 이 영화.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순연 純然하다.
다른 것이 전혀 섞이지 아니하고 제대로 온전하다.
필름 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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