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말랑말랑한 제목답게 여고생의 첫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 재밌었다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몇 개월만에 다시 찾아본 <사랑은 비 갠 뒤처럼>은
꽤 예쁜 영화로 기억에 남았다.
열아홉살 타치바나 아키라.
촉망받는 육상부 에이스로 지역에서 100m 달리기 최고기록 보유자이다.
그런데 작년에 훈련 중에 부상을 당해 쉬다가 슬럼프를 겪었다.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던 달리기가 좌절되자
아키라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방황한다.
어머니, 절친이 곁에서 사려깊게 보살피지만
아키라 스스로만이 겪어야 하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그 터널 안으로 한줄기 빛이 들어온다.
사랑이었다.
뜻밖에 20년도 더 차이나는 마흔세살 싱글 대디가 그 대상이다.
아키라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점장이다.
아키라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어느날 재활 기간에 목발을 짚고 가다가 비가 와서 피하려고 잠시 그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시키지 않은 음료수를 가져다주며 ‘그 아저씨’는 서비스라고 하며 환하게 웃는다.
정말 별로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친절이었는데
아키라는 비 내리는 바깥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이후로 아키라는 직진이다.
처음부터 점장 아저씨에게 ‘당신을 좋아해요’라고 고백했다.
처음에 점장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직장 상사와 직원 관계로 대했다.
그러다 아키라가 다시 한번 고백을 하고 진지해 보이자
전전긍긍하기 시작한다.
잘 타이르면 될 것 같아서 ‘나 같은 아저씨가 뭐가 좋아?’라고 묻는 점장.
아키라는 ‘사람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어요?’라고 대답했고
그 남자는 ‘같은 또래면 그럴텐데 타치바나상이랑 나 우리라면 이유가 있어야 된다’고 항변한다.
주변에서는 아키라를 의심하고 비난도 한다.
원조교제로 보이면 어떡하냐고 하거나, 도대체 저런 평범한 아저씨가 어떻게 좋냐고.
하지만 차츰 아키라의 진심을 알게 된 주변인들은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영화는 일본 멜로 영화답게 굉장히 여백을 두고 묘사가 된다.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고, 남자가 아키라를 이렇게 저렇게 거절해보고,
아키라가 눈물로 ‘내가 좋아하는 게 민폐냐’고 호소도 해본다.
태풍 7호가 온 날 남자의 집에서 두 사람이 주고 받은 대화는
영화의 백미였다.
청춘은 때로 난폭하고 거칠다.
포기해야 하는 아키라의 가슴은 너무도 아프다.
남자는 소설을 좋아하는 책벌레였다.
그가 아키라에게 건네는 말들은 문학의 글귀처럼 아름답게 전해져 온다.
어떻게 보면 무척 뻔한 소재인데
시나리오의 내용과 전개가 푸릇푸릇했다.
이 영화를 기억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두 남녀주인공 배우의 순수하고 진심어린 연기였다.
고마츠 나나는 일본의 떠오르는 청춘 스타라던데 앞으로 기대가 되었다.
남자배우는 일드에서 몇 번 봤는데 영화의 캐릭터와 참 잘 어울렸다.
사랑은 비 갠 뒤처럼.
영화의 배경은 초여름의 청명한 날들과, 태풍이 오고 지나간 바닷가 도시다.
비가 내리는 도심의 풍경과
책들이 빼곡이 들어찬 남주인공의 집안이 대단히 근사하게 묘사됐다.
주인공이 좋아하는 소설 <라쇼몽>의 한구절을 배우가 창밖을 보며 낭독하는 장면이 멋있었다.
타치바나가 육상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 계기는 사랑, 그 남자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남자 또한 친구 소설가를 오랫동안 질시했던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를 갖게 된다.
갑작스런 변화나, 작위적인 엔딩이 아니라
작지만 뚜렷한 진전 進展을 그린 영화의 표현법이
일본 영화의 메리트를 잘 간직하고 있는 영화 였다.
필름 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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