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세

뤼미에르

사나예 2019. 5. 5. 01:07

 

 

 

 

저자가 도쿄에서 찾은

<뜻밖의 좋은 곳들>

 

저자 임진아씨는 나와는 많이 다르다.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르지만 작가는 ‘능력자’시고^^ 일본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한다.

 

허나 공통점도 발견했다. 서너가지에 불과하지만 꽤 중대한 것들이다.

문구류를 좋아하는 것, 커피 애호가, 그리고 영화·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이었다.

 

앞부분은 다른 ‘일본을 경험한 작가’의 글하고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저자가 도쿄를 여행하거나 방문했을 때 만난 『가게』들을 소개하는 컨셉.

몇 군데에서는 상점 광고 같아서 뜨악하기도 했다.

 

책의 소개만을 읽었을 때는 작가가 일본에서 거주하면서 쓴 에세이 인 줄 알았다.

의외로 그렇지는 않고 여행이나 방문 쪽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저자가 워낙 도쿄에 애정을 갖고 있고, 일본어를 구사하며, 자주 방문하기에 도쿄에 대한 지식은 상당했다.

 

유학이나 체류 하면서 ‘생활자’로서 바라보는 도시가 아니라

자주 방문하는 ‘이방인’의 시선에 가깝다.

이런 관점이 글에 독특하고, 창의적인 개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현재 도쿄의 모습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표현이 젊어서 나보다 한창 어린 분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책의 한참 뒤에서야 작가의 나이를 짐작하는 에피소드를 읽고는 살짝 놀랐다.

<카페 뤼미에르>를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와 선재 아트센터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다는 표현에, 친밀감이 한층 상승했다. (웃음)

 

임진아 작가는 도쿄에 머물면서 ‘지금의 나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면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화롭고 고요하고 안정된 기분』을 선사받았다고 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자주 도쿄를 방문한 이후에 이제는 떠올리면 『그리운』 도시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감회에 젖는 시간이었다.

나는 단 한번 가본 도쿄. 꽤 밀도 있게 보냈던 그 시간이, 임진아 작가 덕분에 소환되었다.

사실 도쿄를 처음 갔다면 흥분에 사로잡히는 게 당연했을 텐데, 나는 그때 일행 중에 한명과 사랑에 빠져 있었드랬다.

그래서 도쿄를 떠올리면 신나는 경험보다는 사람이 생각난다.

 

한때는 이게 좀 억울하다고도 생각했는데^^;

임진아의 글을 읽으며 또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도쿄는 임진아 작가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아주 잘 맞는 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는 작가와 도쿄. 무척 잘 어울려 보인다.

도쿄는 여러 가지로 앞서가는 곳이다만, 일러스트 라는 분야의 최첨단인 게 분명하니까.

 

그리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덕분에 <카페 뤼미에르> 영화를 떠올렸다.

영화 자체도 그렇지만, 이 영화를 좋아하던 시절의 나의 모습을 불러 올 수 있었다.

 

그 속에는 좋은 기억 뿐 아니라, 어딘가 쓸쓸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작가의 솔직하고 담백한 글과 함께, 나의 흑역사스런 시절도 참으로 오랜만에 돌아보았다.

 

일본 영화, 드라마의 현장을 방문했다는 내용의 글과 책을 몇 번 접했지만

《카페 뤼미에르》를 다룬 작가는 처음 봤다.

이것이 그냥 거론한 게 아니라 깊고, 내밀해서 무척 좋았다.

 

멋진 문장들이 많았다.

때로는 몇 번을 되뇌어도 이해가 온당히 되지는 않는 알쏭달쏭함도 있었다.

 

확실한 건 저자의 글 쓰는 내공이 그림 못지 않았다는 것.

 

알쏭달쏭함.

어쩌면 이 표현이 내게는 ‘도쿄’에 대한 단적인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거대하고 번화하며 번쩍번쩍이는 도시 도쿄.

주변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들이 자리한 도쿄.

언틋 이질적이고 모순된 양면을, 임진아 작가는 자연스럽게 이어가면서 여행하고 있었다.

 

이 자연스러움이 <아직, 도쿄>에서 제일 좋았던 것 같다.

거대하고 요란한 것도 도쿄이고,

세심하고 오밀조밀하고 정靜적인 것도 도쿄라는 것.

 

한 도시 자체를 애정, 그리고 희망을 갖고 바라보고 여행한

임진아 라는 사람을 만나게 하는 책이다.

 

 

【 책에서】

 

내 생활 속에서 음료 한 잔에 기대어 잠시 동안 오늘의 나를 덜 작동하는 시간을 종종 만들게 되었다.

(128쪽)

 

아주 잠깐이라도 아무 생각 안 하고 고여 있는 시간이야말로 낮잠만큼이나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127쪽)

 

두근거렸다. 몰랐던 한산한 동네를, 도쿄더라도 어쩌면 절대 올리 없었던 골목을 걷는다는 사실은 찌릿하다.

(77쪽)

 

어떤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일이 쉽지 않은 나에게 이 편안함이 가능한 시간이란 얼마나 소중한지.

(68쪽)

 

 

「카모메 식당」이 좋은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차게 오늘을 살며 내일을 만들어가는 모습만을 진득하게 보여주는 점이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옥수수가 튀겨지는 장면이 슬프게 자리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부엌에 서서 오늘의 음식을 만드는 장면에서 나는 어두운 마음을, 무거운 소망을 본다.

「카페 뤼미에르」의 주인공은 자신이 찾고 싶어하는 것들을 위해 도쿄 여기저기를 다닌다.

그렇게 조용하고 묵묵하게 좋아하는 걸 하며 지내는 삶을, 영화라는 창을 통해 나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247쪽)

 

 

「카페 뤼미에르」의 엔딩 노래 가사를 떠올린다. 언제나 이런 마음으로 내 삶을 살고, 여행을 한다.

좋아하는 것이 있기에 꾸준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을 내심 기다리면서도,

몸을 움직여 좋은 일 쪽으로 먼저 다가가면서 말이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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