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세

나 꿈

사나예 2019. 3. 11. 04:27

 

 

 

 

 

 

 

좋은 리뷰란 무엇일까.

이런 3 요소를 갖춘 글이 좋은 리뷰일 거라 생각한다.

첫째 책의 내용을 적절하게 요약한 것. 둘째 책에서 중요하거나 멋진 글귀를 발췌하기.

셋째는 독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충실하게 표현한 것.

 

미국의 목사이자 시민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킹의 자서전이다.

킹 박사가 스스로 쓴 글들을 엮은이가 잘 선별해서 펴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좋은 리뷰를 쓸 자신이 없어졌다.

자서전을 잘 요약할 수가 없었고 중요한 글을 뽑을 수도 없었다.

 

요약하고 발췌한다는 건, 내가 평가하기에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을 판가름했다는 건데,

사실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마틴 루터 킹의 삶의 경험들이 다 중요해 보였고, 글은 모두 주옥같아서 고를 수가 없었다.

 

5~10쪽 마다 밑줄을 긋는 표현이 나오고, 어떤 장은 거의 매 페이지 밑줄을 그었다.

이러할진대 어떻게 내가 중요한 걸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가장 좋았던 것을 꼽자면 이거였다.

킹이 활동가, 액티비스트 였을 뿐 아니라 투철한 사상가였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 말이다.

킹의 설교, 명연설들 그 스피치 Speech 의 힘이 괜히 뿜어져 나온 게 아니었다.

 

물론 글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그 원고를 바탕으로 연설했겠지만

글은 킹의 사상 思想에서 샘솟아 나온 거였다.

 

이 사상은 성직자이니만큼 우선 성경을 바탕으로 하였고, 철학과 신학은 물론 온갖 정치 이론을 섭렵한 지적인 배경에서도 나왔다.

 

천재에 가까울 만큼 마틴 루터 킹은 학문적인 깊이가 깊었다.

당시의 미국 지식계 전체를 살핀 것은 아니어서 비교는 못했지만, 여느 백인 교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없게 앎이 폭넓었다.

 

꼬맹이인 아주 어렸을 때부터 킹은 인종차별을 몸소 체감했다.

여덟살 때 도심 상가의 구둣가게를 아버지와 같이 갔던 일이 대표적이다.

 

구둣가게에는 손님들이 편안하게 쉬도록 휴식 공간이 있었다.

킹과 아버지는 쇼윈도우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이 다가와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뒤로 갈 것을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건 감히 ‘흑인들’이 제일 앞쪽, 눈에 띄는 데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의사표시였다.

 

책을 읽으면서 킹의 아버지도 훌륭한 분이었음을 느꼈다.

킹은 그래도 투쟁하면서 현실이 조금씩 개선되어가던 것을 보았다.

그런데 킹의 부모님 때는 심각하게 인종차별이 자행되고 있었다.

 

킹의 아버지는 온화했지만 원칙, 정의에 있어서 위배되는 것은 결코 참지 않았다.

아버지는 직원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하고 가게에서 나왔다.

킹은 이러한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한편으로, 그 어린 나이에 차별이라는 장벽을 뼛속깊이 새기게 된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 그리고 번영의 길을 걸은 1960년대.

노예제도는 남북전쟁으로 폐지되었지만 그 잔재는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교육과 의료라는 핵심 영역으로 시작해서, 문화, 사회, 복지 전반에서 흑인은 ‘구별’지어졌다. 앨러바마, 뉴올리언스, 미시시피 등 남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차별을 당했다.

 

버스에서 흑인, 백인 전용 칸이 있고, 병원, 공공장소에서 흑인 입장 금지인 데가 있었다.

오래전 이야기고 다른 나라임에도 이런 실상에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게 말이 되는가.

백인만 입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도 부지기수였다.

 

결정적인 것은 투표권의 부재였다.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의 벽은 실로 강고하고 두터웠다.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난감할 수준이었다.

 

킹은 동지들과 더불어서 함께 이런 현실을 타파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비폭력 저항주의라는 이념을 만들고, 이 신념을 바탕으로 하나씩 투쟁해 간다.

 

정치를 필두로 사회의 기득권을 백인들이 장악한 상태에서 이는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이 보였다.

킹은 나름대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배운 것이 많고, 흑인으로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위치였다.

그러나 인종차별이라는 부당한 악을 방관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굳게 믿었다.

 

차별에 꼭 앞장서지 않더라도 현실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외면하고 침묵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신앙에도 어긋난다고 보았다.

예수의 가르침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해석하면서, 백인들의 차별에 무장 폭동으로 대응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킹의 연설과 행동에 찬성하지 않는 흑인들도 존재했다.

당장 나와 내 자식이 폭력으로 피해를 입는데 그걸 참으라니?

그러나 킹의 활동과 저항 운동은 흑인 사회에서 차츰차츰 인정을 받게 된다.

 

목숨이 위험한 일이었다. 백인 우월주의는 KKK를 비롯해서 여전히 기승을 부리면서 킹의 운동에 필사적으로 맞섰다.

일반 민간인, 무고한 어린 아이들에게 폭탄을 던지면서 킹의 비폭력 운동을 조롱했다.

 

마턴 루터 킹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자신의 운동을 전개했다.

옆에서 지지하던 동료들이 암살되는 일이 벌어졌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핍박은 갈수록 심해졌다.

킹은 기독교 신앙으로 이러한 박해를 극복하고자 애썼다.

워싱턴 연설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뒤흔들었고, 몽고메리 투쟁, 셀마 행진 등 굵직한 운동을 주도하였다. 마침내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영예로운 자리에 올랐다.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저격되는 비극 이후로 인종차별주의는 더욱 맹렬하고 극악해졌다.

킹은 두려워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갔지만 끝내 괴한의 총격을 받고 암살되고 말았다.

1968년 4월 4일 서른 아홉의 이른 나이 였다.

 

백과사전에 한 문단으로 요약되어 있는 마틴 루터 킹의 생애와 비폭력 저항운동.

인터넷에서 단편적으로 보았던, 흩어져있는 사실들을 책 한권으로 모아 보니 좋았다.

 

킹의 성장 환경을 알 수 있어 좋았고, 20대에 수많은 책을 읽고 치열하게 탐구했던 지식인임을 안 것도 감동이었다.

 

미국은 1월 셋째 주, 킹의 생일이 있는 주의 월요일을 휴일로 지정하여 기념한다.

빨간 날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닌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흔이 채 안되어 마감한 짧은 삶.

그럼에도 마틴 루터 킹의 생은 진정으로 충만했고, 후회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많은 지성인들, 양심가들에게 마틴 루터 킹은 영원한 불빛이고 등대이지 않을까.

한권의 책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가 이러한 확신을 들게 했다.

 

리뷰로 미흡하게나마 풀어보니 나도 정리가 되는 거 같다.

지금 또렷하게 떠오르는 한가지 깨달음은 이것이다.

 

개인적이 될 때 사회적이 될 수도 있다.

또, 사회적 이어야만 온전한 자신을 만들 수 있다.

이는 킹의 글 곳곳에서 선명하게 전해져 왔다.

 

킹의 묘비에 있는 비석에는 그가 애창한 가스펠 찬양의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I’M FREE AT LAST.

 

I have a dream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정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어린이들이 백인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입니다.』

 

 

뜨겁고, 정의를 향한 갈망이 불꽃 같아서

자꾸만 뭉클하고 찡하다.

 

인생 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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