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조국이 식민지였고 해방되기 6개월전에 스물여덟의 삶을 마감한 윤동주 시인.
그를 주인공으로 쓴 안소영 장편소설이다.
일제는 조선인 소년들에게 학교에서 ‘황국 신민 서사’를 암기시켰다. 내용이 이렇다.
“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께 충의를 다합니다. 우리들은 인고 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또 일본과 조선의 역사학자들에게
두 나라는 뿌리가 같으며 일본 민족에게서 조선 민족이 나왔다는 왜곡된 주장을 하게 했다. 관공서나 학교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조선말 대신 일본 말을 쓰게 했다.
속전속결로 끝내려 했던 중국과의 전쟁은 만주 사변 이래 10년째, 중국인들의 끈질긴 저항에 부딪혀 예상치 못한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서유럽에서는 두 번째 세계 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전쟁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아시아 식민지 나라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이때가, 일본이 이 지역을 장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50페이지)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윤동주의 삶과 예술을 다룬다.
1부는 스무살이 되어 부푼 가슴을 안고 북간도에서 경성으로 유학 온 동주.
2부는 연희전문학교 문학부에서 학우들과 허물없이 우정을 나누며 문학과 조국의 미래를 고민하던 시절.
3부는 일본으로 유학하여 지내다가 요시찰인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고 의문의 죽음을 맞는 최후 이렇게다.
식민지 조선이어도 시와 문학을 꿈꾸는 윤동주의 마음이 얼마나 순정한지, 그런만큼 참혹한 시대의 어두움에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동주의 마음도 동시에 느껴졌다.
흡사 내가 그 시대에 동주를 알았던 누군가였던 것처럼 가슴이 시리고 울컥했다.
천황을 위해 전쟁에 용감하게 뛰어들자고 독려한 친일 문인들. 입 꼭 닫고 절필해 살아가는 작가들 이야기에 맘이 쓰렸다.
식민지화를 넘어 저 마음대로 조종하는 아바타를 만들 기세로, 일제는 조선인들을 새벽부터 밤까지 매일같이 들들볶고 감시하고 세뇌하였다.
하지만 그냥 비난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임도 알았다.
그것보다 현재 절실한 것은 잊혀진, 묻혀진, 독립운동을 한 조선인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것과 함께 면밀히 병행 할 일은, 친일파들의 행각들을 소상하게 밝혀내는 일이다. 복수심같은 걸로 단순히 욕하고자 함이 아니다.
해방 후에 버젓이 살아간 그들 때문에 기념해야 할 독립운동이 오히려 폄하되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잊혀지는 게 너무도 슬펐기 때문이다. 서러웠다.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는 1945년 조국 해방 몇 달을 앞두고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했다. 동주, 몽규와 교유하고 잘 알았던 지음들도 모두 생사의 고비를 한 번 이상 겪었다. 소설 후반부에 1947년 동주 기일에 추도회가 열리는 장면이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플라워 다방에 모인 청년들은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 죽음의 구덩이에 한 번은 빠졌다 헤어 나온 사람들이었다. 포탄이 퍼부어지는 중국 대륙이나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바로 옆의 전우가 죽어 가고 팔다리가 잘려 뒹구는 것을 보기도 했다. 아니면 징용에 나가 죽음이 늘 부근을 맴도는 강제 노동에도 시달렸다. 사소한 일로 꼬투리 잡혀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일제 말에 혹독한 감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었다. 해방이 되어 그리운 집에 돌아와 있기는 하나 여전히 지금의 삶이 다들 실감 나지 않았다.」
송몽규는 무명의 독립운동가 청년을 대표하는 인물이다.윤동주가 주인공이어서 자세하게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에 일본유학생, 중국 독립군에서 기록으로 남지 않은 채 투쟁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짐작하게 한다.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분들 한 명 한 명의 헌신과 희생이 단 몇 줄로 요약되는 일이 애통했다.
진심을 다해 살았더래도 누군가가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기록을 보관해 지켜오지 않았다면 수십년이 흐르면서 후대에 전해지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윤동주가 지음들에게 몇 편씩 전했던 시 작품들을 모두 생명처럼 지켜서, 그것들을 모아 시집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한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연희전문 동문들인 강처중, 정병욱, 일본 유학생 친구들, 그리고 유가족이 합심하여 동주의 거의 모든 시를 지켜온 것이 참으로 눈물겹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정지용과 백석의 시를 좋아할만큼 시에 조예가 깊었던 윤동주는 소설가 이상도 좋아했다. 책의 대화 중에 “이상 작가가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스물여덟에 죽었으니.”라던 말이 나올 때는 탄식이 나왔다.
동주 자신도 스물여덟에 조국을 포기하지 않은 사상과 조선어로 시를 쓴 죄로 잡혀갔다가 의문사하는 최후를 맞았으므로.
1948년 첫 출간된《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정지용 시인이 서문을 쓴 내용이 통렬하다.
‘일제 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뱉을 것뿐이나, 무명의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314쪽)
참으로 놀랍다. 70년도 전의 동주의 시들이 지금에 전해져 온다.
윤동주가 중국에서 요인을 암살한 것도 아니고 경성에서 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것도 아닌데.
그의 시들 한편 한편이 청춘의 양심과 깨끗함으로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부끄럽게 한다. 가슴이 저민다.
시가 그런 것인가 보다.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의 저항만큼, 악랄한 무리들 앞에서 용기를 갖게 한다.
투명하고 섬칫한 청춘 특유의 생생한 언어로 폐부를 찌른다. 그러면서도 때로 서정적이고 사뭇 낭만적이다.
윤동주의 시들은 밝지 않고 분명 어둡다. 그것도 깊고 짙게. 서정성과 서늘함이 공존하는 점이 기이할 만큼 때로 미스터리다.
일생을 식민지 시대에 살았던 20대의 남자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별은 아스라히 멀리 있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윤동주 시인은 별이 주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잃지 않았다.
별의 찬란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번도 자유로워보지 못했던 일생에서 조국, 자신의 시, 별은 서로 거의 동급의 의미였다.
칠흑같은 암흑 속에 있는 별들이 주는 소망에 온 마음을, 청춘을 다해 믿음을 걸었다.
천재적인 시인이던 윤동주는 자신의 재능으로 자기와 같은 많은 조선의 청년들이 있었음을, 그 양심을 대표해서 전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와 詩語 들에 담긴 조선 청년들의 괴로웠던 마음들과,
잊혀져서 알 수 없는 양심의 행동가들을 나는 떠올릴 것이다.
시와 예술의 영원한 가치를 알려준
윤동주 시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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