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최은영의 단편집을 처음으로 읽었다. 오랜만에 실력있는 소설가를 발견했음을 느껴서 반가웠다. 그것이 ‘뒷북’이어서 머쓱하긴 했지만.
그런데 박지리의 소설도 처음 읽게 되었다. 최은영처럼 실력이 분명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동명고 총기난사
사고.
그것은 어느 해
4월에 발생했다.
박지리의 장편소설 《번외》는 ‘나’를 주인공으로 한다. 나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데 동명 고등학교 3학년생이다. 그는 지난 해 참사 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 학생이다.
<번외>는 ‘나’의 하루를 그린다. 정확히는 1박 2일이다.
그날은 1년전의 사고가 난지 1년이라 학교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나」는 아프다는 이유를 대고 조퇴를 한다.
담임 선생님, 양호 선생님, 교문을 지키는 경비아저씨마저 이런 ‘나’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나는 무작정 학교를 조퇴하고 나왔고 날은 화창했다.
<번외>는 주인공 나가 정처없이 도시의 곳곳을 찾아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로 절반 이상을 그린다.
읽으면서는 사실적이고, 날카롭고, 가끔 쓴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2/3 페이지 정도를 읽으면서 색다른 감각이 찾아왔다.
이것들은 다 전부 사실이었을까?
‘나’가 만난 사람들이 다 실제하는 인물들이었을까?
실제 인물이었다 쳐도, 그 대화들이 다 그대로 나눈 거였을까?
그런만큼 소설은 꽤 몽환적으로 느껴졌다.
오래전에 컬트 영화라는 장르가 붐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때 본 영국 영화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젊은 남자가 세상을 비관적으로 평가하면서, 하루 밤을 새벽까지 쏘다니는 내용이었다.
그때 나는 영화가 굉장히 염세적이라고 느끼면서도 매력을 느꼈었다.
<번외>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적이고, 또 청소년의 심리를 무척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다.
박지리 작가를 <번외>로 처음 만났다. 작가는 30대 초반에 명을 달리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 당신 소설 좋아합니다’라고 쓰고 싶었는데.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중반 쯤을 읽을 때 음악을 들으며 읽고 싶었다. 유튜브 믹스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곡들을 재생했다. 얼마전에 알게 된 뮤지션인데 <번외>와 분위기가 어울렸다.
톡 쏘는 창법은 <번외>의 재기발랄한 문장과 비슷했다.
재능이 뛰어났지만 너무도 일찍 스러진 천재성도 흡사했다.
가슴을 아리게 하는 씁쓸한 이야기들…
<번외>는 이야기의 완결성 면에서도 뛰어난 작품이었다.
희미하지만 한 줄기의 빛이 있고,
막연하지만 만져지는 희망이 있는 엔딩이었다.
책에서
이야, 반가워. 너 역시 살아 있었구나. 네가 떠난 뒤 네가 붙어 있던 문턱 홈을 볼 때마다 나는 슬픈 마음이 들었어. 너무 못생긴 네가 너무 살고 싶어 하던 게 느껴져서.
왜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거야? 응? 네까짓 게 살아서 뭐 한다고.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지내? 행복한 거야? 행복해?
( 88쪽)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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