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 배경이라는데 좀 더 궁금한 정보도 있었지만
스필버그 감독의 오랫만의 연출에 톰 행크스 주연이라니 더 알아볼게 있나 싶었다.
보면서 시작부터, 스타배우는 나오지 않고 대사도 별로 없고
스파이인 아저씨(거의 할아버지)가 조용 조용 나오는 10여분간에 압도됐다.
그간 전개빠른 영화에 익숙했던 탓에 좀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이 거장 감독의 연출은 이내 훅 빨려들게 한다.
처음에는 여느 냉전시대에 있던, 시대의 아픔과 공포 속에 발생한 사건들, 스파이 영화의 일반적인 느낌이었다. 그런데 실화에 바탕했다는 이 영화는 점점 더 복합적인 이야기 구조를 띄어간다.
이야기 자체만으로 너무도 흥미진진하며,
1957년 미국 사회에 소련의 팽팽한 대결 구도, 이제 막 전쟁을 벗어난 동독에서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는 시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대의 거대한 흐름의 역사가 배경에 있으면서도, 독특한 스파이 이야기가 별개로 펼쳐지며
역사와 개인들, 사건이 서로 얽혀들고 긴장감을 주고 몰입시키는 연출이 기막히다.
이게 진정한 역사 영화가 필요한 이유며 영화만이 가진 경탄스런 장점일 것이다.
그냥 역사는 책 몇 권, 신문기사들, 요즘은 위키피디아를 뒤지면 조각조각의 사료들로 찾아질 것이다.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그것을 스스로 구성, 엮어서 이 사건의 의미를 자신이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라는 거대 자본이 들어가며, 최고의 장인들, 스탭들, 테크니션들이 모여서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내면 그 역사(fact)는 가장 정확하고, 가장 의미있으며 감동까지 전달하게 되는 것 같다.
뉴욕의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에게 어느날 변호가 맡겨진다. 뉴욕에 사는 영국 여권 소유자인 소련 출신 화가가 1급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다.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지만 미국은 법의 정신에 기초한 나라였기에 최강 라이벌인 소련의 스파이여도 법정에 세워 재판을 받게 한 것.
많은 변호사들이 꺼리지만 의뢰를 받은 제임스 도노반은 일단 수락을 한다.
그러면서 도노반은 비록 '루돌프 이바노비치 아벨'이 스파이 가능성은 높았지만 변호인의 충실한 본연의 임무를 다한다. 그래서 간신히 사형을 면하고 30년형을 언도받지만 대법원으로 항고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제임스는 주변의 온갖 질시와 테러 위협에 시달리지만 꿋꿋이 자신의 할 일을 한다.
그러다 뜻밖에 사건이 벌어진다. 미국의 스파이이던 공군 조종사가 파키스탄에서 이륙해 소련 영토로 스파이 활동을 하러 비행했다가 격추되어 포로로 잡힌 것이다.
공군 조종사는 중요한 미국의 비밀 정보를 알고 있었고, 루돌프 이바노비치 아벨도 마찬가지로 소련의 핵심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포로의 맞교환이라는 의제가 미 소 양국간에 떠오른다.
제임스 도노반은 자기의 할 일을 다했지만(그것도 온갖 욕 들어가며), 다시 한번 미 정부 CIA의 요청으로 이 포로 맞교환 작전에 투입된다. 공개적으로는 그는 안 알려졌지만 사실상 그가 주역이 되어 그는 혼란 속에 있는 동 베를린으로 향한다.
중반부 이후부터 정말 계속 마음 한켠이 시리며 봤다.
감동을 표현하면서 '묵직하다' '먹먹하다'란 표현을 종종 쓰는데
그것도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차원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와 연출, 연기들이었다.
몇년 전 스필버그의 <링컨>에 감동하고 감탄했었다.
<스파이 브릿지>와 마찬가지로 더이상 뭐 새로울 게 있을까 싶던 너무도 잘 알려진 위인을 다루는 영화라고 막연히 생각했으나
링컨에 대해 다른 면을 알게 되었음은 물론, 미국의 정치, 남북전쟁의 복잡한 전개 양상, 역사까지 영화 한 편으로 알려주는 명작이었다.
<스파이 브릿지>도 마찬가지다.
제임스 도노반이라는 한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 노력하고, 비록 적국의 스파이지만 인간적으로 연민을 가지며 자기 손해를 개의치 않고 최대한 도우려는 그 모습들에서 기존의 냉전 영화의 문법을 훌쩍 뛰어넘는다.
냉전이 서로 마주보고 총을 쏘지 않을 뿐이지 어떤 면에선 더 피 말리는 전쟁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비티>의 산드라 블록, <마션>의 맷 데이먼과 마찬가지로
극히 위험하고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 속에 놓인 주인공(거기에 실제 인물)을 연기한 톰 행크스는
스필버그가 신뢰하는 캐스팅이 굳이 아니더라도 믿고 보는 명 연기를 선사한다.
게다가 그가 오랫동안 다져온 특유의 코믹한 감각은 자칫 무겁고 무서울 수 있는 영화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건 정말 몇년으로 되는 게 아닌 명품 배우의 그것이고 '내공'이란 말로 부족한 인격과 고귀함이 느껴지는 뭉클함이다.
감히 내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예견해본다.^^
<마션>을 두 번보고 마션앓이 한동안 했었는데 <스파이 브릿지>도 그에 못지 않았다.
이 시대에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계속 볼 수 있어 참 행복하다.
사나예_은령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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