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둠 재앙의 정치학

사나예 2021. 11. 19. 04:37

 

 

 

와우. 정말 끝내주는 책을 만났다.

재앙의 정치학 본문이 641페이지, 주석이 102페이지이다.

코로나19 통해 고찰한 재앙의 정치학 책의 주제인데

제대로 인문학 벽돌책.

 

그동안 이러한 책이 취향저격한 적이 별로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봤다.

물론 내가 지식이 부족하고 관심 밖의 주제여서가 컸겠으나

그보다는 저자의태도 있었다.

어디 교수고 무슨 연구하는 학자인데

이런 주제로 낸다, 이런 태도 말이다.

무슨 세미나 수업 듣는듯한 책은 두께까지 대단해 엄두를 못내곤 했다.

 

그런데 본서는 정말 재미가 있었다.

엄중한 주제, 엄청난 분량의 책을 쓰는 저자이지만 작가 자신이 흥미진진하게 써내려간 것을 느낄 있었다.

 

그래서 군데군데 깊이 이해는 못한 부분들이 있지만 (차후 탐구할 것이다)

그래. 이게 학자의 글쓰기이지 싶어서 가독성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저자는 전염병과 전쟁, 화산폭발과 지진같은 자연재해 등을 역사에서 살펴본다.

일들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재앙들이 남긴 후유증은 어땠고, 유산이 있다면 무엇인지를 고찰하고 있다.

 

책 원저는 2020 10월에 발간되었다.

11장으로 구성된 내용에서 후반부는 생생한 작년까지의 코로나 사건들이 나온다.

여전히 현재진행중 이긴 하지만

책으로 비로소 지난 1년을지성적으로 돌아볼 있어서 너무도 뜻깊었다.

 

트럼프 정권, 보리스 총리 재임하던 미국과 영국이

선진국이라는 환상(?) 와장창 부서지게 하는 방역 실패를 기록하였나도,

저자의 날카롭고도 재치 넘치는 글로 있다.

 

종종 등장하는 한국의 방역 사례를 갑자기 만나면 은근히 뿌듯해지기도 했다.

대만도 우수한 방역 성공국임을 알았다.

 

웃프다고 해야 할까.

우리끼리국난 극복이 한국인 취미라고 자조하곤 했었다.

그런데 니얼 퍼거슨은 농담이 아니라,

한국, 대만, 이스라엘 같이 숱한 역경을 헤치며 지금에 이른 국가들이

미증유의 감염병에 가장 대처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 시스템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었는지가 드러났으니,

그러한 부분들을 없앤다면 코로나19 오히려 우리를 건강하고 강력하게 만들 수도 있다. (618)

 

 

책을 덮으며 여러 가지 깨달음, 상념, 감정들이 몰려와서 벅찼다.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정리된 생각을 표현하자면 이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벌어진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해야 겠구나 하는 .

저자가 지난 역사에서 재난과 재앙을 고찰할 있었던

그때의 실재 자료와, 이후의 역사가들이 발굴한 사실, 집필한 책들이 있어서였다.

 

숫자적으로, 단기간의 희생 면에서 인류에게 가장 참혹했던 재난은

14세기와 이후 차례 이어진 흑사병 이었다.

사실 이걸 오롯이 겪어낸 것만 해도 정신없는 일이었을 텐데

후세를 위해 역사를 기록하고, 의미있는 유산들을 남기고자 애쓴 이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니얼 퍼거슨이란 저자와는 이번 책으로 정식으로 만났지만

앞으로 주목할 작가에 주저함 없이 추가했다.

 

일상회복 위드코로나가 되어서 그동안 못해본 야외활동을 하는 것도 좋겠는데

그동안 엄두를 못냈던 이같은 통찰력 번뜩이는 책에 빠지는 것도 괜찮지 싶다.

 

따뜻한 , 귤과 함께

여유롭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만나기에 책이었다~.

 

 

 

 

중에서

 

분명, 파멸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뭔가가 있다. 37

 

코로나19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이며 최악의 패배자는 미국일 거란 생각에 의문을 제기해볼 것이다. 45

 

Conceptio culpa. Nasci pena. Labor vita. Necesse mori.

임신은 죄악이고, 태어나는 것은 고통이며, 인생은 고역이고, 죽음은 피할 길이 없다.’ (60)

 

사망률로만 보자면 1918~1919년의 스페인 독감은 150 심각했지만,

코로나19 가장 많이 덮친 도시들 가장 심하게 창궐한 개월들을 감안해본다면 사태는 스페인 독감 못지않다. (91)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비상사태를 추악한 드라마가 아닌 고전 비극으로 있지 않을까?” 115

 

넓게 보자면 역사는 자연적 복잡성과 인공적 복잡성의 상호작용이다.

어떤 교량이 언제 위태로운 상태가 될지 엔지니어가 예견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거대한 정치 구조의 붕괴를 예견하기란 얼마나 어렵겠는가. (149)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저 단순한 대규모 재난이 아닌 정말로 엄청난 규모의 재난들을 구별해내는 것이다.

재난 발생지가 지구상의 인구밀집 지역인가의 여부, 재난의 중심지 근처에서 발생한 죽음과 파괴가 외곽 지역으로 충격을 계속 전달하는가의 여부다.

요컨대 어떤 재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확산의 여부다.

최초에 가해진 충격이 생명체의 생물학적 네트워크 혹은 인류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는 일정 방식이 존재하는가의 여부인 것이다. (186)

 

세계 최대의 영어 사용국 곳이 보인 코로나 대응 방식이 아시아와 유럽의 동료 국가들보다 그토록 형편없었다는 사실에 대해선 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496)

 

아무래도 우리가 세계의 문제를 너무 많이 관장하려 드는 같습니다. 옛날 로마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574

 

2020 많은 유럽인들에게 있어미국 정부냐 아니면 중국 정부냐하는 선택은 기껏해야프라이팬이냐, 불이냐또는주전자냐 냄비냐하는 선택처럼 여겨진다.

싱가포르 정부마저도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길 강력히 희망한다 입장을 분명히 했다. (599)

 

코로나19 다음에 덮쳐올 재난이 무엇일지는 길이 없다. 우리가 목표로 삼을 있는 것은 그저 사회와 정치 시스템의 회복재생력을 지금보다 강화하는 것이며, 위기를 발판으로 더욱 강해질 있는 체질로 만든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네트워크라는 것의 구조, 관료 조직의 기능부전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해할 있어야 한다.

공공의 안전을 명분으로 하여 도처에서 감시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전체주의 체제에 순응하려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책에서 다루는 최악의 재난 중에 바로 그러한 전체주의 체제 때문에 벌어진 것들이 있다는 점을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609)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경제는 노멀 아니다. 에밀 뒤르켐이 사용한 용어로 표현하자면 이는 새로운 아노미에 가까울 있다.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재미있게 논다라는 단어는많은 이들이 붐빈다 동의어에 가깝다.

거리두기의 시대는 경제적 의미에선 침체의 시기, 심리학적 의미에선 우울증의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Z세대의 우울함이 깊을 것이다. (615)

 

평화는 가까이 있는 걸까? 옛날 흑사병이 터진 덕에 백년전쟁이 중지되었던가?

스페인 독감 때문에 러시아 내전을 피할 있었던가?

재난은 우리를 그룹으로 나눈다. 깨져버리는 이들, 회복 재생력이 이들, 재난을 통해 오히려 강해지는 이들로. (617)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90년대생의 정치질〉 꼰대 정치의 위기  (0) 2023.05.23
〈미끄러지는 말들〉타인의 사유  (0) 2022.05.22
선거로 읽는 한국 정치사  (0) 2021.08.05
있었네  (0) 2019.05.04
제0호  (0) 2018.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