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제0호

사나예 2018. 11. 23. 02:21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움베르토 에코 《제0호》.

 

얼마전에 깨달았는데 책에 대한 기대는 용감함이라는 걸 깨달았다.

특히 처음 만나는 소설가에 대해 큰 기대를 갖는 것은 모험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잔뜩 기대를 했다가 실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마음을 한껏 열고 기대를 유지했는데 소설이 기대를 충족시킨 경우들도 있었다. 

그러한 희열을 겪은 체험이 다시 한번 모험을 감행하게 한다.

 

장편소설 《제0호 》는 세계적인 석학이자 인기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이다.

세계적인, 유작이라는 수식어, 에코라는 존재감은 책을 읽기 전에 꽤 긴장감을 준 게 사실이다. 좋은 의미의 긴장이랄까.

(이하 리뷰는 스포일러가 없는 글임)

 

책은 콜론나 라는 50세 무렵 남성의 1인칭 시점이다.

콜론나는 유령작가를 하거나 대필을 하거나 변변찮은 집필을 하는 2류 작가이다. 그런 그에게 꽤 파격적인 제안이 왔다.

내년에 창간할 새로운 일간 신문에서 편집장 같은 역할을 맡은 것이다.

주필은 시메이라는 사람으로 그는 보이지 않는 발행인의 뜻을 대변하면서 콜론나를 고용한다.

 

평범한 일간 신문을 창간하는데 준비 기간이 무슨 1년이나 필요한 걸까. 게다가 대충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제0호’ 즉 창간 예비판을 12회 발간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그래서 콜론나를 필두로 여섯 명의 기자들이 소환되어 팀을 꾸린다.

매달 한 부씩 제0-1호, 0-2호, 0-3호 이렇게 예비판을 발행할 계획이다.

 

에코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고 그 유명한 장미의 이름을 영화로 봤다.

하지만 소설을 그것도 정통 장편을 읽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적응을 금새 할 수 있었다.

책은 신문 창간이라는 일을 매개로 해서 언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주제가 꽤 에코와 잘 어울림을 느껴서 금새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살짝 고비 (!) 가 왔다.

움베르토 에코라는 작가의 글쓰기가 낯설고 어렵게 다가온 것이다.

언론 얘기라고 해서 종군 기자라던가 거대한 악과 싸우는 그런 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 신문 「도마니」라는 일간지가 사실 창간될 게 아니었다.

 

발행인이자 투자주인 유력인사가 자신의 활동의 입지를 높여보려고 전략적으로 획책한 사업이었다.

중반부까지는 다소 관념적인 주인공들의 대화가 어려웠다.

 

와우 그런데 뒤로 가면서 이야기는 탄력을 받는다.

마침내 엔딩에서는 놀랍고 충격적이면서 지적인 쾌감을 던져주는데 성공한다.

 

미스테리와 반전이 있는 소설의 독자로서 그렇게 결말을 알아차리는데 빠삭하지 못한 편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내가 한번 휙 예상해본 일이 실제로 발생해서 진짜 깜짝 놀랐다.

 

올해에 읽은 영미권, 외국 소설 베스트에 드는 작품이었다.

한번 정리해 봤다. ^^

 

[장편소설 BEST]

1위 <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2위 <제0호> 움베르토 에코

3위 <번외> 박지리

4위 <불문율> 미야베 미유키

5위 <진실의 10미터 앞> 요네자와 호노부

 

 

당부 드리건대 <제0호>의 예비 독자는 절대 스포일러 모르고 읽으시라. ^^

 

이제 2018년이 한달과 일주일 남았다.

남은 기간에 소설 베스트를 갱신할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도 궁금해진다.

 

움베르토 에코의 <제0호>

지적인 재미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준 역작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