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 이론과 비평

진실을 말하다 -문대근

사나예 2020. 4. 20. 22:37



             8·15   6·25  5·18 

                       진실을 찾아서



 

 

 

읽으면서 우선 글을 쓴 저자의 존재와 이력에 놀랐다.

나로썬 처음 안 필자인데 역사와 역사학에 조예가 깊으셨고 새로운 시선, 날카로운 통찰의 소유자셨다.

재야에 묻혀있는 역사학자랄까. 그런데 내공과 연륜이 깊어서 읽는 내내 유익하고 감탄했다.

 

저자는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본 815, 625, 그리고 518 항쟁을 살펴본다.

각자의 사건 사이에 간격이 크지만, 이를 관통하는 흐름을 잘 짚어주어서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저자가 오랜 시간 동안 직접 겪고, 진지하게 탐구한 역사를 담았는데 그 시선이 놀라워서 충격적일 만큼이었다.

그리고 내가 왜 학창시절에 우리나라 현대사가 피상적으로 느껴졌는지를, 이 책으로 비로소 하나씩 알 수 있어서 전율이었다.

 

저자는 815가 진정한 해방이었는지를 물었다. 그것은 온전한 광복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광복, 해방이란 우리나라 국민의 주권이 오롯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의미하는 이어야 한다.

그런데 35년간 일제의 피지배민족이었던 우리나라1945815일에 일본이, 서구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식민통치에서 벗어났다.

 

문대근의 책에서 읽는 서구 열강들은, 이제 막 강점기에서 벗어난 우리나라를 두고 자신들만의 잇속을 철저히 계산하고 있었다. 마치 이 나라를 두고 누가누가 더 실리를 챙기는가를 두고 올림픽이라도 벌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학생 때 암기로 배웠던 각종 선언들, 카이로 선언, 얄타회담, 포츠담 선언 등으로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었다.

 

 

 

상해 임시정부가 해방 직후에 왜 그렇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는지 궁금했는데, 문대근의 책으로 알게 되었다. 임정은 단순히 홀대받은 게 아니라, 미국 군정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따돌려졌던 것이다.

임시정부는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에 대해 확고한 주관이 있었고, 이는 자국의 이익을 철저히 챙기던 루스벨트 정부에게 불편하고 위협적이었다. 그런 속내와 혼란한 국내 정서 속에서 이승만이 초대대통령으로 추대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완전한 광복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38선의 성립으로도 알 수 있었다. 1945817일에 벌써 38선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그어진 것이다.

2차대전 승전국이었던 미국, 소련은 한반도를 전리품으로 여겼고, 새로 생겨날 국가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1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한반도를 절반으로 갈라서 분할해서 강한 자기들이 점령 통치하겠다는 약속을 해서 한국땅을 두 동강 냈다.

 

처음에 이는 국제외교적인 상징에 가까웠고 당시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38선 이북 이남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는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영토를 두고 미국과 소련이 이득을 챙기는 것을 중국이 가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이러한 복잡하고 치열한 상황 속에서 3년이 흘렀고, 한국전쟁은 안타깝게도 필연적인 귀결로 동족 전쟁을 치르게 되고야 말았다.

 

이런 과정들을 읽는 것이 마음 속에서 참으로 피눈물이 났다.

열강에 의해서 해방을 맞이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도 독립운동으로 거의 전투에 가까운 저항을 35년간 해왔었다.

허나 이러한 일을 실제로 한 분들의 염원인 통일국가의 수립은, 너무도 강대한 국가들의 세력 다툼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부산부터 평양까지 한마음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같은 민족은

한 순간에 상대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면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들이댔다.

더 허무했던 건 그렇게 비극적인 희생을 치뤘음에도 1953년에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결과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문대근은 미국, 소련, 중국, 영국까지를 종횡무진으로 탐사하면서 어떻게 우리민족이 유린되고, 국토가 짓밟히며 폐허가 되었는지를 날카롭고 정확하게 설명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이제는 전쟁 염려는 한시름 놔도 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전쟁의 위험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조목조목 증명해 간다.

 

815 이후의 해방공간, 625 한국전쟁이 벌어진 진짜 이유를 충격적이지만 새롭게 안 것이 참으로 유익했다.

 

 

 

한편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518 편이 아닌가 싶다.

 

여전히 그 상흔이 남아있는 518 항쟁. 발포명령을 누가 어떻게 내렸는지도 아직 진상이 미스테리인 가운데, 저자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1980년에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저자는 직접 항쟁에 참여하지는 못하고 광주에 있었는데, 평생 그걸 마음의 빚으로 안고 살아오셨다고 한다.

오랜 시간 아무리 생각해봐도 광주항쟁이 일어난 이유, 전개 과정, 이후 신군부의 은폐에는 이상하고 수상한 점이 많았다는 저자.

당사자들이 사실을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저자는 이런 결론 하나에 이르렀다.

 

5·18을 시민들이 일으킨 게 아니라, 전두환과 신군부가 일으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시에 정권 창출이 지상최대의 목표였던 세력들이, 광주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던 것을 이용하여서 시민들의 저항을 유발하였다는 관점이다.

당시 KBS 등의 보도를 기억해 봐도 폭도들의 유혈사태어쩌고 하면서, 마치 광주시민 전체가 미쳐서 공권력에 반기를 들었다고 규정했었다.

 

저자에 따르면 5·18은 신군부가 주장하듯이 시민이 계획적으로 꾸민 폭동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전두환과 추종세력이 사전에 기획한 시나리오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는 것.

문대근이 광주항쟁을 이렇게 다각도로 연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것은,

518의 실체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이라는 신념 까닭이었다.

 

제일 내게 와 닿은 것은

진실 없는 화해는 진정한 화해가 아니다란 것이다.

광주항쟁으로 가족을 잃은 분들이나, 자신들이 주역이었던 분들은 모두가 광주항쟁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언제까지고 논쟁거리가 되서 이념으로 서로 다투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으신다.

그런데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세력들, 이 권력에 야합했던 이들은 얼렁뚱땅 화해와 통합을 말하고 있다. 언제까지 그 문제로 나라를 분열시키고 국가발전을 가로막을 거냐고 호통을 치는 이들까지 있다.

 

 

 

518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지난 30~40년간 크게 두 가지 배경이었다.

항쟁 직후에 신군부가 철저하게 은폐하고 왜곡한 , 두 번째는 이후로 정치권과 언론에서 518단순한 성격으로 희석시키고, 일부는 날조한 것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군 600명이 내려와 벌인 게릴라전같은 주장이다.

   

 

더불어서 내게 제일 새겨졌던 건

진실은 엄밀한 규명과 확실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이었다.

 

두루뭉술한 규명은 미봉책에 그치고, 피상적이고 얕은 이해는 결국 왜곡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광주항쟁만이 아니라, 다른 세계현대사의 많은 참극들에서 공통적인 역사 해석의 태도라고 저자는 부연했다.

저자의 해석은 여러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었다.

 

518일에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촉발한 강경진압은 항쟁 발발일을 18일로 잡는 뚜렷한 형태였다. 18일부터 말초적이고 살벌한 유언비어가 시 전역에 나돌았는데 이는 여러모로 일반인이 작성했다고 보기 힘든 표현의 유인물이었다.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길에서 학생, 청년을 보는 족족 잡아가서 죽인다는 내용 같은 거였다.

 

이는 민심을 흉흉하게 하고, 규모의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던 학생/시민들을 자극하려는 목적이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한다.

 

 

2020년 현재 아직도 전두환은 내가 발포명령한 게 아니고, 누구 책임인지도 모른다고 발뺌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라더니 골프를 치러 잘만 돌아다니고 있다.

언젠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광주 공수부대 지휘한 사람을 찾아갔는데, 그의 행태는

나는 국가에 충성한 평범한 군인이었다는 태도였다.

여전히 극우인사들은 잊을 만하면 518을 모욕하는 망언을 한다. 모두 천인공노할 일이다.

 

지난해 12월에 ‘518진상규명특별법이 시행됐다고 한다. 40여년간 묻혀지고 기만당해온 역사가 과연 제대로 밝혀질 것인가.

저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특별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자신이 아는 것이 진실의 한 조각에 불과할 수 있지만, 518의 실체가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규명되는 데에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며 글을 마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8·15는 식민잔재가 청산되지 않았고 열강들이 세력다툼을 한 절반의 해방이었고, 6·25는 우리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소모적인 전쟁이었음을 깨달았다.

읽는 과정은 슬프고 치욕스럽고 한탄스러웠지만, 분단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원이라는 것을 더욱 느끼게 했다.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제도와 체제통일만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뼛속에 면면히 이어져온 갈등과 분열을 해결해야 함도 알았다.

 

이를 위해 지난 70여년의 현대사를 직시하며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도.

 

 

문대근은, 한 국가의 역사는 그 나라의 본질적 특성, 정체성,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결정한다고 적고 있다.

역사는 우리의 뿌리이고, 지식의 보고이며, 현재를 보는 거울이다.

 

묵직하고 단순하지 않은 큰 사건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성찰해보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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