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은 19세기에 활동한 영국과 미국의 여성 시인들의 작품집이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으면서 19세기의 소설이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나 생각했었다.
<오만과 편견> <설득> 등을 읽으면서 나는 오스틴이 꽤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작품들만 접했을 뿐 전기라던가 비하인드 스토리는 거의 읽지 못했기에 실제로 작가가 어떤 성품이었을까는 몰랐다.
이 책에서는 몇 편이나마 오스틴의 시들을 읽을 수 있었다. 역시 오스틴은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는 재치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영화로 전기도 나왔던 에밀리 디킨슨. 그녀의 시들을 막상 처음으로 읽었는데 와 무척 느낌이 좋았다.
상처받은 가슴 하나 위로할 수 있다면
상처받은 가슴 하나 위로할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쓰라린 삶의 고통을 덜어 주고
아픔을 가라앉힐 수 있다면
의식 잃어가는 울새 한 마리
둥지로 돌려보낸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내가 그대에게 정박할지 모른다’ ( 『광폭한 밤』) 거나
‘희열은 비통함을 방어하는 갑옷이니’ ( 『상처입은 사슴은 가장 높이 뛰어오르고』)
라는 표현들에서는 감탄했다.
‘진실을 모두 말하되 에둘러서 말해주오’라는 시에서는 시인의 사려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실은 때로 가혹하기 때문에 「따뜻한 이야기로 진정」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들은 샬럿 브론테였다. 와우!! 왜 누구도 내게 샬롯 브론테가 시를 썼다고 읽어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 제인 에어>의 작가로만 알던 내게 샬롯의 시들은 정말 새로운 발견이었다.
삶
삶은 현자의 말처럼
음울한 꿈이 아니란 걸 믿기를.
아침에 흩뿌리는 가랑비는 흔히
상쾌한 하루를 예견하며
이따금 음산한 구름이 깃들어도
다만 흘러가는 것일 뿐.
빗줄기가 장미꽃을 피우는데
오, 왜 비가 내린다며 애통해하는가.
빠르게, 명랑하게,
삶에서 화창한 때는 휙 날아가니
기꺼이, 즐겁게,
날아가는 시간을 누리길!
(…중략…)
허나 희망은 넘어져도 다시
탄력 있게 튀어 올라 정복되지 않는다네.
금빛 날개는 여전히 자신만만하여
우리를 거뜬히 지켜줄 만큼 강인하다네.
대담하게, 겁 없이,
영광스럽게, 의기양양하게,
용기가 절망을 진압하기를!
『후회』라는 시에서 절절하게 윌리엄 이라는 남성을 호명해서 시를 읽다가 순간 심쿵했다.
윌리엄이라는 사람과 무슨 애틋한 일이 있었기에.
영혼의 아침이 환하게 떠올라
저 건너 나를 위한 낙원이 펼쳐졌지만
윌리엄! 천상의 휴식마저도 뒤로하고
나는 돌아보렵니다, 당신이 불러준다면!
그땐 폭풍이 요동쳐도
내 영혼의 환희를 앗아가지 못합니다.
한때 당신 가슴이 내게 천국이었건만
내게 다시 허락될까요?
제인 에어에서도 느꼈지만 샬롯 브론테는 내면이 강인한 여성이었음에 분명하다.
정열로 투지를 벼리고
그 열기로 내 삶은 요동칩니다.
폭풍우와 투쟁하는 나무처럼
황폐한 야생의 경고에 휘고 쳐져도
인간의 힘은 무서운 마력에 저항하지요.
전장에서 돌아와 뜨겁게 당신의 사랑을 갈구하면
당신은 감히 피할 건가요?
그땐 당신은 함부로 내 불길을 꾸짖고
내 광기 어린 오만함을 비난할 건가요?
아녜요, 내 의지는 아직 통제할 수 있어요.
정말이지 높고 자유로운 당신의 의지와
사랑으로 이 오만한 영혼을 길들일 겁니다.
맞아요, 다정하기 그지없는 사랑으로.
( 『정열』 부분)
샬롯의 시 중에 가장 감명깊었던 시는 『기쁨』이다.
기쁨
진정한 기쁨은 도시의 공기로 숨 쉬지 않고
예술의 신전에서도 살지 않으며
장엄한 목소리가 깃들어 있는
유적지와 첨탐에도 머물지 않는다네.
그런 곳이 아니라네! 고귀한 자연이
웅장한 숲 한가운데에 궁전을 세운 곳
수풀이 위풍당당하게 펼쳐진 곳
아름다움이 생동하는 곳에서 찾기를.
수천의 새가 낭랑하게 노래하는 곳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과
수백의 시냇물이 미끄러지듯 함께 흐르며
자연의 웅장한 연주회를 여는 곳에서 찾기를!
잔잔한 달빛에 잠겨
숲이 곤한 잠에 빠진 곳으로 가기를.
혹은 나뭇가지가
밤의 허허로운 소리를 쓸어내는 곳으로 가기를.
나이팅게일의 지저귐이
그윽하게 울려 퍼지는 곳으로 가기를.
적막하고 고요한 계곡의 선율이
숲속 가득 울릴 때까지.
가파른 산 위로 올라가 앉아
사방의 장관을 보기를.
언덕과 골짜기, 길게 흐르는 물결,
저 멀리 수평선.
( …중략)
그때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잔잔하고 엄숙한 기쁨이 스며들고
영혼은 고요한 기운을 감지하네.
흡사 순한 정적 같은 것.
처음 들어보고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많았는데 모두 신선했다.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작가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소설가인 루이자 메이 올콧, 루시 몽고메리의 시들은 반갑고 색달랐다.
어디선가 명언이나 경구로 들어서 알고 있던 문장이 여성 시인들의 작품이었음을 아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미국의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의 다음 시의 첫문장이 바로 그런 많이 들은 시구였다.
세상의 방식 : 고독
웃으라, 그러면 세상이 함께 웃으리라.
울라, 그땐 그대 혼자 울게 되리라.
늙고 슬픈 땅은 기쁨을 빌려야 할 처지라
제 문제로도 벅차구나.
노래하라, 그러면 산이 응답하리라.
탄식하라, 공기 사이로 사그라지리라.
메아리는 기쁨이 담긴 소리는 되울려 퍼뜨리고
근심 섞인 소리에는 움츠리는구나.
(중략)
기쁨의 회당은 넓어서
웅장하고 경건한 행렬에 충분하지만
고통의 좁은 통로에서는
한 명씩 줄지어 지나가야 하리라.
사랑이 오네요
전사처럼 그가 등장하길 바랐지요.
육중한 무기를 쨍그랑대고 나팔을 불며,
그런데 잠행하듯 다가왔어요.
발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신부를 찾아 말을 타고 온 왕자처럼
갑옷이 햇빛을 받아 이글거릴 줄 알았지요.
그런데 밤이 기울어 빛이 흐릴 때
그가 곁에 와 있었습니다.
신비롭고 비범한 눈빛으로
심장을 깨워 급작스레 타오르게 하길 꿈꿨지요.
그런데 오래전 알던 친구처럼
친숙하고 다정한 얼굴이었습니다.
영혼을 휘저어 뒤흔들며 올 줄 알았지요.
광폭한 폭풍에 바다가 요동치듯이.
그런데 그는 잔잔하고 아늑하게 위로했고
평온하게 그녀의 삶을 완성했습니다.
이들 시인들을 비롯하여.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 조지 엘리엇,
메리 셸리, 마가렛 풀러,
에이미 로웰, 실비아 플라스, 크리스티나 로세티 의 시인들의 작품들을 담았다.
19세기의 영국과 미국의 여성 시인들의 작품이 무척 뛰어나고 완성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엘라 휠러 윌콕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두 부류의 사람이.
죄인과 성자는 아니다. 누구나 알 듯이
선한 이에게 악한 면도 있고, 악한 이에게 선할 면도 있으니.
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아니다. 부를 평하려면
양심과 건강 상태를 먼저 고려해야 하므로.
겸손한 사람과 오만한 사람도 아니다. 짧은 인생에서
거만한 태도로 일관한 이는 사람으로 치지 않으니.
기뻐하는 사람과 슬퍼하는 사람도 아니다.
쏜살같이 흐르는 삶에서
저마다 웃을 일도, 울 일도 생기는 법이므로.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짐을 짊어지는 사람과 짐을 지우는 사람을 말한다.
어디를 가든
언제나 이 두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허나 이상하게도, 이런 사실 또한 깨닫게 될 것이다.
단 한 명이 짐을 짊어질 때
스무 명은 짐을 지운다는 사실을.
당신은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홀로 짐을 지고 가는 이의 짐을 덜어주는 쪽인가?
아니면 짐을 지우는 쪽인가?
당신이 감당해야 할 노동과 걱정과 고민까지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지게 하지는 않는가?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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