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누군가에게는 의외로 잘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길 때까지 그렇게 계속 살아가시길 바란다.
당신 지금 아주 잘하고 계신 거다.』
(65쪽)
빵 터지는 웃음을 주게 한 책.
이벤트를 봤을 때 단연 이 책이 생각났다.
박정민의 <쓸 만한 인간>.
영화배우 박정민이 2013년에서 2016년까지 매달 한편식 잡지에 기고한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지난 2월에 도서 리뷰를 했었는데 http://blog.yes24.com/document/11085461
몇 달이 훌쩍 지나서 다시 책을 펴보았다.
역시나 웃음 유발하는 책이다.
몇 년동안 무명에 가까웠던 저자는 조금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기고를 시작했다.
3년후에는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인지도가 생성되었다.
<쓸 만한 인간>은 박정민이 글 쓰는 실력이 출중하며, 글로 웃길 줄까지 아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한다.
충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박정민의 학창시절 로부터,
분당에서 만나 현재까지 친구로 지내는 주변인들 이야기가 깨알같이 펼쳐진다.
그가 대학에 다니다가 연기의 꿈을 품고 자퇴하면서부터 그의 생고생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한 배우의 ‘성공기’같은 자기계발 책은 전혀 아니다.
담담하고, 웃픈 이야기를 함께 읽어가노라면 박정민의 성장기를 마주할 수 있다.
연기라는, 정직한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고 처음에 혹독한 훈련기를 거쳐서
끝내 꿈을 이룬 이야기.
그 과정들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지기에, 그 어떤 허례허식도 찾아볼 수가 없다.
20대 남성의 자학 개그가 좀 거슬리긴 하지만, 그조차 ‘병맛’코드로 읽히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대화, 문자 메시지는 그가 스타이기 전에 대한민국을 사는 보통 남자임을 느끼게 한다.
박정민도 흑역사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이 언젠가 돈을 모아서 분당 공원에 ‘불효자상’을 세우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다고 한다.
때로 자기가 나름 잘 생겼다고 얼굴부심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특이하게 생겼다고 표현하는 저자.
저자의 가족들이며 친척들도 어찌나 재미있는지, 아니면 박정민의 표현이 재치있는 건지 시종 웃음을 터트렸다.
이모들이 여럿 있는데 한결같이 ‘우리 정민이가 배우치고 잘 생긴 건 아니지’라고 한다는.
팩트 폭격하는 친척들의 이야기.
그래도 박정민은 자기가 자세히 보면 잘생겼다고 한다. ㅎㅎ
중학교 때 친구 중에 강원도에 별장 있는 친구가 있었어서
낙원을 꿈꾸며 방학 때 놀러 갔는데.
먼저 누군가 일행이 와 있었고 술을 마시고 있었단다.
근데 그분들이 배우들이었고, 그 중에 박원상 이란 ‘아저씨’가 있었다.
박원상씨는 ‘나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영화에 나온다’고 했고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중학생 박정민은 그 영화를 찾아봤다.
3년, 한 달 분씩의 글에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신변잡기를 기본으로 깔고, 설날과 추석, 크리스마스 절기,
자신이 오디션 본 영화들, 출연 예정 작품들,
영화광의 눈으로 해설하는 온갖 영화들 이야기.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때의 기억,
군대에서 많이 아팠던 시절,
사회 문제에 대한 소신 있는 생각들.
한편의 에세이에서 담을 수 있는 장르는 그야말로 다 담은 것 같다.
버라이어티 하게.
동주의 송몽규로 반하고 찾아본 책이지만
한편의 훌륭한 에세이를 만나서 더 좋았었다.
리미티드 에디션이 양장본으로 재발매 되었는데 품절이 된 상태다.
발매 개시 하면 꼭 만나고 싶다.
가치와 희망을 생각해 본다.
그건 ‘웃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글을 마무리하며 들었다.
청년이, 아이들이 마음껏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귀한 가치도 드물지 않을까.
또 희망이란 웃을 수 있을 때 찾아오는 것 같다.
한없이 진지하면서도, 또 마구 웃음을 제조하는 박정민 식 문장들.
그가 초심을 잃지 않고, 이 책처럼 즐겁게 그렇게 깊어져 갔으면 좋겠다~~.
【책 중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인생도 당신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영화 같은 인생일 것이다.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느라 수고가 많다. 그래도 우리 모두 ‘절망’치 말고 고구마를 심은 곳에 민들레가 나도 껄껄 웃으면서 살아가자. 어차피 끝내는 전부 다 잘될 테니 말이다.』
(53page)
『꽤나 큰 메리트다. 살아있다는 것 말이다.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잠을 잘 수도 있고 꿈을 꿀 수도 있다.
살아 있다는 건 경험 속에 있다는 거다. 나는 지금 노트북에 묻은 짜장면 국물을 한달 동안 지우지 않으면 결국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난 맨날 경험해. 경험쟁이야.
아무튼 경험하다 보면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다. 새롭게 배우기도 하고 적응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괜찮아지는 것일 테다.』
(64page)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평범했었고, 남들 다 하는 외식만큼만 외식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어도 평범했고, 짜장면 하나에 너무나 평범했지, 야이야이야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평범하고 그렇게 또 평범했지.
평범한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평범함을 흘리고 다니던 시절,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압도적인 무존재감, 그리고 그건 현재분사로써,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압구정동 언저리에 멍하니 서 있으면 어느새 청담동 아주머니가 고급 외제차 키를 살며시 건네기 일쑤다. 그럼 나는 그 키를 받아 발레파킹 아저씨한테 살포시 건넨다.
“저쪽 분께서 발레파킹 주문하셨습니다. 찡긋.”
또 예를 들면, 야외 촬영 중에 액션을 기다리며 집중하고 있는데 본인 앞으로 승용차 한 대가 살포시 정차하고 창문이 징 내려간다. 아주머니 왈,
“여기 이렇게 길을 막고 촬영하시면 안 되죠. 아저씨.”
“네?”
“여기 사는 사람도 생각해주셔야죠. 왜 길을 막고 찍어요.”
“그렇죠. 저 사람들 이상하죠. 저도 지금 그 생각하고 있었어요.”
“스태프 아니구나. 죄송해용.”
“아닙니다. 제가 경찰서에 신고할게용.” 』
(67page)
『누구에게나 잊지못할 팀이 있을 것이다. 2005년 결성 이후로 무승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는 야탑동 오합지졸 축구팀 ‘타이거 블레이즈 범범’. 우리 골대를 노리는 저 팀도 적이지만, 내게 패스를 주지 않는 저 새끼도 내 적이었던 그 팀. 자책골을 넣었다고 집단린치를 가하던 그 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2015년의 <동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적재적소에 패스를 주는 동료들과 자책골을 넣어도 만회 해주는 능력 있는 동료들을 만난
이 시간이 앞으로 큰 자양분이 될 것도 같다. 그리고 그들이 ‘타이거 블레이즈 범범’을 잊게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좋은 팀에 속해 있을 수는 없어도 언젠가 좋은 팀에 속해 있을 수는 있을 거다.
모두가 강팀에 속해 있을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자신의 팀을 강팀으로 만들 수는 있을 거다.
뒤에서 받쳐 주는 동료들을 믿고 다들 지금 하고자 하는 일들 모두 다 이뤘으면 좋겠다.』
(145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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