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강순규의 《여행, 길을 잃어도 괜찮아》.
여러 국가, 대륙들을 여행했지만 중남미를 가보지 못한 저자의 오랜 꿈이었던 여행을 이룬 이야기다.
많은 나라를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영어 회화가 자유로와야 스페인어권을 여행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낭만적인 여행기인데 뜻밖에 영어 학습 동기부여를 주기도 한 책이다. ^^
책장을 펼치면 허를 찔린 기분이 든다. 중남미 6개 나라의 풍광들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꾸미지 않은 대자연이 주는 웅장함, 소박한 원주민들의 자연스러운 미소들.
아마 이래서 여행 전문가도 중남미를 꿈꾸는가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무척 부끄럽기도 했다. 외국인들이 아직도 한국 위치를 잘 모르고 중국, 일본하고 헷갈려하면 발끈하면서도, 나는 중남미를 얼마나 모르는가는 1도 생각을 안했던 것이다.
멕시코, 파나마의 위치는 알았지만 다른 나라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코스타리카는 위치를 몰랐다.
심지어 몇 나라는 브라질이 있는 남미에 있는 줄 알았다. ㅠ
중남미의 나라들은 거의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오랫동안 스페인 제국주의에 신음하다가 벗어나고도 미국의 간섭을 받았다. 내전이 빈번하게 벌어졌고 이는 미국의 은밀한 개입이 작용했다.
조선시대에 일본, 중국의 침략을 받고 일제강점기를 치룬 우리나라 만큼이나,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외세의 간섭으로 오래 고통받았다.
다른 건 몰라도 남한 사람 입장으로서는 역사적으로 중남미에 무척 동질감이 느껴졌다.
멕시코의 진면목을 느끼게 한 여행책이기도 했다.
멕시코 하면 로망은 커녕, 여행 기피 국가였던 게 사실이다. 간혹 뉴스로 들려오는 끔찍한 마약갱단의 암살들, 치안이 엉망일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멕시코는 여행 대국이었다. 여행 순위로는 6위를 육박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멕시코의 주요 수입원 4가지는 석유, 해외로 간 국민이 송금하는 돈, 마약, 그리고 관광이라고 한다.
멕시코에도 정부가 정한 ‘여행 자제 지역’이 있다. 허나 드넓은 대륙에서 그런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많은 관광지가 비교적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멕시코 현지에 사는 한인들의 조언은 새겨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낮에는 자유롭지만 어두워지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
멕시코에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엄청 많았다. 세계문화유산 지정 보유지도 다른 서양권에 뒤지지 않는다.
멕시코시티는 여러 매력이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하나만을 위해서도 충분히 갈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그림’이다.
미술에 전문적인 식견이 있지 않고 더군다나 멕시코 미술은 문외한이지만,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들은 정말 멋있었다.
그의 그림이 담고 있는 뜨거운 저항 의지, 멕시코 민중에 대한 사랑을 그림을 보면서 느껴보면 좋겠다.
중남미의 여섯 국가들은 각자만의 고유한 매력들로 넘실대고 있었다.
내전으로 인한 정세 불안, 미국의 끊임없는 개입과 간섭이 남긴 정치의 불안정은 안타까웠다.
그속에서 그럼에도 꿋꿋이 자신의 것을 지키고,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지켜온 그들이 참 멋있어 보였다.
책을 읽다가 몇몇 사진에서 ‘꺄’ 환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천연의 동물들 사진들이었다.
그 어디에도 없는, 중남미 국가들에만 있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동물들.
존재 자체를 처음 알게 된 피조물들.
귀여움 터지는 이 사랑스러운 동물들을 실제로 영접하고 싶어진다.
왜 자연, 생태계를 잘 보존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희귀한 동물들의 눈동자와 모습이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저자는 유럽의 성당들보다는 중남미의 성당들에서 또 다른 거룩함을 느꼈음을 고백한다.
그저 웅장하기만 할 뿐 아니라, 자연 친화적이고 신을 느끼게 건축한 중남미의 교회들은 분명 다른 차원으로 아름다웠다.
저자만큼이나 중남미에 대한 로망을 안고 온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아무래도 아직은 스페인어권 나라들, 중미, 남미는 서양인들에게 더 알려진 듯 하다.
강순규는 이 책을 펴내면서 중남미 여행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데 일조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책장을 덮을 즈음 분명 그런 목적을 이뤘음을 독자는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인터넷 블로그에 여행 정보에도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국가들이다.
이 나라들을 여행하려는 한국인이라면 <여행, 길을 잃어도 괜찮아>를 꼭 읽어보면 좋겠다.
저자는 약 50일동안 저 6개국을 여행하였다. 장구한 역사, 드넓은 지역을 고려하면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닐 것이다.
다른 나라를 많이 여행한 저자의 내공과, 친절한 안내 덕분에 저자의 글에 동참할 수 있었다.
중남미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해서 많이 공부를 하고 쓴 글이라, 여행을 넘어선 인문학을 담고 있기도 하다.
여행을 매개로 역사를 서술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탐방을 하면서 그곳의 유래를 들려주는 대목들은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중남미, 나아가 남아메리카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손색없는 책이다.
유명한 볼리비아의 유유니 소금사막의 사진은 역시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 책으로 처음 접한, 어떤 국경지대에서 포착한 대지와 산의 모습은 이 책에서 건진 백미의 풍경이었다.
헐리우드 영화사 파라마운트가 로고로 사용하는 스위스의 산이 있다. 알프스의 그 산봉우리도 멋있지만, 중남미의 한 곳에 있는 그 산의 모습도 대단히 아름다웠다.
저자는 사진으로 실물을 담아낼 수 없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 것 같았다.
작년 이맘때 애니메이션 <코코 Coco>를 극장에서 보고 한동안 멕시코 노래에 빠졌던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주 그 영화의 노래들이 생각났다.
천진한 소년이 스페인어로 부르던 멕시코의 노래. 왜 그 노래에서 느끼는 감정, 흥겨움을 쉽사리 설명할 수가 없는지 나도 좀 궁금했다.
이제는 한층 더 알 것 같다. 멕시코의 흥겹고 구성진, 쓸쓸함이 묻어나는 그 노래가 왜 좋은지.
왜 영혼 깊은 한구석을 툭 건드리는지.
하지만 여전히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감흥이다.
<여행, 길을 잃어도 괜찮아>의 중남미 6개 나라에서 느낀,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을 다른 독자도 접해보면 좋겠다.
중남미의 나라들이 가진 고유하고, 아름답고, 장엄한 멋을 느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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