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right 이웃사랑

헐버트

사나예 2019. 4. 20. 06:26

 

 

 

퍼즐을 하나씩 맞추는 기분이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은 인물.

일제강점기에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헐버트 Hulbert 이야기다.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헐버트는 마치 우리나라 영화계의 조진웅 배우같은 느낌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책, 역사를 바탕으로 픽션화한 소설 등에서 헐버트는 꼭 등장했다.

그 책들에서는 모두 주연이기보다는 중요한 조연의 비중을 맡고 있었다.

짧게 나와도 임팩트가 있어서 씬 스틸러였다.

 

지난 3~4년동안 접한 책들에서 그렇게 헐버트는 알음알음 내게 존재감을 키워갔다.

 

도서관에서 서가의 책들을 구경하다가 이 책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헐버트>를 발견했을 때 그래서 반가웠다.

 

이 책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라는 기획으로 출판사와 독립기념관이 펴내는 시리즈의 일환이다.

호머 헐버트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 포함된다고?

막연히 그럴 것은 같았는데, 과연 헐버트가 어떤 인물이었을지는 막상 명확히 잡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새로운 앎의 연속이었다.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고백했다는 이분의 유언이 과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바람대로 헐버트는 양화진 외국인묘역묘지에 안장되었다. 

 

헐버트는 고종이 서양의 교육을 적극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창립한 육영공원의 교사로 처음 조선땅을 밟았다. 23살 1886년이다.

사실 2년전인 1884년에 이미 조선행을 결심한 그였는데 당시 조선의 정세가 불안정해서 무작정 대기해야 했다. 그것이 2년이었다.

 

처음 이 대목부터 헐버트에 대한 신뢰가 싹트기 시작했다.

2년이면 당시에는 짧은 기간이 아닌데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고 꿋꿋이 대기했다.

그동안에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철저히 공부할 수 있어서, 오히려 만반의 준비를 해서 최고의 교육 전문가의 자질을 갖추게 되었다.

 

고종은 여러 외국인 중에도 헐버트를 신뢰하게 되었다. 이는 우선 헐버트가 한국말을 빠른 기간에 완벽에 가깝게 습득했기 때문이다.

헐버트가 육영공원에서 조선의 인재를 배출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더욱 신뢰가 굳어졌다.

그런데 조정의 대신들은 헐버트가 고종과 가까워지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집요하게 방해를 해서 육영공원은 5년여 후에 문을 닫고 만다.

 

그럼에도 이곳을 통해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이후에 배재학당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이곳에서 서재필, 주시경 등과 교류를 맺게 된다.

 

헐버트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했을 뿐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양반, 관리, 지도자 계층에서는 한글을 언문이라며 천시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헐버트는 자신이 공부를 한 경험을 통해, 한글이 영어에 못지않게 의사소통에 탁월한 언어임을 확신하였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문자’임을 자신이 운영하는 언론사에 발표했다.

 

책에서 전개되는 헐버트의 삶과 활동을 읽으면 정말 믿기지 않는 순간들이 많다.

헐버트는 고종과 밀접한 인연을 유지하였고, 이는 헤이그 특사파견으로 가시화되었다.

헐버트가 이 거사를 먼저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종이 싸인한 문서를 들고 이상설, 이준, 이위종 특사가 네덜란드로 갔다.

지난번에 읽은 우당 이회영 책에도 나오는데, 헐버트는 상동교회에서 배출한 운동가들, 이회영과도 교분을 쌓았다.

 

이회영 책에서 한 페이지로 나온 헤이그 밀사 이야기 때도 전율을 느꼈는데,

이 작전을 언제 꼭 드라마나 영화로 제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고 이 일을 빌미로 일제는 고종을 폐위시켰지만,

그 과정과정의 긴박함과 절실함이 의미가 작지 않았다.

 

일제는 이 일을 계기로 헐버트의 성향을 확실하게 간파한 듯이 보인다.

헐버트가 추방을 당하여 조선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 헐버트는 비밀리에 들어와서 고종과 접견을 하였고,

미국에서는 여러 곳을 순회하면서 조선이 독립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는데 힘썼다.

 

헐버트는 교사일을 할 때 ‘사민필지’라는 지리교과서를 비롯하여 교재들을 제작하였다.

우리의 구전민요 ‘아리랑’을 연구해서 책으로 펴냈다.

대한매일신보를 운영한 영국인 언론인 베델과 협력하여, 영문 英文으로 일본이 조선에서 자행한 만행을 알리는데 앞장섰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데 방조한 책임이 있었다.

헐버트는 자신의 모국의 지도자임에도 이런 현실을 묵과하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해 미국 언론에 미국의 잘못을 규탄하는 글을 기고했다.

 

한마디로 헐버트는 오롯하게 조선 민중의 편에 선,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었음을 이 책으로 여실히 알게 되었다.

 

열강인 영국, 미국이 일본과 정치적인 계산을 셈하면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던 시절,

헐버트는 조선이 부당하게 침략을 당했다는 것을 거침없이, 일관되게 알리기에 힘썼던 것이다.

 

‘한 명이 이런 일들을 평생 했다고?’ 싶게 헐버트는 교육을 시작으로, 선교사역, 언론 활동, 나중에는 직접적인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잡지에 기고하던 글들을 통해서 조선이 독립국이며 찬란한 문명국임을 지지했다.

이는 베델의 신보와 더불어서, 평범한 조선 백성들에게 ‘서양인 중에도 우리를 지원하는 세력이 있다’는 여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그가 한 일들을 세세하게 안 것이 팩트로써 유익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묵직한 뭉클함이 남는다.

‘웨스트민스터사원보다 조선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는 말. 쉬이 납득되거나 믿기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면 뜨거운 열정이 있던 순간에 충동적으로 한 말일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이건 허언이 아니었다. 과시도 아니었다.

어쩌면 고종은 헐버트의 그 ‘보이지 않는 진심’을 은연중에 느꼈기에, 그토록 헐버트를 신뢰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스물 세살에 조선에 처음 와서, 여든여섯에 해방된 국가에 초청받아 오기까지

헐버트는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

조선에서조차 처음엔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1930년대가 넘어서자 친일로 변절한 이들이 있었다. 단지 현실과 타협해 무력하게 변심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어떤 자들은 적극적으로 친일에 앞장서서 많은 이들을 경악시켰다.

 

이런 엄중하고 어두운 시대에, 헐버트는 늘 조선이 유구한 역사를 가졌으며, 독립할 자격이 충분하고, 기필코 주권을 쟁취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40년동안 간직하고 보여준 헐버트의 이런 ‘마음’이 생각할수록 뭉클해서 코끝이 찡해왔다.

 

조선의 당사자가 아니라서 나이브naive하게 그랬던 게 아니다.

외국인이지만 요시찰 인물로 감시를 받은 헐버트가 국내외에서 벌인 활동은 결코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이 책으로 비로소 알게 된다.

 

웨스트민스터보다 한국땅을 더 좋아할 뿐 아니라,

자신의 뚜렷한 활동 때문에 언제 죽임을 당한다 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신조.

 

이 진심과 용기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보여준 것이기에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얼마전에 무심코 어니스트 베델(배설)에 대한 책을 읽었다가 엄청나게 감동을 받았었다.

이 책 <헐버트>도 그가 이룬 업적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역사 정치 사회 문화의 배경에서 세밀하게 인물을 조명했다.

 

헐버트 스스로가 교류한 사람들의 네트워크도 엄청났기에, 한 시대를 다큐멘터리처럼 읽는 느낌이었다.

 

주권이 사라졌던 시대에,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조선이 멋진 나라라고 진심으로 믿은 한 외국인이 있었다.

그 진정성과 한결같음이 주는 울림이 내게는 절대 작지 않았다.

 

최근에 방탄소년단의 믿기지 않는 인기를 보면서 얼떨떨함을 느낀다.

헐버트는 원조 한국 덕후였다.

책 한권을 읽었어도, 내게는 헐버트가 보여준 조선 사랑이 여전히 조금은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지.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을지.

 

지난번에 베델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유사한 기분이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은지 한달이 지나고,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기사를 검색해보면서 여운이 커지는 것을 경험했다. 어떤 진실 하나가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헐버트에 대한 독서도 앞으로 눈덩이처럼 어떤 여운을 던져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평생 일신 一身의 편안함보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하고, 한국인의 자주적 독립회복을 대변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 이유는 그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고, 한국의 자주적 독립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종의 친서를 통해, 독립을 호소하는 수많은 한국인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그는 한국이 처한 비극적 현실을 미국 사회에 그대로 알려, 위기에 처한 한국인들을 직접 돕고자 노력하였다.

헐버트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시대의 약자와 어려운 사람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고 있는가?』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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