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right 이웃사랑

뜻밖의 좋은 일 (2018) 정혜윤

사나예 2019. 4. 18. 23:25


   받아적고 싶은 페이지들이 참 많았다.

그중에 단연인 부분.


 


자신을 해방시킬 말을 찾아낼 때 사는 맛이 난다편에서


 


 

우리의 삶은 우리 내면을 따라 흘러간다. 특히, 흔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우리 마음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편안하게 쓰는 많은 말들이 우리를 현실에 묶어두고 말하는 사람 자신조차 외롭게 한다.

 

현실이 그래. 그게 세상의 이치야.

-> 그러나 그때는 현실의 이름으로 무엇을 없애버리려 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 다 똑같지 뭐. 별 수 있나?

->사상 최악의 평준화.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다른 인간도 끌어내리는 말.

 

세상은 다 썪었어.

-> 현대 생활의 모든 편리함을 누리고 있으면서, 특히 다른 사람의 고독과 투혼으로 이룬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 쉽게 해버릴 말은 아니다.

우리는 세상이 썪었다는 것을 개탄하느라 썩지 않은 세상에 대한 책임과 해야 할 일은 덜 이야기한다.

 

사는 게 다 그렇지, .

->결론부터 제시하는 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들 위험이 있는 말.

 

개인의 취향인데 뭐…….

-> 아무리 중요한 일도 개인의 취향일 뿐이라고 하면 나와는 관계없는 문제로 만들어버릴 수 있게 된다.

 

한방에 훅 간다.

->아니다. 한방에 훅 가지 않는다. 수많은 시간 서서히 이루어진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을 빌리자면 지켜보는 이도 없고 상벌도 없는 평범한 나날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먹고 마시고 잤으며 작은 시간들을 어떻게 쪼개 썼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권위와 능력이 주어질지 정해진다.

 

요새 애들은 게을러.

->노동이 아니라 속박을 거부하는 것일 가능성은 없을까?

 

창조적이어야 해.

-> 그러나 최선을 다해 일상의 모든 재료들을 끌어모아 돈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가장 덜 창조적이다.


 



방송국PD이자 에세이스트 정혜윤.


그녀의 신작 소식은 발간 때 진즉에 들어서 알았다.


카트에 모셔두었는데, 못 읽었다기 보다는 안 읽었다.


 


지난번 작품의 리뷰에 썼던것처럼 이 작가는 내 사람이구나하고 정한 작가.


이런 분의 신작은 굳이 재빠르게 읽을 필요가 없더라.


묵혀두고 읽거나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읽어도 책의 진심을 읽는 것에 큰 지장이 없음을 나는 깨달았다.


 


올해가 시작되고 그래도 6개월은 흘렀으니 슬슬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책들에 밀려서, 또 건망증에 잊고 있다가 드디어 만났고 그리고 읽었다.


역시 좋다.



팬심을 갖는 작가가 신작을 냈는데, 그 작품이 직전의 글보다 더 깊어졌거나 성장한 것을 느끼는 것만큼 보람된 일도 없는 것 같다. 책 서평자로서는.


 


언젠가 밝힌 적이 있는데, 정여울하고 정혜윤을 좋아한다.


그녀들이 부지런히, 또 너무 급하지도 않고 책을 내 놓기에 독자로서 따라가는게 참 편하고 좋았다.


뭔가 든든한 느낌이다.


앞으로도 한결같은 사람들 두 명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소유했다는 것은.


 


그런데 그동안 내 작가다싶은 분을 두 분 알게 되었다.


작년하고 최근의 일이다. 코칭심리상담가 김윤나, 그리고 어학교재 집필가 이수경씨이다.


언제고 관련된 분야에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이 두 작가를 찾기로 결심했드랬다.


 


탐서가 探書家 정혜윤은 이번에도 책을 이야기한다.


그 사이에 어떤 책들을 만났는지, 어떤 책들이 자신의 마음을 건드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책을 통해 삶을 살아왔는지를


더 한층 멋진 문장들로 적어내려갔다.


 


지난번에 나희덕 시인의 에세이에서 에이드리언 리치라는 시인을 처음 알고 적어놨다.


정혜윤의 이번 책에서도 신기하게 그 시인이 언급되었다.


이건 읽으라는 암시이려나.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언제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 했는데, <뜻밖의 좋은 일>에도 나온다.


이 역시 읽을 각.


 


이름만 많이 들어본 오에 겐자부로도 체크해 놓는다.


 


목차 안의 제목들을 다시 복기해보면 더 흥미롭고 토닥이는 위로를 느끼게 된다.



 


 

세상의 압력에 찌그러지지 않는 방법.

 

어떤 경우에도 행복해질 의무.

 

마음이 텅 빈 것 같을 때에는.

 

더 이상 삶을 겁내지 않으려면.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자기기만에서 풀려나기

중요한 게 없다면 지킬 것이 없단다

 

너 없다면 나는 뭘까?

 

이제는 길을 잃고 싶지 않다.


 


 


 


책을 통해서 자신과 독자들이 뜻밖의 좋은 일을 발견하고 만나기를 정혜윤은 간절하게 바란다고 했다.


책의 말미에는 뜻밖의 좋은 일을 가져다 준 책의 목록을 적었다.


 


그 사이에 좋아하는 작가들이 생겨났지만


원조 완소 작가 정혜윤의 책을 읽어서 참 좋았다.


아니, 꼭 읽어야만 했음을 뚜렷히 깨닫는다.



 


 책 중에서


 


 

  나의 선배 송경동 시인 덕분에 지옥 같은 세상에서 천국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악을 잘 알지만 깊게 순수했다.

그는 인간 삶에 드리워진 고통스러운 면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덜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 썼고, 그 일을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고, 생색도 짜증도 내지 않고 해냈다.

그는 온갖 방법으로 적들은 귀찮게 했고 지치게 했지만 친구들에게는 한없는 관대함과 다정함을 보였다.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즐겁고 기쁘고 성스러운 순간을 세상에서 만들어내길 바랐다. 그런 순간을 함께 사는 누구나 가리지 않고 친구로 삼을 줄 알았다. 그렇게 얻은 친구들을 평생에 걸쳐 귀하게 여길 줄 알았다.

까뮈는 세상은 부조리하지만 부조리는 사랑할 대상을 준다고 했다. 그는 우리 각자에게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사랑할 만한 대상이 되어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주었고 그 자신이 먼저 사랑할 만한 사람의 삶을 살고 있다.

              (98)

 


 


 


 

나의 언니 변영주 덕분에, 그녀의 유머감각과 쾌활함 덕분에 나 역시 그녀를 만날 때면 늘 명랑한 기운 속에 있게 되었다. 그녀 덕분에 삶의 무거운 문제를 공을 가지고 놀 듯 가볍게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가장 탁월한 점은 사람을 웃게 만들 줄 안다는 것이다. 특히 그녀는 유머에 윤리를 결합시킬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종종 즐거운 기분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빠져들 수 있었다.

  (100)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우리는 서로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상호이해로? 믿음으로?

이해관계로? 불안함으로?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취향으로? 상황으로?

지상의 한 점인 우리는 계속 외로운 한 점으로 머무르고 말 것인가?

테리 이글턴은 우리는 함께 어울려 사는 일상의 질이 어떤가에 따라 구원받는 존재라고 했다

 (127)

 


 


 


 

 

롤랑 바르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사랑하는 타인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구조활동이라고 했다.

수전 손택은 어떤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것은 상처투성이 수사학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말을 할 때가 아니라 나를 해방시킬 말을 들을 때,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말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조금씩 옮겨서 점점 더 가까워지는 말을 나눌 수 있을 때가 더 행복하다.

 

책에서도 나를 대신 표현해주는 말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도 누려봤지만 그때까지는 없던 나를 새롭게 형성해주는 말을 읽었을 때 기쁨이 더 컸다.

내 생각과 같은 것이 아니라 내 생각보다 더 나은 것을 발견했을 때 기쁨이 더 컸다.

                                                                                  (17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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