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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간도의 꽃 청춘들을 만났습니다

사나예 2016. 2. 17. 21:14

기대 했던 영화 동주를 보고 왔다.

소설 시인 동주를 두 번 읽으며 워밍업을 했고 송몽규에 대해 알고 갔다.

 

 

타이틀이 동주이지만 부제가 이거일 것 같다. ‘그리고 몽규’.

 

 

진기한 체험이었다

1월과 지난주까지 소설로 푹 빠져있던

윤동주 시인의 시들이 스크린으로 재현되어 너무도 감격적이었다.

 

이 영화만의 신의 한 수세 가지로 리뷰를 해 본다.^^

 

 

  

첫 번째 신의 한수.

이준익 연출.

 

사도를 감명깊게 보긴 했지만 이준익 감독이 윤동주 시인에 관심을 이리 갖고 있을 줄 몰랐다. 게다가 저예산이며 흑백인 것은 더더욱 몰랐다. 이걸 알게된 때부터 많은 뉴스들, 인터뷰, 사진들을 열심히 찾아봤다. 볼 때 마다 읽을 때마다 울컥하는 점들이 몇 개씩 있었다.

그는 어차피 윤동주가 살던 시절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을 바에야(그러려면 100억이 넘게 든다고) 저예산으로 가는 과감한 방법을 택했다.

인지도 있는 신예 배우 강하늘을 기용했으나 대중적으로 거의 안 알려진 박정민이란 배우를 송몽규에 캐스팅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스태프들도 모두 합해야 30명 정도였다.

19회차로 촬영하고 한달만에 크랭크업했다.

영화를 보고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연출과 배우들이 몰입을 했을지 느껴졌다.

장군의 아들 식의 액션으로 소비되는 일제 시대 아니고, 진지하고 심각하고 암울하기만 한 일제 시대가 아닌,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잡은 연출로 이준익이 아니면 누구일까 싶었다.

        

 

 

 

두 번째 신의 한수, 박정민

박정민은 스물아홉살로 송몽규의 죽은 해와 같은 나이였다. 독립영화계의 송강호라는 배우였다고 한다.

송몽규에 대해 지식을 갖고 가서 스크린으로 보면서 박정민이 어ᄄᅠᇂ게 송몽규를 연기했을지 매 컷들이 긴장감 있었다. 좋은 의미로 긴장되었다.

젊은 혈기에 임시정부를 찾아가고 무장투쟁을 지지하는 등 전형적인의미에서의 독립투사 이미지로 처음엔 출발한다. 하지만 러닝 타임이 흐를수록 박정민에게, 아니 송몽규에게 푹 빠져들게 됐다.

나중에 포효하면서 일본 검의관 앞에서 몇 분간 클로즈업으로 나오는 씬이 있는데 정말 마음이 미어졌다. 모르긴 몰라도 이 장면을 찍을 때, 디렉팅하던 감독님도 촬영스태프들도 울지 않았을까. 다시 생각해도 코끝이 찡하다. 그로 인해 대중들이 많이 몰랐던, 송몽규라는 윤동주의 친구를 우리는 선연하게 알게 되었다.

 

세 번째 신의 한수 흑백 필름.

 

1월에 흑백임을 알았을 때부터 기대가 되었다. 기대가 되면서도 오래동안 극장에서, 그것도 신작 개봉영화를 흑백으로 본 일이 없었어서 낯설지 않을까, 지루하진 않을까 의구심이 들긴 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인터뷰에서대로 오히려 화면에 잔뜩 몰입하게 했다.

배우들의 표정들의 미세함이 더 잘 포착되고, 우리 한옥의 대청마루의 시점에서 앵글이 잡히는 북간도 씬들은 뭉클하다. 그 자체만으로, 그런 화면들이 우리 영화나 영상에서 사라져갔기 때문에, 자 한옥이 이렇게 근사하구나 새삼 느꼈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다른 의미로, 일본 검사와 윤동주의 심문 과정이 교차로 보여질 때는 아무래도 일본어이고 시대가 어려워서 조금 난해한 점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욱 그 시대로 나를, 관객을 그 시대를 끌어당기는 듯한 절묘한 기술이 흑백 필름이었다.

아직 동주와 몽규의 생체실험 죽음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 짓을 행한 규슈 제국 대학 의사는 패전하자 자료를 말소시키고 자살했다고 한다.

 

(과연 진짜 자료를 다 없앴을지 자살은 맞을지 일말의 의심이 든다. -_-)

 

 

 

 

그래서 울지 않자 생각하고 스크린을 봤다.

 

그런데 끝에, 끝내 팡 울어버리고 말았다.

 

송몽규가 일본 검사 앞에서 절규할 때.

 

 

 

 

엔딩 자막이 나오며

 

북간도에서 그 동네를 주름잡고 다니던,

 

함께 울고 웃던

 

젊은 동주와 몽규의 웃는 장면들에 가슴이, 마음이 아렸다.

 

아리다, 란 말.은 그리움을 포함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준익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러셨다.

 

"비극은 아름다움을 느끼게도 합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정말 그랬다.

 

눈부신 젊음들이 시들고 짓밟힌 꽃송이들이 된 모습에,

 

그런데 그래서 그 순수와 열정과 용기가 아름다움에

 

슬프면서도 내면의 무언가가 치유된다.

 

꿈틀꿈틀댔다.

 

사나예

은령써니(yes24)

 

출처 : 네티즌 리뷰
글쓴이 : 사나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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