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정이 부른 '기억의 습작' 을 듣고 생각난 영화.
<건축학 개론>이 개봉한지도 9년이 지났다.
영화는 복고 열풍을 불게 했었다.
전람회 1집 앨범이 유행하고 1990년대 레트로가 번져 일어났었다.
극장에서 당시 영화를 봤을 때는 현재의 엄태웅·한가인 보다는,
1990년대 중반 캠퍼스에서 풋풋하던 이승민, 양서연 이야기에 더 매료되었었다.
다시 봐도 조정석의 납득이 캐릭터의 깨알 연기와
‘어떡하지’가 여전히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사랑스런 작품.
그런데 멜로드라마로서도 이 작품 생각해 볼 점들이 몇 개 있었고,
그런 관점에서 다시 감상해보니 새로웠다.
처음에 한가인이 엄태웅을 찾아왔을 때 엄태웅이 당황했고 나중에 술자리에서도 물어보듯이 ‘왜 나를 찾아왔냐’던 물음은 한동안 내게도 있었다.
현재의 양서연이 왜 이승민을 찾아가서 집을 지어 달라고 했을까 라는 부분에 의구심이 일었고
내가 여자지만 이제훈에 이입되다시피 했기에 여자가 얄미워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한가인의 진심어린 연기를 통해 또 후반부 영화적 설정을 통해 캐릭터 ‘서연’의 이미지가 보다 선명히 각인되기 시작하였다.
서연은 승민과 친구처럼 지내고 그의 마음도 얼핏 눈치채고 있었지만 건축과 선배오빠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해를 한 승민도 매정하게 그녀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결국 좋아했던 오빠와도 잘 안됐던 걸로 보인다.
후에 잘 나가는 의사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기에 이르렀지만 안타깝게도 금방 이혼을 하고 지금은 아프신 아빠 병간호를 하며 꿋꿋이 지낸다.
서연이 승민의 진심을 몰랐고 훼손했다고,
영화를 따라가는 우리는 자칫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고 나 또한 그랬다.
서연은 자신의 이상 [fantasy]을 따르고 감정에 충실해서 남자를 만나고 결혼해서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뜻하지 않음 헤어짐 이후에 결국 자신의 연애감정의 근원에 가까운 승민과의 시절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건 자연스러웠다.
서연이 ‘나쁜 여자’였던 적이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한번의 뼈아픈 ‘실수’를 겪은 후 자신의 순수로 돌아가는
감정의 작업을 감행한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힘들었고 아팠을 것이다.
어렵게 승민의 건축사무소를 찾아갔고 같이 추억을 나누고 ‘집’이라는 것을 계기로 과거의 오해와 단절의 벽을 허물어가는 것에서 위로와 다행함을 서연은 느꼈을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이미 결혼 예정인 승민을 알고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런 그녀가
예전에 집앞에 승민이 갖다버린 건축 모형물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후반부 장면은 무척 놀라웠다.
서연의 삶에 대하여 타인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고 공감하긴 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순수한 시절을 그리워하고 돌이키고 싶어한 서연의 마음을 전혀 느끼지 못한 건 아니었다.
다시 보니 영화는 약간 어설프고 작위적인 점들은 있지만
캐릭터들의 진심과 후회같은 게 잘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승민은 또 어떠한가?
사실 영화 내내 승민은 거의 억울한 남자다.
10년도 전에 처절하게 차임 당한 것도 모자라 오랜만에 와서는 예전에 왜 그렇게 갑자기 떠나갔냐고 눈빛으로 묻는 듯한 서연의 존재가 불편하다.
근데 영화의 마지막은 시청자인 나에게 뭉클한 감정 해일로 휩쓸고 들어왔다.
서연의 집이 잘 지어지고 승민은 아내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있고, 제주도 서연 집에 전달된 우체국 택배.
그 속에는,
승민의 절교 선언 후에 정릉의 빈 집에 마지막으로 서연이 가서 고이 내려놓고 온 CD플레이어와
전람회 앨범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꼭 서연과 승민이 서로 ‘연결’되지 못해서 아쉬운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마음 한 구석에 그 마음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결정적 증표가 스크린으로 보여졌기에
전해 오는 감탄이랄까.
맞다. <건축학 개론>은 첫사랑을 미화했다는 말도.
그런데 그게 그리 불쾌한 것은 아니었고 어색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영화라는 매체가
사랑의 추상적 감정을 가장 극대화해서 보는 이에게 전할 수 있는,
하나의 극적인 판타지 장치라는 점을 본 작품을 통해 다시 깨달았다.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얘기들 하나하나 자체는 드라마에서 숱하게 보아왔기에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자와 여자의 순애보와 진실된 기억을 효과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해 주어서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한국 멜로 영화 수작을 또 만나보고 싶은 기대감을 준
<건축학 개론>이다.
조정석은 10년 사이 정말 훌쩍 대배우가 된 듯 ^^
필름 스피릿 for Narnia
아래에 박재정 이상이 '기억의 습작' 듣기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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