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허균

사나예 2019. 2. 24. 16:57

 

 

 

 

 

 

 

 

 

허균의 안빈낙도

 

     혼자 있는 시간이 가르쳐 주는 것들

 

 

 

  

 

지난 설 때 TV에서 ‘리틀 포레스트’를 약간 봤다. 일본 원작이긴 하지만 주인공 청년들의 농촌 생활, 음식 해 먹는 것 등이 꽤 행복해 보였다.

 

 

 

허균의 『한정록 閒情錄』이라는 책을 편역한 책을 읽었다.

 

엮은이가 새로 지은 제목은 <혼자 있는 시간이 가르쳐 주는 것들>.

 

부제는 「나는 때론 혼자이고 싶다」

 

 

 

허균에 대해서도 새로 안 것들이 많았고, 그가 읽은 책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서도 참 좋았다.

 

<한정록>은 중국의 고서, 명저들을 인용하면서 허균의 생각을 쓴 책이라고 한다.

 

 

 

인용한 책 제목들은 거의 다 생소했다. 하지만 내용은 어렵지 않고, 흥미롭거나 유익함이 많았다.

 

 

 

 

 

허균이 광해군 때 관리인 줄만 알았는데, 선조 때부터 조정에서 일을 했음을 알았다.

 

스물 네살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에휴.

 

그런 배경을 생각하면서 읽으니 허균이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한층 공감하게 되었다.

 

 

 

엮은이에 따르면 허균은 노장사상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도 노자를 비롯한 관련된 책들이 나온다.

 

하지만 꼭 그러한 한 가지 사상에 얽매이고 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게, 허균이 정말 품이 넓은 사람이었구나,를 느낀 것.

 

심오한 유교 사상에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재치가 넘치는 분이었다.

 

 

 

허균의 삶의 이력을 보면 관직에 등용되고 파직되는 것을 반복했다.

 

‘기생이나 무뢰배와 어울려 다닌다’는 기상천외한 이유로 파직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허균이 왕이나 대세인 세력에 직언 直言을 피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인물’은 인물이어서 파직당하고 또 나중에는 조정에서 다시 부르기를 반복했다.

 

 

 

허균에 대해서 나의 지식이 얼마나 짧았는가,를 반성했다.

 

하지만 그런 자책보다는 이제라도 허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안 것이 몇배나 반가웠다.

 

 

 

 

 

 

 

생각해보니, ‘최초의 한글소설’을 썼다는 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한글이 창제는 되었어도 지배층은 한문을 숭상했다던데

 

허균은 정말 개혁적인 사고의 소유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허균이 탐독하고 사랑한 마흔권의 책들.

 

그 속에서 강조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덧붙인 한정록.

 

 

 

<혼자 있는 시간이 가르쳐주는 것들>은 원작 한정록의 내용을 충실히 수록했다.

 

번역도 현대적이면서도 옛 것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참 잘 번역하였다.

 

 

 

자간이 넓고, 여백이 넉넉하다.

 

중간중간에 시원한 사진들을 넣어서 눈도 탁 트인다.

 

 

 

 

 

책은 ‘한적함’ ‘고독’ ‘한가함’을 찬미한다.

 

 

 

‘조용히 물러나는 것’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출세나 인기보다는 자신의 만족이 중요함을 들려준다.

 

 

 

사마광, 백거이, 주희, 공자, 노자 등 익숙한 중국의 옛 인물들의 이야기들과 글들도 무척 재밌었다.  도연명, 두보의 시에는 캬 하고 감탄이 절로 난다.

 

 

 

지금은 킨 포크, 미니멀리즘, 귀농 같은 단어로 유행의 한 사조인 것들.

 

 

 

그 모든 것들이 16세기 조선의 한 천재 허균이 읽은 책에 거의 다 있었다.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동서고금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을 깨달아 소름 돋았다.

 

 

 

한시, 시조, 고사성어 등 옛 글의 매력을 흠씬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가까운 곁에 두고 자주 펼치고 싶다.

 

 

 

 책 중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독이란 단순히 혼자 외롭게 있는 것도, 어딘가로 무작정 도피하는 것도 아니라 온전히 나 혼자로 존재하는 시간을 만끽하는 것이다.

 

(9쪽)

 

 

 

 

 

사마광이 말했다.

 

“몸과 마음이 권태롭고 피로하면 낚싯대를 던져 고기를 낚거나, 옷자락을 여미고 약초를 캐거나, 도랑을 터서 꽃에 물을 대거나, 도끼를 잡고 대나무를 쪼개거나,

 

뜨거운 물로 손을 씻거나, 높은 곳에서 먼 곳을 보거나,

 

이리저리 한가로이 거닐면서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한다.“

 

(59쪽)

 

 

 

 

 

예로부터 선비가 한가하게 초야에 묻혀 살 때는 반드시 도와 뜻을 같이하는 선비가 있어

 

서로 더불어 왕래하기 때문에 스스로 즐길 수 있었다. 도연명은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날 남촌에 살려고 한 것은

 

그 집에 눌러 살기 위함이 아니니

 

깨끗한 마음 가진 사람 많다고 하기에

 

아침저녁 그들과 즐기려고 했었다네

 

 

 

이웃 마을 때때로 왕래하며

 

서로 마주 보며 옛이야기 나누었으니

 

뛰어난 글은 함께 감상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서로 밝혀보았네

 

(80쪽)

 

 

 

 

 

한가한 사람이 아니면 한가할 수 없으니

 

한가한 사람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아니라네

 

(92쪽)

 

 

 

 

 

한가롭게 지내는 일은 중요한 관직에 있는 것과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성현들의 글을 볼 때는 군부(君父)를 대하는 것처럼 하고,

 

역사를 볼 때는 중요한 공문서를 보는 것처럼 하며,

 

소설을 볼 때는 광대를 보는 것처럼 하고, 시를 볼 때는 노래를 듣는 것처럼 한다.

 

이것은 그 즐거움이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103쪽)

 

 

 

 

 

책을 읽을 때는 오직 조용하고 여유롭고 자세히 해야 마음이 책 안으로 들어가 그 묘미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시끄럽고 조급하고 건성으로 구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르게 되니, 어찌 그 묘미를 얻기에 충분하겠는가?

 

(210쪽)

 

 

 

 

 

 두보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아름다운 시구를 찾는 버릇이 있으니

 

그 말이 남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네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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