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쓸 때, 특히 애정이 있는 작가의 책에 대해 쓸 때 보통 이런 마음이 든다.
성실하게 써야지. 정확히 써야지. 장점을 널리 알려야지 같은.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도 애정이 있는 작가의 책이었다.
오늘 다 읽고는 정말 감명깊고, 재밌게 책장을 덮었다.
그런데 지금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내가 느끼는 지금의 ‘전율’ ‘감사’를 어여 기록을 해 놔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유익한 점을, 정제된 말투로 알리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러기에는 흥분과 감동이 더 크기에.
적어놓아서 내 스스로에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이 책에는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 담겨있고, 그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배우 하정우, 사람 하정우, 남자 하정우, 마흔살 하정우.
화가 하정우 이 모든 것을 오롯이 담았다.
그리고 하정우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동료 하정우, 친구 하정우의 모습까지도.
글을 읽으며 음성 지원 되는 줄~
그동안 하정우가 영상 매체 언론에서 인터뷰 한 것을 빠짐없이 들었기에 알 수 있었다.
하정우가 얼마나 배우라는 직업과 영화라는 장르에 애정을 갖는지를 물씬 느꼈다.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베를린> <군도> <암살> <허삼관> <신과 함께> 까지 주연배우로서 영화에 참여한 이야기도 깨알같이 나온다.
작가는 걷기 예찬론자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많이, 깊이, 걷기라는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에게 걷기는 건강관리법이기도 하지만 가장 아끼는 취미이기도 하다.
농구 하기, 야구 관람, 여행과 독서도 취미이지만 걷기를 으뜸으로 친다.
그 자신이 오랫동안 꾸준히 걷기를 하면서 안좋은 점보다는 좋은 점을 많이 발견하고 겪었기에 걷기 전도사를 자처한다.
눈물 없이는 못 읽겠는 파트도 있었다.^^ 얼마나 이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동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못 말릴 정도다.
만일 걷기를 코치하는 테라피스트라던가, 의사의 글이라면 이렇게 효과적으로 읽혔을지 모르겠다.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이른바 덕후의 마음으로 절절히 전하는 걷기의 미덕이 더욱 와 닿았다.
단순한 언론 기사를 모아놓은 게 아니고 배우가 공들여 쓴 에세이다.
한 권의 두툼한 단행본인 만큼 수필로써의 기본적인 매력도 충분한 책이었다.
평소에 하정우의 언변이 비범하다고 느낀 1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열혈팬이어서 그럴 수도 있어서 깊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하정우는 책 읽기를 즐기고 여행하는 걸 좋아하고 자주 하와이를 가고,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 재미있고 새롭다.
또한 평소에 언어에 대해서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아이고 죽겠네” “그게 되겠어?” “짜증나”같은 부정적인 말, 한탄하는 말을 싫어하고 안 쓴다고 했다.
이런 말은 하는 사람 뿐 아니라 그걸 앞에서 듣는 사람을 전염시키는 독같은 거라고 한다.
지난주에 읽은 이영표의 책처럼 어쩌면 일반적이고 도덕적인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다.
허나 이영표 책 리뷰에도 썼듯이, 그런 훈계조의 말은 전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나도 평소에 갖고 있는 가치관의 하나였는데, 너무 ‘반듯’한 건가 싶어서 움츠러들었던 생각들.
그것들이 하정우의 이 책에서 그렇지 않다고, 너의 생각이 옳다고 지지받는 기분이었다.
화려한 영화의 홍보 행사, 인터뷰에서는 미처 볼 수 없던 어둡고 아픈 이야기들도 담겨있다.
마냥 평온할 것 같고, 늘 창의적일 것 같은 이 배우에게도 슬럼프가 있었고, 공허감으로 무기력한 시절이 있었다.
왜 안 그랬겠는가.
생각해보니 매번 새로움을 선사해 준, 크리에이티브한 배우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게 더 이상한 거다.
팬이라면서 그런 거는 거의 생각지 못했어서 괜시리 미안하기까지 했다.
하정우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썼다.
『이 책을 통해서 내 삶의 방식을 자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고, 걸음이 다르다.
그저 내가 지나온 길, 내가 갖고 있는 일상의 매뉴얼이 누군가에게 아주 약간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혹여 쓸 만한 것이 티끌만큼이라도 있어 참고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하정우씨. 독자로서 감히 말씀드리면 이 책 아주 쓸모 있습니다. ^^
일석이조라는 말이 있는데 <걷는 사람, 하정우>는 내게 일석삼조, 아니 일석십조의 에세이였다. 혹시 그 이상의 이유를 대라도 몇 가지는 더 능히 찾을 수 있다.
Special thank to 라는 코너에서 하정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나열한 장이 있다.
영화, 미술, 음악, 스포츠 등에서 활동한 외국 사람들이다.
그 중에 나도 좋아하는 휘트니 휴스턴, 에이미 와인하우스 가 있어서 어찌나 반갑던지 !!!
나는 하정우의 활동을 익히 잘 알지만 그는 나를 1도 모르는데^^ 동질감이 느껴졌다.
동시대를 살면서 자신도 스타이지만, 다른 예술가들, 선수들을 좋아하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추신수 선수를 만난 일화에는 ‘성덕’이 된 것 같다면서 뿌듯해 하는 하정우씨. ㅎㅎ
하정우는 팬들도 독특한 것 같다. 배우에게 별명을 ‘하대갈’이라고 붙여줬기 때문이다.
동경하는 영화배우라고 해서 어디 저 멀리 있는 스타로 느끼지 않고 격의없이 대하는 팬들도 재치있다. 하정우는 그걸 넙죽 받아서 또 즐기다니 역시 범상한 배우가 아니다. ^^
이 책에 대해, 하정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여전히 많지만 정리할 순간이다.
언젠가 네이버 무비토크 『터널』 때 하정우가 하트 눌르면 무슨 일이 좋은 거냐고 진행자에게 물었던 적이 문득 생각났다.
영화 토크쇼 프로그램인데 시청자가 하트를 눌러서, 10만하트, 100만 하트 그렇게 만드는 거였다.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이고 이전까지도 동일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던지는 배우는 내 기억엔 처음이었다.
하정우는 진지하게 물었었다. 하트 100만 되고 이러면 뭐 쌀 한 포대라도 만들 수 없는 건가요? 그렇게 해서 어디에 드린다던가 하는.
그런 얘기를 했었다.
똑같은 걸 대하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남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때 웃고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 것에 대해서 ‘다른 각도’로 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에 대해서 깊이 알 수 있었다.
스크린에 나오는 영화배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느낀 하정우의 글에는 보편적이고 폭 넓은 사유의 보석들이 여러 군데에 있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창의적으로 무언가에 도전하려는 모험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정우는 걸으며 생각하는 이 시대의 장 자크 루소였고,
여행하며 예술을 꿈꾸는 랭보 같기도 했다.
책이 나와서 따끈따끈 할 때 읽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처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는 느낌마저 들었던
웰 메이드 수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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