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의 시간이자 성찰의 시간

키에르케고르

사나예 2018. 10. 19. 05:02

 

 

 

우선 감격을 토로하고 글을 시작해야겠다. 한 권이 통째로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책이라니!

우리나라에서 키에르케고르를 접하고 싶어서 2년 전에 동문선에서 나온 책을 읽었었다.

 

이번에 자음과 모음에서 나온 《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는 프랑스인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가 쓴 인문서이다.

중간 중간에 키에르케고르의 원문에서 글을 뽑아내어 이를 해석하고 해설하는 구성이다.

나에게는 이런 일반적인 책이 필요했는데 그래서 무척 반가웠다.

 

키에르케고르의 원 글도 날카롭고 통렬하기로 유명하다. 작가 다미엥의 문체도 키에르케고르를 닮은 듯 했다.

첫 장에서 현대인은 정신이 많이 피폐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온갖 자기계발 서적이 난무하고, 정신 치료를 표방하는 클리닉들이 성행한다.

 

현대는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자아 自我가 보장된 시대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렇게 자아를 지나치게 중요시하고 보호하려는 흐름에 반기를 든다.

 

『개인의 삶이 가득한 찬란한 시기를 맞이했는데 우리는 갑자기 환멸을 느끼며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각종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 18쪽)

 

키에르케고르가 살은 19세기 초 덴마크는 정치 경제 사회가 모두 안정되고 풍요로운 시대였다. 그러나 이런 이면에는 문제점이 숨어 있었다. 풍조에 맞선 키에르케고르 만큼은 겉모습에 속지 않고 당시 시대를 비판하는 글을 써내려갔다.

 

저자는 지금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절망에 빠져 있다고 단언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유럽인 25퍼센트가 매년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앓고 있다. 만성질병으로 신청한 병가의 절반이 우울증이나 불안증 때문이다.

심각한 우울증 환자 가운데 50퍼센트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고, 그 외 나머지 종류의 우울증 환자가 치료에 사용하는 비용은 1,700억 유로에 이른다.

 

지금 사람들이 겪고 있는 우울증은 약간씩 모습을 달리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이 부여받은 자유의 무게를 절감하고, 정체성이라고 하는 무거운 부담을 짊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하고 또 자연스럽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고 작가는 짚는다.

 

절망은 꼭 그렇게 질병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에 대한 해답을 키에르케고르 에게서 찾아보자고 제안을 한다.

한 가지 예시로 본격적인 논의를 여는데 이 예화가 무척 흥미롭다.

 

『아브디라의 시민들은 저명한 데모크리토스가 절망에 빠져 있자 요즘 시대와 똑같은 방법을 권했다고 한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미친 사람처럼 이유 없이 웃자 시민들은 걱정이 된 나머지 당시 최고의 의원 히포크라테스를 불렀고 데모크리토스가 미친 것 같으니 고쳐달라고 했다. 면담을 마친 히포크라테스는 데모크리토스만큼 건강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확신했다. (…) 우리도 관점을 바꾸어서 이런 질문을 해보자. “진정으로 절망은 ‘질병’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21쪽)

 

 

요즘은 자아를 적극적으로 내세워야 하는 시대다. 스스로 원해서 자아를 감추려고 해도 주변에서 그것을 가만두지 않거나 이상하게 본다. 이런 때에 절망이란 현상이 더욱 활개를 치며 펴져간다고 다미엥은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도 절망할 때는 우리 자신이 한없이 미워진다고 작가는 진단한다.

 

연인에게 실연받은 여자, 자식이 멀어져서 안타까운 아버지, 나았다고 생각한 병이 다시 찾아온 환자, 파산 신고를 받은 회사의 대표 등.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상황은 이렇다. 상황은 그 사람을 절망시킨 원인이라고 쉽게 단정된다.

하지만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상황에 절망하는 것은 진정한 절망이 아니다.

 

한편 여러 가지 단점이 절망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외모, 부족한 점, 재능 부족, 야심이 부족한 성향 같은 것들. “나는 뚱뚱해” “지금의 내 모습이 싫어” “더 용감한 성격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처럼 우리는 자기 단점을 고치는데 시간을 많이 들인다. 운동선수의 몸매가 부러워서 다이어트와 운동을 시작한 사람, 많이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교양을 쌓는 사람, 수줍은 성격을 고치기 위해 연극 수업을 듣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단점도 절망의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우리가 지닌 이런저런 특징이 마음에 안 들어 섭섭한 것일 뿐이라고 다미엥은 말한다. 이것 때문에 자신의 존채 자체를,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이유가 없다고 한다.

단점으로 인해 절망하는 건 자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작가는 반문한다.

 

결국 절망은 나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라고 작가는 규정한다. 절망에 빠지면 부족한 나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절망과 우울증, 자살 시도의 관계에 대해서 작가는 차분하면서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

절망은 많은 경우에 자살 충동을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매우 위험한 증상이다.

그런데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면서 위험도는 다르다고 구분하였다.

하나는 진정한 나 자신이 되고 싶으나 되지 못해 느끼는 절망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느끼는 절망이다. 

위험도로 따지면 당연히 전자가 덜 위험하다.

 

자살은 자신을 파괴하려는 의지라고 흔히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아무리 애써도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자 결국 선택하는 것이 자살이라고 다미엥은 말한다.

키에르케고르는 명저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과 자기 파괴를 말했다.

 

『바로 절망의 괴로운 실체다. 끝이 내면으로 향하는 이 극심한 고통으로 언제나 우리는 무기력한 자기 파괴에 몰두한다. 절망한 사람은 절망으로 자기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안이 아니라 고통을 느낀다. 그 고통으로 앙심은 커져가고 이를 악문다.

과거의 절망을 현재 끝없이 쌓아가며 자신을 삼켜버릴 수도,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도, 자신을 없애버릴 수도 없어 절망한다. 이것이 절망이 쌓여가는 공식이다. 자아 때문에 절망이라는 병이 들어 열은 높이 올라간다.』

<죽음에 이르는 병> 35쪽.

 

 

이 책에서 인용으로 접하는 키에르케고르의 글은 단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곱씹게 되고 음미하게 되는 문장들이 많았다. 비록 덴마크어에서 불어를 거쳐 한국말로 번역한 거지만 그럼에도 원문의 빛나는 성찰이 전해졌다.

 

절망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이런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작가는 전해준다.

“너 자신 때문에 절망해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야. 네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너 자신에게 절망하는 거야.”

 

고통을 회피하거나 무조건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다고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대로 고통의 은밀한 실체를 밝히고 드러낸 후 이를 극복해야 자기 비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울증과 절망은 교집합을 갖지만 완전히 동일한 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우울증이 절망보다 범위가 넓은 거라고 한다.

우울증과 달리 절망은 철저히 개인이 자신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속한다. 절망한 사람은 자신을 부정적인 존재로 매도한다. (p.43)

 

50페이지를 넘어서면서는 행복에 대해 고찰한다. 철학에서는 행복 철학이라는 범주가 있다고 한다. 

절망에서 벗어나려면 온전한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 진정으로 행복한 게 뭔지를 알아야 한다.

 

키에르케고르는 행복주의 라는 의미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대신에 ‘미학’이라는 용어를 선호해 사용했다.

 

『인간 안의 미학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인간 안의 미학은 인간이 즉각 자기다워지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480쪽

 

 

다미엥에 따르면 원래 미학이라는 용어는 현재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처럼 예술 이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미학은 감성적인 부분, 즉 모든 생각 이전에 우리 안에 본능적으로 작용되는 부분을 가리킨다. 따라서 미학적인 인간은 본능에 충실한 인간을 뜻한다.

키에르케고르는 미학이라는 용어가 모든 행복주의 시각이 지니는 한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행복주의 관점의 한계란 무엇일까? 

우리는 단순히 감정적인 존재도 아니며 타인이나 자아와 곧바로 관계를 맺는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에 앞서 생각도 하고 자기비판도 하는 존재다.

그런데 행복주의 관점은 이를 간과한다. 이것이 행복주의 관점의 한계다.

 

우리는 행동을 하는 데 정말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의 행동을 보고 평가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피상적인 만족감을 갖고서 마침내 진정한 자신을 찾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쉽게 정체성 고민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해 절망하는 사람이 자신을 통찰력 있게 보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번민하며 절망을 겪는 사람이 올바른 길에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절망을 불행한 과거처럼 치유해야 하는 대상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절망할 줄 아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정상적이고 정신이 더 건강한 것일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느끼는 마음은 비정상이 아니라 실존적인 고민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는 매 단원의 말미에 「짚고 넘어가기」 코너가 있다.

그래서 본문의 논지를 다시 풀어서 설명하거나, 질문을 던진다.

철학자에 대한 책 답게 질문에 꼭 즉각적으로 답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철학적인 물음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고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불쾌하거나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해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고통은 여러분이 온전한 자신이 되는 데 방해가 되는 부정적인 현상일까?』

 

『이번 장을 읽으면서 혹시 그동안 속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는가? (…)

무엇보다 절망이 특별히 문제가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절망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어느 정도의 통찰력이기도 하다.』

( 62쪽)

 

 

모순 이라는 단어는 절망과 어울리는 듯 하다. 우리가 진실되게 살아왔고 또 살고자 한다면 모순이라는 걸 반드시 겪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어느 정도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 준다.

 

절망은 우리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주는 거울같은 것이다.

 

시간에 대한 관념은 주관적이다. 절망에 빠지면 ‘시간이 영원히 무한할 것 같은 느낌’이나 ‘현재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은 더 크게 다가온다.

 

절망은 절대로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절망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불쾌한 기억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절망에 빠진 사람은 환자가 아니다. 적어도 절망은 질병이 아니다. 

답답한 감정, 방향을 잃어 막막한 느낌,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해도 지나친 비관주의도 아니고 불치의 병도 아니다.』

( 70쪽)

 

1장 진단하기 편을 정리하면, 절망이란 실존 문제를 깊이 고민하는 심리이다.

2장은 이해하기 편으로 열정의 영역을 다룬다.

 

우리 모두 열정을 품기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힘들고, 나아가 열정을 잊게 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 이렇게 해서 열정을 잊고 사는 일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작가 다미엥에 따르면 근대 사회를 만들어간 큰 흐름이 이 상황의 원인이라고 한다.

 

『17세기에 진행된 지식 혁명으로 탄생한 것이 근대성이다. 열정의 망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부주의해서 열정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탄탄한 시스템 안에서 철저하게 고안된 논리가 열정을 잊도록 부추긴다.』

( P.77)

 

우리가 절망하지 않으려면 열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2장에서 저자는 역설한다.

열정을 회복해야만 온전한 개인이 될 수 있다. 개인으로서의 독립성은 천편일률적인 지식을 주입받아서 이뤄지지 않는다. 남들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언명은 파격적이다. ‘생각이야말로 전혀 개인적이지 않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타인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서 나왔다고 여긴다.

하지만 작가가 보기에 우리는 생각할 줄은 알지만 정작 온전한 개인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군중’ ‘다수’ ‘국민’ ‘대중’에 호소하는 것은 현재 정치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이 단어들에는 실체가 없다.

그냥 많은 수의 무리, 획일적인 무리가 된 개인들 일 뿐이다.

 

개인들이 이처럼 불특정 다수 상태로 전락하면 정말 위험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개인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익명성을 얻으면 책임감이 없어진다.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면 아무 책임도 없어진다. 심리학자들도 잘 아는 현상이다.

현실의 구체적 세계에서 친절한 개인도 불특정 다수에 녹아들면 자제력을 잃을 수 있다.

 

작가는 익명의 대중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익명의 대중에게서는 좋은 것이라고는 나올 수가 없다. (P.89)

 

단체의 행동이 가치를 지니려면 각자 온전하게 개인적으로 참여할 때 뿐이라고 한다.

이를 부연하면서 예전에 레지스탕스 집단을 예로 든다. 레지스탕스들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서로 연대했지만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활동했다고 한다.

 

저자는 열정이 개인을 보호해 준다고 한다. 

감정과 열정은 동의어가 아니다. 감정은 열정과 다르다.

감정은 다른 사람들과 동조하는 방법이고, 열정은 특정 명분에 헌신하는 자아의 존재를 단단히 보호하는 방법이란 것.

 

『열정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지 못하게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체성을 보호해주는 유일한 방패막이다.』

(P.90)

 

또한 열정은 지식의 반대말이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열정은 지식을 자신만의 눈으로 보고 새로운 이해를 생성하는 매개체다.

 

객관적인 지식을 얻겠다는 의지가 주체적인 생각을 하겠다는 열정적인 노력과 만나면, 가치는 높아진다. 

 

나아가, 객관적인 지식은 아무런 확신도 주지 않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보편적인 가치가 있는 진실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있을까? 라고 질문한다.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입력하는 의미의 ‘생각’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런 사유함이 아니라,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그 자체만으로 빛나는 진실을 얻을 수 있다.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

『처음에는 객관적인 진실에서 출발하지만 명상에서 볼 수 있는 인내로 나만의 진실을 이끌어내겠다고 다짐하는 일』이 필요하다.  (p.100)

 

열정을 갖고서 주체적인 생각을 하도록 노력하고 인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식은 그저 하찮은 것으로 전락한다.

다미엥은 ‘요즘 사람들은 지식을 주체적으로 수용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고 부르짖는다.

 

객관적인 지식이라 쓰고 무관심이라 읽는 현실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이번에 읽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저자가 던지는 물음은 독자를 뜨끔하게도 한다.

 

『배우고 교양을 쌓고 싶은가? 교양을 쌓아서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가? 왜 끝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면 기분이 좋은가? 아는 기쁨 때문인가, 아니면 정보를 얻었다는 기쁨 때문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간단히 이것만 생각하면 된다.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워 기쁘지만 이렇게 배운 지식 중 오랫동안 공들여 알아낸 것이 있는가? 없다면 진정으로 알고 싶은 마음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다.』

( p.101)

 

 

저자의 안내를 따라서, 키에르케고르를 공들여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진정으로 알고 싶은 마음에서 책의 나머지를 읽고 싶다.

 

 

『고통과 괴로움이 얼마나 많은지도 인내가 얼마나 대단한가와 마찬가지로 암기로 위워서 배운다. 모두 암기한다.

자기 의견을 표현해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은 문제아 혹은 바보로 취급받는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한다. 이렇게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시저가 알렉산더의 도서관을 전부 불태웠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안심할 때가 있다. 어쩌면 인류가 기존의 과도한 지식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기를 바라는 순수한 의도가 우리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철학적 단편에 붙이는 비문학적 해설문> 170쪽, 쇠렌 키에르케고르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서 책을 제공받아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