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지하 비밀 도서관

사나예 2018. 7. 7. 01:48

처음에는 막상 읽으려니까 더럭 겁이 났다. 이것은 실제의 이야기이고 게다가 엄혹한 전장터의 현장의 이야기인 것이다. 작가인 델핀 미누이는 저널리스트로서 오랫동안 중동, 아랍 분쟁 지역을 취재해온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읽은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스스로도 깜짝 놀랄만큼 책에 몰입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흥미롭고 호기심이 일어서 책장이 왠만한 픽션만큼 훌훌 넘어갔다. 이는 전적으로 델핀 미누이의 필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역량은 저자가 이 필드에서 전문성을 갖췄음을 확실하게 인증하는 것이었다.

 

시리아의 다라야 라는 지역은 요충지이자 아싸드 대통령이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전쟁터였다. 당연히 주민들은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델핀 미누이는 2015년 10월 15일에 인터넷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고 전율한다. 페이스북 페이지 ‘시리아 사람들’의 사진이 그것이었다. 시리아를 일부러 탈출하지 않고 그 곳에서 저항을 하는 청년들이 찍은 것이었다.

사진들 중에는 기이한데 이목을 집중시키는 한 장이 있었다. 도서관의 사진이었다.

 

델핀 미누이는 자연스럽게 또 운명처럼 그 사진에 사로잡혔다. 그 곳의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같은 걸 느꼈다. 그런데 다라야는 현지인도 들어가기 쉽지 않은 곳이어서 외국인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인터넷의 메신저였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델핀 미누이가 아흐마드라는 저항가 청년과 1년동안 채팅과 메일을 나눈 이야기이다.

 

델핀 미누이는 그다지 두껍지 않은 이 책에서 현장의 이야기와, 국제 시사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연결해 들려준다. 언어는 뉴스 보도자의 형식도 있지만 문학적, 시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쟁의 르뽀 이야기인데도 몇몇 문장들은 밑줄을 긋고 자주 읊조려 보게 된다.

 

아흐마드와 동료들이 왜 다라야 고향을 떠나지 않은걸까. 이 책에 몰입하는 포인트는 여기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델핀 미누이는 그 이유를 아흐마드의 목소리를 전해주면서 천천히 독자에게 설명해준다.

고백하자면 나는 도입부의 이 부분부터 델핀 미누이에게 설복되었다.

아흐마드와 젊은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이 다라야를 떠나지 않고, 정부군에 저항하는 것을 이해하면서부터 책을 읽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꾸 뭉클하고 울컥했다.

 

나는 시리아 뉴스를 해외뉴스 지면으로 읽어왔다. 하지만 그것이 시리아 내전을 온전히 전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었음을 느꼈다.

나는 참으로 무지했다. 그런데 저자 델핀 미누이는 어렵지 않게 친절하게 그러면서도 핵심을 짚어서 독자인 나에게 시리아 전쟁의 이유를 알려주었다.

어떤 설명조가 전혀 아니었기에 더욱 이해가 금새 되었던 것 같다.

 

왜 이 책이 프랑스 아마존 인문분야에서 1위를 기록했는지 알 수 있었다.

 

『 “전쟁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봅니다. 독서는 이러한 기분 대신 살아갈 힘을 줍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인간성을 유지하려는 것이에요.” 』

(73쪽)

 

델핀 미누이는 아흐마드라는 청년 저항가를 중심으로 한 다라야 지역의 모임을 들려준다.

스카이프, 왓츠앱, 메일 같은 인터넷과 모바일 소통창을 통해서 그녀가 들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우리는 작가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를 다시 듣는 셈이다.

 

다라야에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8월까지는 거의 매주 폭격이 있었다. 

주인공 아흐마드와 동료들은 부모를 비롯해서 친구, 이웃들이 매달 죽는 일을 겪었다.

물론 그들 자신도 전쟁의 한복판에서 항시 죽게 될 위험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다라야는 정권에 의해서 강제로 봉쇄되어 있었다.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주민들이 고립되었고, 독재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잔류를 자청한 젊은 운동가들이 함께 있었다. 전체가 8만 명에 달했다. 

원활하지는 못해도 미디어센터가 있었고 인터넷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아흐마드와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저항운동을 하였고 이를 인터넷과 영상,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미누이와 연결될 수 있었다.

 

아흐마드를 통해 듣는 당시의 다라야의 상황은 암울했다. 알 아사드 정부는 전쟁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강대국을 상대로 선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다라야는 철저히 이용되고 있었고 무차별적인 폭격의 희생을 감당하고 있었다.

한 두 달이면 봉쇄가 풀리리라 기대했지만 그 기간은 몇 개월을 넘어가고 있었다.

 

꼼짝없이 고립된 상황.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집이나 방공호에서 몸을 숨겨야 하는 현실. 그 속에서 아흐마드와 친구들은 우연찮게 다량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역의 대학교수의 장서였는데 처음에는 주인공들도 그렇게 그 책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견디는 와중에 책을 발견하는 일이 활력소가 됨을 그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의지를 가지고 책을 찾아가다 보니까 많은 책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다라야는 전쟁 전에 지적인 활동이 활발한 도시였다. 책의 수준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고 종류도 무척 다양했다.

 

아흐마드는 작은 도서관을 꾸미기로 계획했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들이 읽어서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소중한 책들이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애석하기도 했기에 한군데로 모은 것이다.

우리가 ‘도서관’이라고 생각하는 형태의 말끔한 외형은 전혀 아니었다. 정확히는 ‘책 보관소’, 책을 모아놓은 장소일 뿐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곳이 바로 도서관의 본질이기도 한 것이었다.

책을 모아서 깨끗이 구분하고, 그곳에 근처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흐마드는 단출하나마 조직을 짜서 책을 대출하고 도서관 사용 규칙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소문이란 무서운 법이다. 제아무리 전쟁통이었지만 새로운 도서관이 개원했다는 소식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그래서 지하에 지은 이 비밀 도서관은 1년동안 다라야의 사랑방이 되게 되었다.

위치도 가장 안전한 곳에 지어서 방공호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옆에서 누군가 죽는 일이 일상이 되다보니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도 무뎌지기 시작했다.

간혹 폭격이 멈춘 때에는 사람들은 무료해지기도 했다.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오도가도 못하는 다라야에서 그들에게 도서관은 세상을 향한 창이기도 했다.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숨구멍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이 도서관과 그 곳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순수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20대때 대학 도서관의 크기와 수준에 감탄했던 순수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정보는 홍수를 이루고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별다른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비록 나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전쟁 이야기지만 책과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자극을 던져주었다. 특히 20대 초반의 때에 폭넓은 책을 접하고, 어떤 책에 심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되새겨 보게 한다.

 

『하나의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머뭇거리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며, 멈췄다가 또다시 시작했다. 그러면서 배워나갔다.

모든 책은 저마다의 이야기, 또 다른 인생, 하나의 비밀을 품고 있었다.』

(p.73)

 

미래가 보이지 않고 죽음이 옆을 비켜가는 전쟁터. 그 속에서 책속의 주인공들은 비밀 도서관을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말 그대로 책을 탐독해 나갔다. 나중에는 원하는 책을 외부에서 구해보는 일을 시도하기도 한다. 

도서관은 작은 대학이 되기도 했다. 책을 읽은 후 전쟁에 대해 대화하고, 이슬람 민주주의의 건설에 대한 토론을 하며 열띤 지성의 나눔을 가졌다.

 

『임시휴관이 끝난 뒤 오마르는 도서관에서 전보다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새로운 강연도 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배움과 나눔을 향한 갈증이었다.』

( 137쪽)

 

비밀 도서관에서 사람들은 정말 여러 분야의, 온갖 주제의 책을 읽었다. 가장 인기있는 대출도서가 코엘료의 <연금술사>라는 대목은 의외이면서도 반가운 이야기였다. 시리아가 아닌, 전쟁터가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도 재밌게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생소한 시리아 소설가의 작품도 있었다. <껍질>이라는 소설. 작가가 반정부 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어서 12년 후에 풀려나서 쓴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다라야의 사람들도 영화 <아멜리에>를 좋아하고 <레 미제라블>을 다운받아 보았다. 

 

『소설은 실화가 갖지 못한 장점이 있다. 소설은 현실의 고속도로를 피해 상상력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전개, 결말, 새로운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 p. 181)

 

델핀 미누이는 비록 인터넷과 휴대전화로나마 그들과 함께 하면서 자신과 몇 개월째 소통을 하는 그들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만일 책을 쓰는 중에 누구라도 죽는다면 책을 계속 써야할지도 고민한다. 

2016년 8월에 다라야는 극적으로 봉쇄가 해제되었다. 이미 4년동안 2000명의 민간인이 죽는 엄청난 아픔이 있었지만 이제라도 풀려서 천만다행이었다.

 

결국 등장인물 중에 한 청년이 죽음을 맞고 말았다. 델핀 미누이의 시선을 따라서 책을 읽어왔기에 그 사람의 죽음이 정말로 안타까웠다. 살짝 눈물이 맺히고 가슴이 아팠다.

그 청년은 자유시리아군에 소속된 군인이었다. 

 

저항을 위해서 어쩔수없이 한 손에는 칼리시니코프 소총을 들었지만, 다른 손에는 책을 들었던 젊은 지성인이었다.

 

델핀 미누이는 살아남은 자들의 이후의 모습까지 들려주며 글을 매듭짓고 있다.

다라야를 가까스로 빠져나온 주인공들은 시리아의 바깥에서 새로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1년 동안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생각을 살찌우고, 사상을 배우고, 서로 함께 했던 경험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체험이 있었기에, 전쟁 후의 상흔으로 좌절하거나 환멸에 빠지지 않고 의미있는 삶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진심이 돋보였다. 

전쟁 속에서 폭력에 점철되지 않고, 지성과 정의로움을 고민하며 살았던 혁명가와 저항가들을 존중하는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다라야에서 1년동안 비폭력으로 폭력에 저항하고자 몸부림쳤던 청년들에 대한 헌사 같은 책이다.

 

몇 십명의 청년들이,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단단하고 꿈쩍도 않는 세상의 논리를 깨부수지는 못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책 속에 나왔던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들은 눈물겨웠고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2011년 3월에 시작된 시리아의 전쟁. 

그 속에서 평범하지만 영웅같은 저항을 하고, 인간성의 존엄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일깨웠다.

 

대중적인 문체와 친근한 어조로 쓰인 이 책.

시리아에 대해서 알고 싶은 이들에게 더없는 감동을 줄 것이다.

 

 

 _ 책에서

 

 

하지만 이 비상시국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마음, 미지의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마음은 뜨거웠다. (p.153)

 

 

“전쟁이 아닌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몰라요.

연필을 쥐는 것.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것. 평상심을 누리는 것. 이제 우리에게는 너무나 그리운 것이 되어버린 평범한 일상 말이에요.”  

 (p.109)

 

 

“예전에 친구와 함께 영화 <레미제라블>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바탕으로 그린 그 영화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은 것이었죠. 얼마나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했는지요!

하지만 동시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프랑스는 결국 그들이 바라던 것을 얻어냈어요. 사회적 정의, 민주주의. 이것은 저에게 희망을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아멜리에>를 수없이 봤을 때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과도 같은 희망이었어요.”

( 85쪽)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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