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달그락달그락 _월간 정여울

사나예 2018. 6. 4. 05:27

 

책을 받고는 금새 다 읽고는 덮어두었다. 정여울의 신작 <달그락 달그락>.

월간 정여울이라는 테마로 매달 저자는 에세이를 선보일 거라고 한다. 그 첫 번째 수필집이다.

 

익숙한 작가이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이 편안하게 속독을 했다.

한 주가 지나서 다시 읽어보았다. 역시나 편안하다.

그런데 첫 번째의 속독에서 느끼지 못한 감동들을 느꼈다. 깨닫지 못한 일깨움을 곳곳에서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의성어 의태어 시리즈를 매달 펴낼 계획이다. 

달그락 달그락. 평소에 한번도 의미있게 주목해 보지 못한 의성어이다. 정여울은 이 말에서 작지만 빛나는 가치를 끌어낸다.

「우리가 귀를 활짝 열고 듣지 않으면 워낙 작아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은 나직한 속닥거림, 눈을 뜨게 뜨고 오래오래 관찰해야만 보일 것 같은 일상의 소박한 경이로움을 담고자 했다.」

 

일상의 소박한 경이로움. 다시 한번 되뇌여본다. 

시적 허용같이 사뭇 어울리지 않을 듯한 어절의 연결이다. 소박함과 경이로움이 이렇게 어울릴 줄은 미처 몰랐다.

정여울은 책의 곳곳에서 바로 이것을 시도한다. 작고, 사소한 것들. 그런데 귀 기울여보면 마음을 주어보면 결코 무가치하지 않은 것들.

그런 감정, 생각, 사물, 자연, 경험들을 월간 정여울의 형식으로 가지런히 담았다.

 

작가가 첫 잡지에서 택한 화가도 이러한 주제의식에 부합한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뷔야르. 정여울 스스로도 이 화가의 진가를 늦게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그림들은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수채화풍이 주되지만 르노아르처럼 예쁘장하거나 그렇진 않다.

그래서 심심하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볼수록 정여울의 평가에 수긍하게 된다.

「그 수많은 화가들의 화려하고도 개성 넘치는 빛의 향연 속에서 그의 그림은 너무 조용하고도 담담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유명한 작품들 사이에 마치 ‘숨은그림찾기’ 속 꼬마 국자나 몽당연필처럼 수줍게 옹송그리고 있는 에두아르 뷔야르의 그림이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려깊은 오래된 친구. 작가 정여울은 내게 마치 그런 친구처럼 조곤조곤하게 말을 건넨다. 진정한 친구가 그러하듯이 아첨을 하는 게 아니라 뼈있는 조언도 툭툭 건네준다.

위로와 충고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받아들이는 독자 스스로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정여울은 분명 그런 흔치 않은 작가에 속했다.

 

요즘 화두 중의 하나는 소통과 공감이다. 

언젠가부터 페북이나 인스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공감과 소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가벼운 공감도 공감이긴 하겠지만 깊이, 오래 생각하지 않고 이해하는 것이 습관화되고 그것이 우리의 이성적 사고를 얄팍하게 만들고 있다고 정여울은 말한다.

 

『진정한 소통은 ‘메시지의 내용’을 뛰어넘는다.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문장을 아무리 반복해도 그 애절한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아도 오직 사소한 몸짓이나 잠깐의 눈빛만으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하는 관계가 있다.

소통은 언어를 통해 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때로 결정적인 소통은 언어를 넘어선 자리에서 성립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더 깊고 간절한 이야기들, 쉽게 기계의 힘을 빌려 소통하지 못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73쪽)

 

정여울은 지난 몇 년동안 우리 사회에서 유행했던 미니멀 라이프, 심플 라이프를 고찰한다.

 

구매한 후 즉시 사용하지 않아서 쌓여가는 물건들. 그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일차적으로 단지 그것을 ‘버려서 없앤다’는 뜻이 아니라, 잊혀진 채 가치를 잃어버린 물건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이라고 한다.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자신의 쓸모를 발휘하지 못한 물건들에게 진짜 주인을 찾아주는 일. 그리하여 그 사물과 나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는 일.

나아가서 심플 라이프는 물건들이 더는 버려지거나 쌓이지 않도록 스스로의 공간을 좀 더 지혜롭게 배려하는 일이기도 한다.

 

『물건의 자리를 비움으로써 마음의 쉴 자리를 되찾아가는 것.

심플 라이프는 상품의 소비를 통해 우리 자신의 소중함을 증명하는 끝없는 인정 투쟁과 결별하는 것이며, 우리를 신상품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상 속의 실천이다.』 (p.81)

 

저자는 부모의 기대에 따라 착실하게 10대와 20대를 보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매일의 삶이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회에 나와서 작가라는 ‘불안정한’ 길을 택하면서 청춘의 끝자락에서 유럽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갔을 때 안전한 삶을 보장할 그 어떤 ‘대책’이 없이 무작정 씩씩하게 처음 가보는 곳으로 갔다.

그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 책이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오르기도 했지만 여행을 처음 할 때는 오로지 여행 그 자체에 목적을 두었다고 한다.

 

파리, 런던, 로마. 베니스, 베를린,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오랫동안 많은 곳들을 여행하면서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발견하는 과정은 마냥 순탄치는 않았다고 한다.

서서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진짜 나’를 알아가는 일. 이 길에서 치룬 성장통에서 댓가보다는 짜릿함이 훨씬 컸다고 한다.

여행에서 값진 무형의 것을 얻었다면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것들을 적합하게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여행에서 얻은 그 소중한 발견의 힘을 일상 속에서 녹여내는 것.

그것은 단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나 ‘자존감’의 문제를 넘어, 삶을 사랑하는 따뜻한 눈을 가지는 것, 나아가 세상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을 품어 안는 것이다.』

(p.109)

 

 

정여울의 수필에서는 늘 끝에서 다루는 주제,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지난번 작품에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끝맺었는데, 의미심장하고 좋았다.

 

사실 이번 책은 컨셉이 월간 정여울인만큼 그렇게 엄숙하게 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마무리에서 작가가 다룬 문학과 인물은 역시나 존재감과 여운을 던져주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이었다. 원작 월든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논픽션/에세이를 읽다보면 저자들이 주목하는 대상으로 월든은 심심치 않게 꾸준히 등장하는 책이다.

 

정여울은 ‘외딴집의 상상력’이라는 제목으로 월든에 주목했다.

소로는 잘 소유하는 법이 아니라 ‘잘 잃어버리는 법’을, 그리하여 ‘잘 사라지는 법’을 연구했다. 

자발적으로 고독해짐으로써 소로가 배우고자 한 것은 승자 되는 법이 아니라, ‘자연’이라 불리는 타자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려고 했다.

 

『오늘날 무한 미디어 사회에서 저마다 시끌벅적한 1인 미디어를 경영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어떤 빛깔의 고독을 통해 어떤 생존의 기술을 습득해야 할까.』

(p.194)

 

 

<달그락달그락>은 수필의 형식과 잡지의 존재 양식이 만나서 편안하게 읽혔다.

잡지가 그러하듯이 어느 페이지를 펼쳐서 읽든지 금방 몰입해서 읽을 수도 있다.

 

중간중간에 에두아르 뷔야르 화가의 그림들로 쭉 채워져 있어서 전체가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다.

 

감각적이면서도 포근한 수필을 읽고 싶은 독자. 

신개념의 잡지를 만나보고 싶은 독자.

이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책이었다.

 

 

『처음으로 여유롭게, 외부의 시간과 타인의 시선에 쫒기지 않고, 미우나 고우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대책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나에게 축복처럼 주어진 이 하루를 향기롭고 먹음직스럽게 요리하고 싶다.』

 

 

아슬란

Aslan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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