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희망할 수 있는것

사나예 2019. 12. 4. 20:59

 

 

 

 

 

김영민 교수의 새로 나온 산문집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래, 산문 읽는 기쁨’이 이런 거였지 깨달았다.

신형철의 산문 이후로 읽을 만한 책이 탄생했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김영민도 신형철을 인용하는 대목을 만났을 땐 소름.^^

비슷한 지향점을 향하는 이들이 같은 책과 작가들을 읽는다는 걸 확연히 깨달았다.

 

본디 빼어난 산문은 제목에서부터 감흥을 일으키는 법.

 

「정확한 사랑의 실험」 「사소한 부탁」(황현산). 

개인적인 최애인 「쓸 만한 인간」이 그랬다.

 

제목이 전부는 아니지만, 탄탄한 내용을 아우르는 책은 반드시 제목에 임팩트가 있다.

본 에세이도 그런 맥락으로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낸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저자는 공자의 ‘논어’를 텍스트로 하여서 에세이를 써내려간다.

 

첫 번째 챕터에서 70페이지에 이르기까지 공자의 사상을 분석하는 시각, 입장에 대해서 피력한다.

보통 이렇게까지 ‘서문’이 길면 살짝 어려움을 느껴온 나였다.

게다가 감성적인 글도 아니고 본격 인문학의 글인데 신박하게 잘 읽혔다.

준비운동을 제대로, 오래 한 느낌.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검색한 느낌을 가지게 했다.

그럼으로써 2번째 채프터에서 시작되는 본격적인 논어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책을 통해서 잘못 알았던 지식을 아는 것이 참 유익했다.

공자를 춘추전국 시대의 사상가로 알아 왔는데 엄밀히는 춘추시대의 인물이었다는 것. 춘추시대는 전국시대와 제법 오래 떨어져 있어서, 뭉퉁그려서 다루는 것은 정밀함을 떨어트리는 것이라고 한다.

 

공자는 성인이 아니었고 위인처럼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다고도 말하는 김영민 교수.

또한 공자의 논어와 사상들은, 그의 천재적인 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당대의 사상과 담론의 소산이라고 보는 게 옳다고 한다.

 

비단 공자 뿐 아니라, 역사 속의 사상가들은 당시 동시대의 지성사의 흐름에서 여러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태어났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한다.

 

‘논어’에서 나오거나 주요하게 언급되는

인 仁, 정 正, 욕 欲, 예 禮, 습 習, 경 敬, 지 知,

성 省, 효 孝, 무위 無爲, 사 事

등을

자신만의 칼럼을 쓰듯이 흥미롭게 기술해 간다.

 

정 正 편에서

사랑과 미움을 논하는 대목이 무척 와닿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나. 상대에 대한 오롯한 이해와 공감 속에서,

자기의 역량을 과신하거나 불신하지 않으면서, 어떤 기만에도 빠지지 않으면서, 상대를 정확하게 사랑할 수 있나.

우리는 누군가를 제대로 미워할 수 있나. 자기의 편견을 투사하지 않으면서,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으면서,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마치 잘 아는 양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정확하게 미워할 수 있나.

미워해야 할 상대를 정확히 미워하지 않고, 잘 모르는 타자에게 막연한 복수심을 발산한 대가는 혹독하다. 미움의 파국은 대개 상대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속에서 자신의 막연한 앙심을 투사했던 파국이다.』

(91쪽)

 

 

공자를 폄하해서는 안 되지만, 반대로 그를 신화해해서 숭배시하는 시도도 사실과 다르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논어』가 전하는 공자는 생각보다 무능하기도 하고 예상보다 모순적인 인물이다.

공자가 우리처럼 보통 인간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질병에 취약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의외의 부분에서 까탈스럽고, 남들의 험담에 시달리고, 불건전한 생각도 종종 해가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을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성인 聖人으로 둔갑하게 되는 공자의 나날들도, 그의 살아생전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적당히 방만한 순간들과, 충분히 진실하지 못했던 순간들과,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던 순간들로 채워져 나갔을 거라는 말이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이처럼 완벽하지 않고 인간적이며 불완전한 공자를, 제자들은 따르고 존경했다는 점이다.

물론 공자는 뛰어나고 천재적인 점도 소유하고 있었다. 제자들은 그런 모습 만큼이나 공자의 실패했던 모습까지 사랑했을 거라고 김영민은 부연한다.

 

결국, 신이 아니라 인간에 불과했던 사람, 결핍을 느꼈기에 과잉을 꿈꾸었던 사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知其不可而爲之者)을 사랑했던 것 같다.

 

【사실, 사람들은 때로 완벽하게 계산하고 행동하는 합리적 인간보다는 서투른 열정의 인간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끌리곤 하지 않던가.

매료된 이들은 텍스트를 남기고, 남겨진 텍스트는 상대를 불멸케 한다.】

(107쪽)

 

 

알려졌다 시피, 공자가 살던 시대는 만성적인 전쟁의 시대였다.

공자와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의 꿈은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공자와 제자들은 ‘해도 안 되는 줄 이미 아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무력에 의존하는 전하통일을 추구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실패하기를 선택했다.

 

명백히 승리할 수 없다면, 다시 더 낫게 실패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공자는 예 禮를 통한 통치를 주장하고 가르치고 꿈꾸었다.

그런데 천하의 통일은 예를 통한 통치가 아니라 전쟁 기계로서 국가의 강화를 추구한 이들에 의해 달성되었다.

 

중국의 지배 세력, 왕조들은 바뀔 때마다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공자의 논어를 해석했다.

마침내 명나라 초기 황제들에 의해 『논어』는 과거시험 필수과목으로 정착했다.

한때 운동권 서적이었던 논어가 본격적인 고시 수험서가 되었다. 실패자의 텍스트가 기득권의 텍스트로 변신한 것이다.

 

『논어』 「자로」 편의 중용 이라는 덕목은 논어에서도 많이 사랑받는 개념이다.

그런데 중용 中庸의 정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두루뭉술하게 알았는데 김영민의 세심한 분석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중용은 단순히 산술적 중간을 의미하거나 극단적 행동을 회피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중용이란 에상하기 어려운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적절성을 찾아내는,

그러기 위해서 기존 규범이나 예상으로부터 적절히 이탈할 수 있는 차원을 포함한다.

 

예 禮의 매뉴얼을 따라 기계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이상 사회가 자동적으로 구현되는 건 아니다. 변화하는 세상속에서는 변치 않는 규범에 대한 고집보다는 임기응변이나 융통성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임기응변이란, 규범에 맞추어 자신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立) 경지를 완수한 사람만이 비로소 가능한, 최후의 경지라는 사실이다.

공자는 중용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단언했다.

 

규범을 뛰어넘으려면 규범을 우선 숙지해야 하고, 장르를 비틀려면 일단 장르의 규칙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숙련을 거친 소수의 사람에게 가능하다.

규범의 기계적 이행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규범을 적절히 활용하고, 때로 적절하게 이탈하기도 하는 행위. 이것이 중용이다.

 

공자는 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공자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을까??

『논어』에서 신의 존재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구절은 없다고 한다.

‘옹야’편에서 ‘귀신을 공경하되 거리를 두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 “하늘이 무엇을 말하던가?” 단락을 통해서 공자의 신앙관을 엿볼 수 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 들지도 말고, 신과 거래하려 들지도 말고, 스스로 신이 되려고 들지도 말고, 완전히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도 말고, 신을 무시하지도 말고, 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도 말고, 신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인간에게 허여된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다.】 147쪽

 

 

앎에 대해 지 知 에 대하여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

 

뭘 잘 모르더라도 자신의 무지를 인지할 수 있을 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

그러나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라면 절망하기에 충분하다고 김영민은 말한다.

왜냐하면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선 가짜 지식을 섬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알기 위해 배워야 하며, 배움에서 중요한 것은 질문이라고 공자는 역설한다.

그냥 질문이 아니라 정교한 질문을 훈련해야 한다.

정교한 질문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훈련된 행위이다.

 

공자는

『몰라도 아는 척을 하거나, 아는데 침묵하거나, 아는 것을 가지고 ‘꼰대질’을 하는 대신에, 질문하기를 선택』했다. 

(154쪽)

 

 

공자와 논어는 종종 오해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공자의 이미지를 정치 선전 도구로 사용하는 전통이 그런 일을 빚었다.

한편 서양인들은 공자를 보수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공자의 ‘논어’는 시대상을 재현하려는 노력이었다고 김영민은 해석한다.

 

재현은 역사서의 핵심적인 특성이다. 진정으로 뛰어난 역사책은 해당 과거를 그대로 복제해서 전시하려 들지 않고, 보여주고 싶은 어떤 특질을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설득력 있게 전달해준다.

 

‘논어’ 속의 공자는 신의 뜻을 재현하는데 골몰하던 제사장들과 거리를 두려한 당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들에게 재현해야 할 대상은 신보다는 그들이 상상했던 주나라 건국 시기의 문명이었다.

공자는 그 문명을 되살려 공동체에 구현할 수 있는 정치 권력은 자기에게 결국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럼에도 그는 논어를 통해서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였다고 김영민은 파악한다.

 

 

공자는 출신을 불문하고 제자를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공자는 어떻게 가르침을 베풀었었나?

공자 교수법의 특징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날 맹의자가 효에 대해 묻자, “어기지 말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끝난다. 나중에 다른 제자인 번지가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야 비로소 자세히 부연해주었다.

 

【공자는 상대가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하나를 보여주었는데 세 가지를 들어 반응하지 않으면,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즉 지식을 떠먹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배우는 이는 “말에 들어있는 실마리를 잘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233쪽)

 

관직에서 공무를 수행하기도 했던 공자는, 자신의 이상에서는 실패를 맛보았고, 세상과 불화하기도 했다. 

한때 과격한 운동권이었고, 열렬히 추종하는 제자들을 거느렸다.

 

공자의 인물됨과 행적, 업적에 대해서 여러 논란이 존재하지만, 그가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힙한 인물이었음 은 확실하다고 한다.

가장 아꼈던 제자 안연은 공자보다 훨씬 일찍 죽어 곁을 떠났고, 공자 자신도 결국 죽어서 제자들 곁을 떠났다. 그의 가르침만이 후대에 남아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공자는 사후에도 명성을 누렸고, 추억의 대상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

혹자는 선생의 무덤을 삼년간 떠나지 않았고, 혹자는 육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그렇게 애써 추억하는 사람들이 죽은 이를 지금까지 불멸케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불멸은 축복인 걸까 아니면 저주인 걸까, 하고 김영민은 묻고 있다.

 

공자와 <논어>는 아주 오래전의 인물이며, 문장이어서 해석과 분석에 한계가 뚜렷히 있는 고전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끝없이 애호하고 질시하고 서로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공자는 계속 소환되면서 오해의 대상이 되는 의문의 1패를 끊임없이 당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영민이 논어 에세이를 통해서 의도한 것은 결국, 올바른 이해였다.

 

논어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성급하게 혐오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제대로 모르면서 무작정 애호하는 것 또한 다른 의미로 공자를 오해하는 행위이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 양자로부터 거리를 두고, 논어를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유효할 가치들을 찾기 위해서 저자는 논어를 정확히 읽고자 했다.

 

그의 관점과 도움말을 따라서 공자와 <논어>를 올바로 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얻었다.

 

「간신히」 라기 보다는 「비로소」 얻었다고 나는 느꼈다. ^^

 

 

[ 책 중에서]

 

【과거의 특정 문화, 전통, 텍스트를 너무 성급하게 혐오하면, 그 혐오로 인해 그 대상을 냉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그 대상을 정교하게 혐오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마찬가지로 특정 문화를 너무 성급하게 애호하면, 그 애호로 인해 그 애호의 대상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 대상을 정교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 양자로부터 거리를 둔 어떤 지점에 설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핵심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