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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사나예 2019. 12. 3. 02:42

 

 

 

 

 

나의 〈휘트니〉에게

 

 

Documentary film  

 〈Whitney〉

 

 

한 해전에 이 작품이 개봉하였을 때 감히 보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국 가수 중에 가장 좋아했던 휘트니 휴스턴의 삶을 가감 없이 담았다는 다큐.

일면으로는 알고 싶으면서도 감당할 자신도 없었어서 패스했다.

 

2012년 2월의 어느날.

사망 소식을 들었던 때가 비교적 선명히 기억난다.

집에서 엘리베이트를 타고 있는데 액정 모니터로 달려있는 기계에서 나오는 뉴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휘트니 휴스턴의 죽음이라니.

 

다큐멘터리 <휘트니>를 이제야 마주한다.

지난주에 니나 시몬이라는 가수의 영화를 봐서인지 뭔가 용기가 더 났던 것 같다.

 

 

다큐 영화를 보는 내내 두 가지가 교차했다.

 

전성기 때의 노래하는 영상에 감동하는 울컥함이,

마음과 몸이 망가져가는 소식들에 안타까움이.

 

몰랐어도 좋을 이야기들을 다큐로 알게 된다.

그냥 내 마음 속의 영원한 가수로 기억하는 게 나았을까.

 

러닝타임이 다 흐르고 화면이 꺼지고 나서 한참 후에 노트북을 켰다.

커서가 깜빡이는 걸 보며 어떻게 글을 풀어가야 할까 고심했다.

 

내가 휘트니의 고통에 감히 동감한다면 그건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재능도, 인기를 얻으면서 수반되었던 온갖 질시와 공격들도

경험하지 않았으니.

 

그런데 이 다큐를 본 가장 큰 소득이라면, 

휘트니의 주변인들의 술회 였다.

 

휘트니는 엄청난 슈퍼 스타이면서 미국 팝 음악계의 거물이었다.

 

직업적으로만도 그녀와 협업하는 여러 스태프들이 있었다.

음악 종사자, 스타일리스트 헤어디자이너부터, 영화 제작자, 공연 쎄쎤 맨들 까지.

 

오빠와 올케도 가족이면서 고용인으로 휘트니와 함께 했다.

어머니 씨씨 휴스턴은 음악적으로나 사생활에서 상담자였다.

 

 

영화를 보면, 휘트니를 잃은 그들의 아픔과 회환이 느껴졌다.

 

휘트니가 마약을 많이 복용했다는 치부도 숨김없이 밝혀진다.

어머니로서 딸 크리스티나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휘트니 휴스턴은 가창력은 완벽했지만 자연인으로서는 불완전했다.

 

영화는 그렇게, 휘트니의 가족들, 주변의 동료이자 동지였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다양한 관점으로 들려준다.

 

휘트니는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팝 디바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미국 팝 역사에서 선명한 한 획을 그은, 걸출한 가수라는 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휘트니가 바비 브라운과 이혼을 하고, 이후에 마약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녀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공공연한 동네 북이 되었다.

 

3류 연예신문의 속성이 워낙 그렇지만, 신문들에서 휘트니의 파파라치 사진들은 단골 기사 거리였다.

 

 

영화는 어느 한 요소를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분명 휘트니의 몰락은 수많은 요소들이 

전방위로 그녀를 ‘압박’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 인터뷰이로 심리 치료사가 나왔는데 그분의 한 마디가 기억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정확히 알지 않으면 마음은 배회하기를 결코 멈출 수 없다.”

휘트니의 마음은 정처없는 배회를 계속했다.

 

그러면서도 휘트니는 지인들의 조언과 격려 속에서 계속 재활 의지를 불태웠다.

 

재활이 실패로 끝나면 의욕과 관심, 삶의 목표를 상실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가까운 측근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도 한다. 2011년 즈음이다.

“저 나라로 가면 세례 요한과 만날 수 있겠죠?”

스타일리스트한테 머리를 매만져 달라면서 “이제 주님을 만나 볼 거 같아”라고 했다고.

 

 

미국 TV 만화 「심슨가족」에서는 휘트니의 마약 중독을 지독하게 비꼬는 에피소드를 넣었다.

이혼 뉴스를 보도하는 한 백인 남성아나운서는 ‘14년도 많이 살았네요’라며 조롱했다.

 

그러나 휘트니의 사망이 알려진 이후 언론들은 표현을 자제했다.

한 아나운서는 ‘천국에서 성가대의 가수가 한 명 늘어났군요’라며 애도했다.

 

휘트니를 실은 리무진이 장례식장으로 향할 때

도로에는 끝없는 행렬이 나와서 휘트니와 함께 했다.

그녀의 가는 길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치부와 부족함을 비난하는 이도 없었다.

 

 

시대의 아이콘으로 많은 영상을 남긴 휘트니 휴스턴.

 

어떤 라이브 공연 직전에 스태프들과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는 모습이 짠했다.

휘트니는 공연, 앨범 녹음 전에 항상 가스펠 음악을 들으며 준비했다고 한다.

딸을 투어에 데리고 다녔던 휘트니. 크리쉬를 사랑스럽게 안으며 “Thanks Jesus.” 하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유튜브에서 휘트니 휴스턴의 클립에 댓글을 단다면, 나는 시편 구절을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한 공연장에서 휘트니와 스탭들이 낭송한 성경은 시편 32편이었다.

 

나는 휘트니에게 51편 17절을, 글을 마치면서 보내고 싶다.

 

 

The sacrifices of God are a broken spirit.

A broken and contrite heart, O God, you will not despise.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