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作. 시작!
영국 시인 테드 휴즈.
그가 시를 쓰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전달하는 시작 詩作법을 담은 책이다.
책에 대한 책, 소설에 대한 책은 자칫 딱딱하기가 쉽다.
구체적인 방법을 얻으려는 게 독자의 목적이지만,
저자의 화법이 좋다면 금상첨화.
시를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오늘부터 시작>은 그 화법이 좋았다.
테드 휴즈가 편안하면서도 재치있게 전개하는 시 쓰기 이론.
읽고나니 정말 시 한 편 짓고 싶어졌다.
부제는 이렇다. 바라보고, 만지고, 냄새맡고, 귀 기울여 진짜 내 생각을 쓰는 일.
사람의 정신 속에 살아있는 조각들이 있다. 정신의 조각들을 가지고 시를 쓰게 된다.
이 살아있는 조각들은 단어, 이미지, 리듬.
이 재료와 도구들로 시를 짓는다.
테드 휴즈는 ‘시’가 만들어지는 순간의 느낌을 또렷이 자각한다.
『마음속에서 새로운 시가 시작될 때의 특이한 흥분, 나도 모르게 솟아나는 강력한 집중력,
윤곽, 크기, 색깔, 꼭 맞는 결정적인 형식. 평범하고 생기 없는 것들 가운데서 생생히 살아 있는 특별한 실체.
이 모든 것들이야말로 제가 너무나도 잘 아는 것들, 절대로 다른 무엇과 헷갈릴 리 없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사냥이고, 시입니다.
단어, 이미지를 포획하는 것. 깨어있으면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만의 것을 발굴해서 포착하는 것. 휴즈는 이런 과정을 사냥에 비유한다.
언틋 추상적인 거 같으면서도 이러한 설명이 쏙쏙 이해가 되고 근사했다.
어렸을 때나 특정한 시점. 혹은 장소를 관찰하는 것에서 시가 출발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감각하면서 관찰하는 게 중요하고, 이를 통해 강렬하고 조심스럽게 대상에 다가간다.
관찰이 끝났을 때 심상과 감정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어떤 언어들이 솟아난다.
마음에서 우러난 말들을 사용해 시를 쓰도록 한다.
시가 무엇인지 하는 총론을 말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기법과 테크닉까지 전수해 준다.
자신이 쓴 작품은 물론이고 휴즈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들을 인용한다.
이럼으로써 작가의 이론과 제안들을 보다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모르는 시들이 더 많았지만 좋은, 재미있는 시들을 많이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저자의 가르침이 피상적이지 않고
시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작법들을 말하면서, 그 방법들의 장점을 피력한다.
제대로 집중하고 연습해야 할 방법들이지만 결코 어려운 건 아니었다.
저자는 시인 교수님처럼 친절하면서도 정확하게 독자에게 말을 한다.
BBC 강의를 책으로 펴낸 것이라 말하는 식의 문체가 편안했다.
시를 쓰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데 공통된 목적은 하나다.
어떤 연습이든 그 목적은
『짧은 시간에 깊이 집중하고, 전력을 다하여 실력을 빛내는 습관을 키우는 것』 이다.
테드 휴즈는 9일의 날짜를 상정하여서 흥미로운 범주로 시쓰기에 초대한다.
참신한 표현들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첫째날 –동물 사로잡기. 둘째날 –바람과 날씨. 셋째날 –사람들에 관해 쓰기
넷째 날 –생각하는 법 배우기. 다섯째날 –풍경에 대한 글쓰기
여섯째날 –소설 쓰기 :시작하기. 일곱째날 –소설쓰기 :계속 하기
여덟째날 –가족 만나기. 아홉째날 –달에 사는 생물
두 챕터 분량으로 소설 작법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야기하는데 테드 휴즈만의 시선으로 서술해서 유용하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최고의 시를 많이 남겼다. 그 중에 날씨와 바람에 대한 시들도 있다.
제목은 없는 무제 시이다.
『빗소린 줄 알았어, 있잖아 그게 휘어지더라고
그래서 그게 바람이라는 걸 알았지;
그건 파도처럼 젖은 채로 걸었고
모래처럼 마른 채로 휘몰아쳤어.
녀석이 스스로를 어떤 외딴 평지까지 / 몰고 갔을 때에야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리가 들렸던 거야--
그건 정말 비였어!
우물들을 채우고, 웅덩이들을 기쁘게 했지.
길 위에서 재잘거렸어.
언덕의 수도꼭지를 뽑아버리고 / 큰 물이 사방으로 퍼지게 했지;
밭을 흐트러뜨렸어, 바다를 들어 올렸어,
중심부를 휘저었지,
그런 다음 엘리야처럼 / 구름의 수레바퀴를 타고 가버렸어. 』
디킨슨의 시는 은유로 가득하지만 피상적이지도 모호하게 시적이지도, 암시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디킨슨의 은유들은 일상어보다 의미를 더 명확히 해준다.
디킨슨은 폭풍우 뒤에 찾아오는 천국같은 광채를 전한다. 깨진 하늘과 새로운 빛이 만들어내는 틈, 비를 불러온 뒤 물러나는 강렬한 색채의 구름, 무지개, 모든 사건이 지난 뒤 찾아온 광할하고 반짝이는 장관.
이 복잡하고 거대한 전경을 단 하나의 놀라운 이미지로 나타냈다고 테드 휴즈는 말한다.
휴즈는 서문에서 시를 쓰려는 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날씨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만의 느낌을 포착해야 한다. 그런 후에 쓰고 나서 스스로도 기쁠만한 시를 쓸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명심할 점은 주제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잡는 것이다.
예컨대 대다수가 그냥 ‘눈’을 주제로 뽑기 쉬운데, ‘눈’이라는 일반적인 개념 안에는 무한한 범주가 존재한다.
눈과 관련된 생생한 경험, 자신이 한 상상을 골라보도록 한다.
『겨울 풍경 Winter-Piece
찰스 톰린슨
당신은 깨어 있다. 창문은 모두 닫혀 있다— 창을 친 물방울이
중세풍 유리에 무늬를 새겨놓았다.
당신이 손을 대자 문은 딸깍, 총소리를 낸다.
얼기설기 다섯 개의 창살 사이로
떼까마귀 열다섯 마리가 날아간다
죽도록 굶주린 채, 조용히, 저희를 먹이지 않는
이 겨울의 풍경 위로.
저기, 놈들이 내려앉는다,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날이 선 대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행방불명이다, 백색의 항쟁이다.
황폐한 길 사이로 이어진
바퀴 자국, 여기, 산사나무 근처에서 놈들은 다시 한번
떡갈나무 잎을 알아볼 것이다, 서리가 잎의
모서리를 다시 날카롭게 벼려놓았기에. 바큇살을 따라,
바퀴통을 따라 구워진 완벽한 거미줄,
한파에 부서지지 않은 데스마스크를 움켜잡고, 거미가 매달려 있다. 이제 돌아와
당신은 본다, 구멍 나고 지저분한 창이 달린 그대의 집이 반짝이고 있다,
서리의 잎사귀가 전부 흘러내리고 있다.
시의 세계에서는 사물, 동물, 사람을 비유로 묘사하게 된다.
예컨대 시 속에서 잠자리는 헬리콥터 같고, 거친 바다 위의 화물선은 늙은이 같다고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을 언어 속 삶으로 데려오는 일에는 이처럼 비유라는 기법이 도움이 된다.
우리는 어떤 복잡한 장면이나 사건, 인상을 전달하고자 할 때 한두 가지 디테일을 통해서 전체를 암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별명을 붙일 때 눈에 확 띄는 상대의 특징을 잡아내고, 이후 그 사람을 그 특징으로 부른다.
짧은 이야기, 그리고 시에서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는 대신 그들의 겉모습에서 특징을 잡아내어 부르는 일은 매우 효과적이고 흥미롭다고 휴즈는 전한다.
글쓰기에는 제약이 없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자발성, 자유로움 가운데 시를 읽고 시를 쓸 때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고 한다. 이런 자세로 쓰는 시쓰기는 치유 효과를 주기까지 한다.
『모든 상상적 글쓰기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측면에서 과거와, 혁명적인 측면에서 미래와 연결된다. 또 그런 맥락에서 원죄, 폭발, 세상의 종말, 무시무시한 폭력 따위의 것들과도 닿아 있다고 할 것이다. 흥미로운 작업을 위해서 모든 것을 허용하자.』
(93쪽)
시어 詩語를 낚는 일은 물에서 물고기를 사냥하는 것과도 같다고 테드 휴즈는 다시 강조한다.
인간에게는 모두 내면세계와 사고 과정이 있다.
내면세계는 기억, 감정, 상상력, 지능, 본능적 상식의 세계다.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이것들은 항상 구동하고 있다.
사고 과정은 우리가 내면세계를 뚫고 들어가서 답을 찾고, 답을 증명할 증거를 포착하는 과정이다. 테드 휴즈는 이 과정을 습격, 설득, 사냥, 매복, 사냥, 투항이라고 표현했다.
글쓰기 연습은 다음과 같이 하길 저자는 권한다. 첫 번째 단계로 작고 단순한 물체에 집중한다. 그후 정해진 분량과 정해진 시간 내에 대상을 묘사하는 글쓰기를 통해 자유로운 운문 형식의 글을 써본다.
서술은 자세해야 한다. 대상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다뤄보자.
이 연습의 목표는 대상을 가능한 한 모든 방면으로 확장하고 비유해보는 것이다.
서술의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함을 놓치지 않는다.
객관적 현실과 자신의 서술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나면 글쓰기에 흥미진진하게 몰입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이 과제를 완수하였다면, 같은 대상을 반복적으로, 날을 달리하여 4회~5회 정도 실행해 본다.
『 부엉이 Owl
조지 맥베스
는 제일 좋아하는 것. 날아가지,
밤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누, 누구, 하면서. 녀석의 깃털은
둥글게 둥글게, 무성한 구석을 털어낸다
쥐구멍의 쥐를. 두 번
너는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누가
그를 찾고 있을까? 너는 듣는다
그가 숲 위를 맴도는 것을, 오 당신은
돌진하는 두개골에 달린
황금 고리가 되겠는가
그럴 수 있다면 그러겠는가? 부엉이는
겨울의 햇볕에 취약한 것처럼, 복면을 쓴 것처럼
보인다. 어둠 속의
나무껍질 같다. 둥근 부리는
뼈나 털로 만들어진 둥지에서 일한다.
휴식을 취하며 부엉이는
헛간 속의 눈이다. 나무의 몸통에
구멍이 난 것은 부엉이의 피
때문이다. 앙상한 털에
검은 발톱! 호두처럼 생긴 차가운 손이
머리통을 만진다! 병아리들을
다스리는 부엉이는 마치
신처럼 행차한다.
비가 방울방울
분홍색 눈을 찌른다,
괴롭힌다. 오늘 치 식사를 위해
(… 중략…)
부엉이의 뒷모습은 잔가지를
움켜쥔 그의 손.
살갗에 바람이 분다. 뼛속까지
내리는 비. 하루처럼
부엉이는 중단한다. 나는 부엉, 부엉이는 나. 』
저자는 계속해서 ‘풍경에 대한 글쓰기’ ‘소설쓰기’ ‘가족 만나기’ ‘달에 사는 생물’
카테고리를 통하여 저자만의 신박한 시작법을 들려준다.
테드 휴즈의 <오늘부터 시작>. 그냥 시집을 읽는 것도 좋지만
시 쓰기와 관련해서 수집한 시들을 읽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보통 시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설명을 듣고 읽는 것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다.
이해와 감상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사족 같았다.
허나 휴즈의 생각, 표현, 목소리로 듣는 시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신기했다.
시를 쓰는 방법에 초점을 맞춰서, 더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시에 대해서 설명하는 작가의 글(말)이, 시 감상을 저해하는 게 아니라
시를 오롯하게 읽을 수 있게 한다.
저자가 시쓰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참된 시인이어서 그러함이 가능했던 것 같다.
BBC 방송국의 강연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해서 이해가 쏙쏙 되는 것도 커다란 메리트.
시를 진정으로 읽고 싶어졌고, 그 어떤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자신감도 불어넣어 준다.
비아북 출판사의 <오늘부터 詩作>.
흡사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의 자유로운 영혼을 만난 것 같은,
유쾌한 독서 경험이었다.
『아주 잠시라 할지라도 머릿속 저택의 문을 열고 무엇인가 표현할 말을 찾는 것이 가능한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까마귀가 날아가는 방식, 한 사람이 걷는 방식, 거리의 모습. 10년도 더 전에 우리가 했던 일들에 대한 정보의 조각들이 잡히는 순간 말이에요.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심오하고 복잡한 것을 표현하는 단어, 강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순간순간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들리지 않는 음악, 강물에 떨어진 눈송이의 영혼,
언어가 이런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때, 그 순간을 잡아낼 때,
원자나 기하학 도형이나 렌즈가 아니라 인간의 호흡과 체온과 심장 박동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을, 우리는 시라고 부릅니다.』
(251쪽)
『우리는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오랫동안 겪었지만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라도 하듯 우리 내부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그 상황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경험입니다. 우리를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저는 우리의 진정한 지식, 지식을 인식하는 것에 대한 일상적인 관념을 넘어서는 무한한 방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테드 휴즈 Ted Hughes (1930~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