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首都는 한 나라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도시이다.
박소은의 〈어느 베를린 달력〉을 읽으며 책을 읽는 기간 동안 오롯이 한 도시만을 생각했다.
에세이스트 작가의 수필로 인문학적인 지성, 서정적인 감성을 모두 아울러 담았다.
특히 저자가 오래 체류한 경험에 기인한 표현들이
베를린을 성큼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성탄절 장식 전등이 알록달록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터에서 흘러오는 구수한 음식물의 내음이나, 과일과 계피 향을 넣어 끓인 따뜻한 포도주인 글뤼바인 Gluhwein 술 향기는
한겨울의 어둠과 추위를 잊게 해주는 최고의 유혹임에 틀림없다.』
작가는 독일 다른 도시에서 40년을 산 재독 동포이다. 2012년에 잠깐 서울로 나오셨다가 (본인 표현에 따르면) 적응을 못하고 독일로 돌아갔다.
베를린에서 2013년 거주하기 시작하셨다. 작가로서도 베를린은 낯설은 도시였다. 약간 과장하면, 재미있는 지옥인 서울에서 재미없는 천국인 베를린으로 건너왔다.
베를린의 혼란은 잠시. 이내 12월로 들어서면서 익숙한 체험이 되살아났다. 성탄절이라는 독일 최고 명절의 분위기 덕택이다.
저자의 글들은 굳이 꾸며낸 것이 아닌, 우러난 표현들임을 금새 알 수 있다.
젊은 날 독일에서 맞이한 성탄절을 추억으로 회상하는 글이, 신기하게 이해 되게 전달되고 있었다.
작가의 글은 과장됨이 전혀 없는데, 생생하게 베를린을 묘사하였다.
독일에서 12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이 지정 공휴일이라고 한다. 사실상 한달이 다 휴가 시즌이어서 왠만한 베를리너는 다른 곳으로 여행, 방문을 떠난다고 한다.
금새 베를린은 인적이 한산해 진다.
안 그래도 습지고 추운 베를린의 그 기간의 풍경이, 작가의 서술을 통하여 눈에 그려질 듯 전해졌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설날에 도심에 나갔다가 차도, 사람도 없는 풍경에 비현실적이었던 때가 떠올랐다. 베를린은 그 직전까지는 엄청난 대도시였기 때문에, 그 간극이 상대적으로 더 상당하다고 한다.
성탄절 전구와 장식만이 반짝이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거리와 도로는 미처 떠나지 못한 유학생이나 외국인들이 차지한다고 한다.
새해 카운트다운 하면 영화 영향인지 미국 뉴욕이 떠오른다. 그런데 베를린의 송년 파티도 유명하다고 한다. 독일 각지에서 모여들고 유럽과 해외의 젊은이들이 베를린으로 몰려든다.
연말에 우리들의 인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독일어에도 관용구 인사말이 있다.
“Guten Rutsch ins neues Jahr!” 직역을 하면 ‘새로운 한 해로 썰매를 타듯 무탈히 성공적으로 골인하라’ 라고 한다.
독일과 베를린을 사랑하는 저자이지만, 한국의 그리운 것들에 애틋함도 간직하고 있었다.
독일의 풍습에도 좋은 점이 있고, 우리의 것에도 정겨운 것이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독일에서 살고 있지만, 정신적인 경계 境界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감히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모순됨을 어렴풋이 알 듯도 했다.
『송년과 새해의 갈림길에 오면 늘 제야의 종소리가 그립고, 달력에서만 보았지만 동해 어디선가 불끈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새해 아침은 그 전날에 먹은 치즈며 서양식의 느끼함을 씻어줄 산뜻한 떡국이나 시원한 동치미가 그리워지는 묘한 갈등에 우왕좌왕하게 된다.』
예전에 한때는 유럽에 사는 한국인들이 마냥 부럽고 동경했던 때가 있었다.
몇 개월 유럽에 살고, 몇 달은 한국에 나와 살고 그러면 참 신날 것 같았다.
이 문화권과 저 문화권을 ‘자유롭게’ 오가며 사는 게 이상적일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년을 독일에서 살은 작가조차도, 단 몇 개월을 서울에서 살다 가도 한참을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했고 마음만 먹으면 모든 곳을 갈 수 있다고 해도,
한국 살기와 독일 살기는 변환 모드가 필요한 것이다.
작가는 섬세하고 통찰이 깊은 편이셨기 때문에, 더욱 그 적응의 강도와 밀도가 세고 짙었다.
베를린은 역사적 인물로는 두 사람으로 작가에게 각인되었다. 칼 Karl 그리고 로자 Rosa.
독일에서 매해 1월 두 번째 일요일에는 ‘1월 데모’라는 행사가 개최된다. TV로 방영까지 된다니 대중적인 기념일임을 알 수 있다. 바로 로자 룩셈부르크를 기리는 날이라고 한다.
<어느 베를린 달력>의 차별점은 매달로 구성된 점이다. 12월로 시작하여 11월로 맺는다.
놀라운 것은 근 6년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씌어진 글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베를린 살이를 풍성히 담았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아픔을 남겼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외국, 독일 베를린에서 그때를 통과한 동포도 크나큰 아픔을 느꼈다는 걸 알았다.
몸은 먼 땅에 있으셨지만, 깊은 상념과 처절한 고민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과거 독재시대를 떠올릴 만큼 암울의 늪으로 우리를 몰고 간 세월호의 침몰은 그야말로 모든 희망을 침몰시킨 듯 했다. 독재는 무너뜨리면 민주라는 함수를 암묵적으로 약속해준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은 모든 희망과 신뢰와 용기를 다 함께 끌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까닭일까? 희망이라는 불치병을 더듬어 가다보니 세기의 희망에 들떠 있던 1900년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 같다.』
박소은은 로자 룩셈부르크를 기리는 베를린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실수와 실패가 있었어도 그것을 단죄하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 독일의 방식을 성찰한다.
통일한 이후 베를린은, 지난 시대의 공산주의와 현재의 체제를 모두 품어 안는 실험장의 역할을 했다.
스탈린의 독재도 한 편에서 비판하지만, 로자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운동도 기억하려는 것이다.
베를린은 워낙 크기도 하지만 구역, 동네마다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우선적으로는 동 베를린, 서 베를린에서 차이가 난다.
동네마다 내음과 색깔, 성격이 다르다는 저자의 설명이 신기하다.
이에 비해 서울은 강북, 강남으로 획일적이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있고, 번화가는 상점가이고, 주택가는 아파트인. 편리하다는 명목으로 도시의 모습이 비슷해져 가는 게 꼭 좋은 걸까.
『베를린은 대부분 자기가 사는 동네가 자기 세계라고 할 만큼, 사는 이의 일상과 의식이 사는 곳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베를린에는 한동네 안에서도 어느 특정한 거리나 골목을 중심으로 매일매일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 즉 빵집, 카페, 술집, 식품 가게, 극장이나 기타 문화시설을 나름 골고루 갖춘 일종의 섬 같은 소위 ‘키츠’라 불리는 꼬마 동네를 형성하는 키츠 문화가 (골목 문화) 유명하다.
사는 사람들끼리 그 속에 소속감과 동질감을 공유하면서 자신들 특유의 키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양식과 문화를 서로 가꾸고 있다.』
파리, 런던, 뉴욕 등 유서깊은 대도시들. 이곳들이 모두 영광과 오욕을 거쳐왔겠지만
베를린만큼 극명한 교차를 경험한 도시도 없을 것이다.
2차대전 시기 나치 전범들이 오욕과 수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베를린에는 박물관, 유적지를 중심으로 일상 공간에서도 이러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베를린의 중심지 중 하나인 플뢰첸제. 이곳에는 높은 벽돌담으로 둘러싸인 형무소가 한 채 있다. 나치 정권 때 그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인 감옥이자, 형 집행장이었다.
1935년~1945년에 3,000명이 처형되었다. 유대인 뿐이 아니었다. 나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 평화주의자들, 일반 시민들까지 하찮은 정부 비판으로 밀고를 당하면 끌려갔다.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희생자의 절반이 외국인, 강제로 끌려온 노동자들이었다.
단체나 조직에 속하지 않고 이름 없이 일상에서 나치 비판과 저항운동을 한 시민들도 있었다. 예술가, 종교인,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가들. 전혀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오로지 나치를 반대하는 일념으로 저항에 참여했다.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작전 가담자들도 이 곳에서 처형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관심이 있어서 베를린에 간다면 꼭 찾아가 보고 싶어졌다.
나치에 희생된 이들의 상세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충격을 받는다. 이번 책에서는 한 젊은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플레첸제 형무소에서 처형된 분으로 크라에텐 이라는 피아니스트다. 그는 무고하게 잡혀와서 4개월 만에 사형선고를 받고 5일후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던 크라이텐의 나이 스물 일곱 이었다.
물리적으로 잔혹하고 악랄한 거야 익숙해서 읽고 넘어갔는데, 의외의 대목에서 탄식이 나왔다. 나치는 사형을 하고 유가족에게 사형 집행비까지 청구했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죽은 아들의 유품으로 가죽 구두 한 켤레와, 집행비 영수증을 받아본 어머니의 심정이란 어떤 거였을지. 상상이 안 된다.
작가는 형무소를 봄 4월에 찾아갔다. 나 또한 겨울에는 방문할 자신이 없을 것 같다. 그 참혹함에 떨리는 걸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박소은은 베를린은 ‘매끈하지 않은 도시’라고 단언한다. 때문에 뉴욕, 런던 등을 기대하는 방문객에는 충격적인 실망을 줄 수도 있다.
베를린은 다른 대도시에 비해 폐허와 공터가 많은 도시이다. 지난 세월 속에 시민들이 살아온 흔적들을 되도록 지우지 않고, 역사 위에서 새로운 걸 건설하고 가꾸는 경향이 뚜렷하다.
『베를린적인 매력이란 실상 대도시라는 정형에서 보면 아주 비매력적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상태 그대로 폐허가 되어 있는 공터나 사람이 살 수 없어 비어있는 집,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 옛 공장 건물, 통일 이후 장벽을 허물고 나서 생겨난 거대한 공지,
통일 이후 쓸모가 없어져버린 숱한 빈 건물 등등이 어우러진 특별한 분위기이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매끈하게 수리하거나 리모델링하지 않은 채 그가 살아온 시간을 역력히 담은 모습으로 도시 도처에 존재한다.』
옛 건물이 헐리고 새 건물이 들어서고, 편리하게 리모델링 하는 문화에 우리는 길들여져 있는 건 아닐까.
베를린의 과거 사랑은 심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서울을 개발할 때 앞으로 사려깊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우리의 문화에서 개인적으로도 아쉽게 생각하는 건, 죽음과 삶의 현장의 분리다.
일상의 공간에서 묘지를 찾아볼 수가 없고 이는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 때문일 거다.
언젠가 도쿄에 갔을 때 숙소 근처에 공원묘지가 있어서 놀랐던 기억도 난다.
유럽에서 묘지가 생활 공간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은 늘 경이롭게 다가오곤 한다.
말부터 ‘공동묘지’는 뭔가 딱딱하고 음침하기까지 하다. 허나 독일에서 공동묘지는 실상 공원 묘역, 안식공원 내지 정원이라는 표현에 가깝다.
베를린 각지 묘역에서 역사적 인물로는 다음과 같은 분들이 있다.
헤겔, 피히테, 마루크제 등 철학자. 브레히트, 크리스타 볼프 등 문학, 연극, 음악 분야의 예술인. 본 회퍼 목사, 정치인 대통령을 지낸 이 다수 등.
『산 자와 망자가 분리되지 않고 도시를 공유하고 공존하고 있다. 망자들은 산 자들이 점령하고 있는 중심부에서 추방되고 격리된 채 교외에서 그들만의 대형 단지 속에 외로이 누워있는 게 아니라, 거의 동네마다 크고 작은 묘소에 쉬고 있으니 결국 생과 사가 말 그대로 이웃하고 있는 셈이다. 베를린에는 가동 중인 공원묘역이 자그마치 160여 개나 된다고 하는데, 몇몇 알려진 오래된 묘지는 입장료도 없어 누구나 구경할 수 있는 야외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역사와 사상, 문화를 두루 살피는 저자의 시선은 음식과 소소한 것들의 관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베를리너 Berliner답게 검소하고, 독일 동포스럽게 진중하지만 재치와 유머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한국식 찜질방을 독일에 도입하면 대박일 텐데 누가 투자를 좀 안 하나 아쉬워한다.
재외동포 증후군이라는 작가만의 표현도 재밌었다. 「하루에 꼭 한 끼는 밥을 먹어야 하고 된장과 풋고추가 있는 식탁을 고수하는 증세」란다.
문학적인 정취를 물씬 느꼈고, 살갑고 정겨운 에세이 본연의 재미가 고루 담긴 책이다.
읽고나면 ‘이분 최소 베를린 홍보대사’다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오랜 독일 경험, 작가만의 예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했기에 신뢰가 갔다.
아니면 내가 너무 푹 빠져서 읽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예비 독자들은 읽을지 말지 스스로 판단하고, 현명하게 결정할 거라 믿는다. ^^
여하튼
내게는 ‘베를린’의 봄, 여름, 가울, 겨울을 느낄 수 있었고
사람들의 내음과 도시의 공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책 에서
『내 텃밭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깻잎 내음이 진하게 풍긴다.
깻잎은 가을이 깊어질수록 거의 독성에 가까울 만큼 향이 짙어진다. 그해 한국에서 어머니를 영원의 세상에 묻고 독일 집으로 되돌아왔을 때가 바로 이 무렵이었던 거 같다.
그 당시 어머니와 함께 우리 가족이 근 20년간 살던 시골집 테라스에 어머니가 손수 키우다 말았던 깻잎이 옥수수 키만큼 자라서 마치 나를 나무라듯이 내려다보고 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깻잎에 사무친 사연이다.
그 이후부터는 이사하는 집마다 발코니가 없으면 창턱에서라도 작은 화분 하나 정도는 깻잎 모종을 구해서 키우고 있다.』
『가을은 힘멜베트의 박하 잎 차 한 모금에 제일 먼저 전해오는가 보다.
크로이츠베르크 공주들의 정원과 베딩 천상의 정원이 대문에 빗장을 잠그는 무렵이면,
베를린은 일찌감치 가을을 아예 건너뛰고 겨울을 맞이하는 두툼하고 칙칙한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여름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화사하고 무성했던 초록 잎과 향기를 뿜을 테지만.
<9월> -2016년』
(218쪽)
『아우토반을 이용은 할 수 있지만 도중에 정차나 체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치 정지할 수 없는 긴 터널을 한숨에 통과해야 하는 것 같은 강박감이 늘 따랐다. 다만 아우토반 중간 중간에 여행자들을 위해 인터숍이라는 휴게소가 있었는데 담배와 술을 세금 없이 살 수 있던 것이 잠시 숨통을 트게 해주었다. 특히나 휴게소 인터숍 식당에서 팔던 전형적인 독일 음식인 돼지고기 삶은 것에 시큼한 양배추 절임은 어찌나 양이 많고 저렴했던지, 가난한 학생들의 영양을 보충하는 귀한 기회이기도 했다. (10월)』
(236쪽)
『과거 청산은 강력하고 민주적인 사회와 유럽을 이끄는 모터로써 오늘날의 독일을 존재케 하는 근거라고 하겠다.
학교에서 역사 교과서는 물론 다양한 시청각 교육과 일반 언론 및 방송에서 끊임없이 방영하는 기록물과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인터뷰 등은, 독일인에겐 지울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임을 경각 시킨다.
물론 신 나치들의 출현과 극우당의 존재는 독일의 과거 청산 문제를 아무리 강화해도 부족하다는 것과 지속해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지만,
역사를 깡그리 왜곡하고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일본의 태도에 비하면 당연히 우등생이고 본받아 마땅하다. (11월)』
(2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