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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사나예 2018. 12. 4. 18:30

 

 

중국의 작가 왕웨이롄의 소설집이다. 중편과 단편들 5편을 수록하였다.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 주인공은 이름은 나오지 않는 ‘나’로 아내 샤링과 함께 소금광산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

작품은 중국의 최대 소금호수 광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처음 들어보는데 중국에 이런 지역이 있음을 알았다.

 

왕웨이롄의 글을 처음 읽는데 첫 번째 중편에서 작가에 반했다. 역량이 분명했던 것이다.

이 낯선 지역을 시각, 촉각, 후각이 느껴지게 전달하는 묘사력이 굉장했다.

 

‘나’와 샤링 사이에서는 첫 번째 아이가 유산되었는데 이후로 두 사람의 사이가 권태기를 겪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고된 소금호수 일은, 주인공의 부부 사이의 지리함과 결부되면서 정신적으로도 무거운 짐이 되었다.

 

어제와 똑같은 내일, 전망없는 미래, 불투명한 부부 관계.

주인공은 사면초가와도 같은 상황에서 절친한 형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만다. 매일 술에 빠져 살다가 몸이 피폐해져 감을 깨닫고 간신히 술을 끊은 나.

다행히 알콜중독은 되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타격은 회복이 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래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동창 샤오딩. 죽마고우처럼 지내다가 서로 사정이 달라지면서 멀어진 친구였다. 

예전에는 필자도 이런 관계가 살짝 이해가 안 된 적이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그렇게 붙어 지냈는데 서른 후반이 넘어서 보니 소식도 모르게 된 동창들. 내 쪽에서 열정이 없었거나 상대에서 찾지 않았거나 혹은 그 둘 다로 인해 멀어진 그런 학창시절 친구.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아쉬움도 세월이라는 핑계로 잊고 살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주인공 나도 샤오딩의 소식에 어딘가 어색하고 멋쩍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니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둘의 거리감은 한결 해소된다. 고등학교 때 함께 했다는 것은 그렇게 위력이 있나 보다.

이렇게 훈훈하게만 흐르면 또 소설이 아닌 것인지 작가는 긴장감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샤오딩은 광산에서 석탄을 캐는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주인공 내가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때 샤오딩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다.

샤오딩과 함께 온 여자친구가가 있었다. 이름은 진징. 그런데 진징이라는 이 여인이 또 절세가인같은 미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가운 것도 잠시고 ‘나’는 진징에 매료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다보니 샤오딩이 삐딱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질투가 생겨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자신은 소금광산에서 그대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샤오딩은 어떻게 갑자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가. 게다가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여자를 애인으로 둔 것인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 ‘나’. 그의 정신에 일어난 파문은 커지고 격렬해져만 간다.

 

바깥에서 보는, 풍경으로만 보는 소금호수는 이색적이고 아름답다.

샤오딩과 진징은 감탄하면서 광활한 소금호수를 관광한다.

 

그들에게 안내를 하고 있는 나와 아내 샤링에게는 그저 삶의 현장이고 일상일 뿐이다.

안팎의 사건들로 내면의 전쟁을 치른, 여전히 상흔이 있는 나에게는 때로 지긋지긋한 일터였다.

 

친구와의 해후가 무사히 끝나고 나와 방문객들은 웃으며 작별한다.

나의 일상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오게 될까.

 

두 번째 단편 『책물고기』는 표제작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이번에도 ‘나’로 역시 1인칭 시점이다. 나 역시 아내와 둘이 살고 있고 아내는 공립중학교의 국어교사이다.

나는 출판사의 편집인이다. 어느날 책을 읽다가 아주 작은 책벌레를 발견한 주인공. 작지만 신기해서 자세히 보려고 돋보기를 가지러 간 사이에 그 벌레는 사라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는 책을 계속 읽었고 며칠이 지났다.

어느날 아내 후리가 퇴근하고 들어와서 대화를 나누는데 아내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나의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우선 소리 크기이다. 평상시보다 몇 배는 계속 크다는 것이다.

큰 것도 큰 거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메아리 같은 소리가 났다.

무슨 말을 하든지 잔향이 남아서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요즘 피곤하고 책을 지나치게 읽어서 멍해서 그런 거 같다고 했다.

그래서 푹 쉬고 며칠 있으면 그 ‘음산한 메아리’는 사라질 거라고 아내에게 말한다.

그러나 국어 선생답게 예민한 아내는 펄쩍 뛰면서 당장 내일 병원을 가보자고 한다.

가볍게 무시하기에는 목소리가 소름 끼치게 오싹하다는 것이다.

 

나와 후리는 이비인후과를 갔다가 조언을 받고 다시 내과로 간다.

내과에서 방사선 사진을 찍었지만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어제 저녁에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처방을 내린다. 검사와 소견으로는 이상이 없으므로 우선은 돌아가시라고 했다. 푹 쉬시다가 그래도 이상하면 다시 찾아오라고 한다.

 

아내 후리는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자신의 지인이 추천하는 한의원이 있는데 영험하다면서 남편을 끌고 간다.

병원은 분위기부터 신비로운 곳에 있었다. 이 부분의 묘사는 갑자기 무협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는 나이 지긋한 노 의원이 있었다. 맥을 짚고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그는 진단을 내렸다.

사실은 자신도 이야기로 들어만 봤는데, 책 벌레가 주인공의 몸으로 들어간 것 같다는 것이다.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말하는데 응성충 이라는 벌레였다.

다른 말로는 서어 書魚, 즉 책물고기 라고 불리운다고 했다.

 

일종의 기생충병이라는 게 의원의 설명이다. 나는 충격 받았지만 한편으로 안도하면서 그럼 금방 없앨 수 있겠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그런데 의사 말로는 보통 벌레가 아니기 때문에 호락호락 하지 않을 것이란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환상적인 성격의 작품이었다.

소설의 끝에서 천만다행히도 주인공의 병은 고침을 받는다. 아내가 가장 먼저 알아차린 그 괴이한 잔향이 말끔히 싹 사라졌다.

이는 한의원 의사가 행한 어떤 독특한 처방 이후에 고쳐진 것이다.

과연 어떤 처방과 약재 였을까.

 

비현실처럼 전개되면서도 현실성이 있는 참 절묘한 작품이다.

 

 

세 번째 중편의 제목은 『아버지의 복수』이다.

주인공은 20대의 청년 유웨이.

앞의 책물고기가 판타지 스러웠다면, 이번 소설은 사실주의 적이었다.

 

유웨이와 부모가 사는 곳은 광둥성 광저우이다. 유웨이의 아버지는 유독 광둥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다. 그런데 아버지는 북방에서 온 사람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이곳 남쪽으로 왔으며 산둥성에는 친척도 한명 없었기에 아버지에게 광둥성은 고향이나 진배없었다.

 

이 작품은 80~90년대부터 현대까지의 광둥 지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과는 현저히 다른 시대상과 문화가 나와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광둥성을 비롯한 남방 사람들은 북방 출신의 사람들을 은근히 조롱한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복수>는 그래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사회의 편견으로 둘러쌓여서 살아온 시절을 그린다.

 

복수라는 제목, 차별을 받은 주인공이라는 설정이 뭔가 비극적인 이야기로 끝나는 건가 예상하게 했다. 그렇지만 그런 무서운 의미의 복수는 아니었다.

애교스럽다면 애교스러운 복수였다. 

 

겉으로 눈에 띄게 하던 차별과 냉대는 현재는 사라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지난 시절에 온몸으로 겪었던 차별로 인한 트라우마는 온전히 치유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주인공 유웨이의 시선을 통해서 한 시절을 성실히 살아온 아버지를 그려가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새로운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서 빠져들어 읽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절정의 대목에서 사회를 향해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장면에서 뭉클해 졌다.

 

우리나라 작품이나 요즘 소설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그린 이야기를 별로 접하지 못했다. 왕웨이롄의 『아버지의 복수』에서는 젊은 청년의 시선으로 그리는 아버지를 친밀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소재만으로도 훈훈하고 참 좋았다.

 

그런데 클라이맥스를 통해서 통쾌한 사건을 보여주고, 결말은 상쾌하면서도 따뜻했다.

이 책에서 가장 가슴이 뎁혀지고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이야기였다.

 

네 번째 작품은 『걸림돌』이다. 

역시 1인칭으로 주인공의 이름은 샤오콴이다. 30대의 출판사 직원인 샤오콴은 어느 정도 입지를 다져서 분주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매주 한번씩 광저우와 선전을 오간다. 출판사의 일 때문이다.

 

그날도 샤오콴은 열차에 올랐다. 그런데 급한 사정이 있어서 직전에 표를 예매해서 입석이었다. 이런 경우는 열심히 자리를 찾아보면 한 좌석 정도는 찾아서 앉을 수 있었다.

이날은 한참을 빈 자리가 찾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자리를 찾았는데 옆에는 노년의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에게 동행이 있냐고 묻자 아니라고 해서 샤오콴은 안도하면서 빈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옆에서 보니 할머니가 의의로 파란눈의 외국인이었다. 샤오콴은 항상 옆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자리를 찾아 기분 좋은 것도 있었고 외국인이기에 문득 호기심이 생긴 샤오콴.

그래서 말을 걸면서 샤오콴은 할머니가 75세이고 쑤뤄산 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걸림돌』은 샤오콴과 쑤 할머니가 두 시간여 동안 객차에서 대화를 나누는 스토리다.

 

할머니는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고 여태까지 쭉 살았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건 당연했고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할머니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으셨던 걸까.

할머니와의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깊은 이야기를 주인공에게 들려준다.

그래서 마음이 열린 샤오콴은 자신의 깊숙한 곳에 늘 담아두던 아픈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꺼내게 된다.

 

덕분에 독자들은 샤오콴의 상처와 비밀을 알게 된다.

30대의 출판인인 남자. 오스트리아에서 와서 상하이에서 태어난 70대 할머니.

둘의 사려 깊은 이야기는 짧은 단편이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겨 주었다.

 

마지막인 다섯 번째 중편 『베이징에서의 하룻밤』은 청춘 소설이다.

잘 만든 로맨스 영화나 중국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번역자의 해설대로 다섯 소설이 모두 색깔이 각양각색의 작품이었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 이렇게 장르가 다르면 대부분은 몰입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책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알게 되는 소설가이니만큼 그가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구나, 알았다.

일본 쪽에 비해서는 현대 중국의 소설을 많이 읽을 수가 없었다.

다량이면 선택의 폭도 넓을 수 있다. 중국의 소설은 숫자가 적기에 접하는 작품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책을 읽고는 이렇게 글을 잘 쓰고,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품들이라면 안 읽을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러한 계기를 느낀 것 만으로도 유익이 있었던 소설집.

더해서 소설의 퀄리티도 뛰어나서 더욱 즐거웠던 <책물고기> 이다.

 

왕웨이롄 이라는 작가의 작품들을 앞으로 꼭 다시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