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순간
) 읽은 책 : <데뷔의 순간> 주성철 엮음
2) 읽은 시간과 페이지 : 4: 30~ 5:50 am 류승완, 봉준호, 최동훈, 이준익, 허진호 편
3) 읽으며 생각하고 느낀 것
너무 소중해서 한 페이지도 펼쳐보지 않았다고 하면 믿어줄까? ㅎㅎ
하지만 이 책이 그랬다.
17인의 감독들이 어떻게 입봉하며 데뷔했는지 각각의 이야기를 담은 책.
2014년 11월에 구입했다가
언제 울적하거나 그러면 꺼내봐야지 고이 모셔놓았다.
그러다가 책장 그 자리에 늘 있었던 책.
독서습관 이벤트 덕분에 ‘오늘은 뭘 고를까’하다가 딱 눈에 띄었다.
아 역시 감동의 물결이다.
좋아하는 배우들이나 감독의 영화가 새로 나오면
집착 한다 싶을 정도로 모든 언론 인터뷰를 보는 편이다.
그래서 거의 어떤 멘트들은 외우기까지 한다.
올해에는 <봉오동 전투> <기생충>에 버닝했는데
그러고보니 그런지도 두 계절이 지났다.
<데뷔의 순간>에는 한국의 영화감독 17인의 데뷔하게 된 이야기가 담겼다.
류승완, 봉준호, 변영주, 이준익, 임순례, 최동훈, 허진호 등의 감독님들이다.
지금까지 20년 넘게 꾸준히 활동을 하면서
한국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린 장본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봉준호 편을 읽을 때 아무래도 울컥했다.
지난 5월 칸 황금종려상의 쾌거를 접하고 나서 읽는 감독님의 이야기가 절절했다.
데뷔의 순간이 제목이지만 감독의 영화 인생 이야기가 농축되어 있었다.
요즘 군인들에게 ‘요즘 군대는 옛날보다는 많이 편해졌지’라고 예전 군필자가 얘기하면
꼰대같을지도 모르지만 일면 맞는 얘기인 것처럼,
요즘은 재능만 있으면 데뷔할 기회가 많은 환경에서
저 7분의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어온 이야기는 정말 백전 노장 그 자체였다.
오해는 마시라. 저분들이 꼰대라는 건 절대 아니니까.^^
아니 오히려 요즘의 청춘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가 너무너무 멋있는 분들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면서
감독들의 다양한 영화들이 충무로를 이끌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말아톤> <괴물> <도둑들> <동주> <암살>.
생각보다 감독들은 서로서로 친분이 있었고 서로 선한 영향력과 영감을 주는 사이였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감독들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우리 영화들이 매년 탄생했다.
새로운 장르,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한편씩 모두가 도전이었다.
맨땅에 헤딩하기 라는 말을 몸소 겪은 감독과 스텝들이었다.
지금은 SF나 뮤지컬을 제외하고는
모든 장르에서 한국영화들이 헐리웃에 결코 뒤지지 않는 퀄리티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다.
지금의 40~50대 사회에서 일정한 자리를 가진 남성들이 많이 그렇겠지만
책 속의 감독들은
영화라는 창작의 세계에서 정직하게 한걸음씩 걸어온 한국의 예술가들이기도 했다.
지금은 위상이 높아졌지만
예전에는 부모로부터 ‘그러지 말고 기술이라도 배우는 게 어떻겠냐’거나 ‘공무원 시험 보라’는 말을 늘 듣고 살았던 감독들.
그만큼 불안정한 직종의 아이콘이 바로 영화감독이었다.
순수 관람객으로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한국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정말 뿌듯한 한국 영화의 현재를
감독님들의 육성 肉聲으로 듣는 꿀잼 시간이었다.
4)하고 싶은 말
엮은이 주성철이 감독들의 육성과 글을 잘 편집하여서 가독성이 좋다.
감독님 한분 한분의 말은 고생이 뚝뚝 묻어나면서도 위트가 넘치고 유머러스했다.
그리고 뜻밖에 청춘들에,
인생길에 역경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꿈을 위해 오늘도 피땀을 흘리고 있는 이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격려를 전해 주고 있다.
하고 싶은 일, 특히 창작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도전정신을 줄 거라고 믿는다.
내가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객관적인 판단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
그래도 읽어서 무익 無益하다고 느끼지는 않을 거라고 강력 추천한다.
책중에서
【 그럼에도 어쨌거나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해야 한다.
그냥 혼자 방구석에 앉아 고민만 하는 것보다는 몇 백 배 낫다.
나는 데뷔작을 만들기 전까지 모든 영화제 모든 시나리오공모전에서 떨어졌고
주변에서는 포기하라고 했다. 정말 비참했다. (웃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들이밀었다.
선택받지 못한 지난 작품을 자책할 시간이 있다면 새로운 작품을 고민하는 데 써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많지 않다. 】
(류승완 감독)
【 종점이 보이는 인생은 불행하다. 오래도록 그림을 그려왔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그림이 나올지 몰라야 그릴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만드는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야 신이 난다.
남들과 똑같이 하는 것은 지겹다. 그건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이준익 감독)
【 방황하는 청춘들이 있다면, 일단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이십대는 원래 바보 같고 거지같다. (웃음)
아직 당신에게 진짜 인생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
(최동훈 감독)
【아무도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이 길에서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 고민을 들은 한 선배가 이렇게 얘기했다.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 것 자체도 재능의 일부”라고.
재능은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집요한 ‘관심’에서 시작한다.】
(한지승 감독)
【 영화감독은 세계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세상 그 모든 것에 대한 엄정한 관찰자여야 한다. 】 425쪽
(허진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