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스 (2017) 침묵을 영화로 만들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를 개봉관에서 보기가 정말 오랫만이다.
아니 생각해 보니 처음 인 것 같다.
객관적으로 장인 Master 인데 개인적으로 코드가 맞지 않는 두 감독이 있는데 우디 알렌과 스콜세지가 그랬다. 뭐 남들이 거장이라고 하니 그렇겠지 했다.
이번에 사일런스를 찍었다고 해서 보고 싶었다. 엔도 슈사큐 작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 밖의 장애물이 있었으니 상영 시간의 압박이 그것이었다.
첫 주에 보려고 시도했는데 퐁당퐁당 상영이어서 놓쳤다.
그런데 몇 주 지났는데 아직 하고 있었다. 마침 시간도 극적으로 맞아서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리뷰를 안 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개인적으로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 먼저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크리스챤 리뷰어이나 목회자도 아니고 그냥 일개 평신도로서.
감히 영화를 '평가'할 수 있을까.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중반부를 지나면서 였다.
영화는 진지했다. 무척.
소설 중에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을 읽고 난 후의 소감이 떠올랐다. 완연한 신앙 소설이었고 그 '타협하지 않음'이 무언가 뭉클했다.
작품에 감동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진지하고 끝까지
가는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오두막>과 다른 스타일의 영화이지만
왠지 그 때의 기분이 떠오르는 영화가
<사일런스>이다.
일본의 재능있는 작가 엔도 슈사큐의 침묵 이 원작이다. 원작이 집 서재에 있기는 한데 읽지는 못했다. 그래서 책하고 싱크로율이 어떤지 다른 점이 있는지 비교는 못하겠다.
영화가 시작하면 17세기에 포르투칼의 가톨릭 교회 신부님들이 일본으로 향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로드리게스 신부와 프란체스코 가르페 신부가 일본의 외딴 섬에 도착한다.
이전에 먼저 파견된 페레이라 신부의 종적이 묘연해서 페레이라 신부도 찾을 겸 선교를 목적으로 간 것이다.때는 혹독한 박해의 시기였다.
영화의 배경인 섬은 근처 나가사키의 지배를 받는 섬으로 나온다. 주민들이 많이 살지는 않는 외딴 섬이지만 수십명 이상의 기리스탄 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여서 개종했다. 기리스탄은 크리스쳔의 일본식 표기이다.
젊으며 독실하고 열정적인 두 신부 로드리게스와 가르페는 열악한 지역에 도착하여서 포교를 시작한다.
기초적인 의식주부터 많은 것이 불편했지만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역을 시작한다.
전반부는 고전 명작인 <미션>과 비슷하다.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겸허하게 살아가는 신부님들의 이야기에서 더욱 그랬다.
중반부는 혹독한 박해의 이야기이다.
나가사키의 영주인 이노우에 라는 수령이 박해를 주도해서 한다. 그가 기리스탄 일본인 들에게 행하는 온갖 종류의 고문, 죽인 후에 행하는 화형은 그 자체로 끔찍하다. 그런데 그런 끔찍한 짓을 다른 영화나 우리 역사에서 많이 접해서 인지 엄청나게 놀라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런데 끝내 탄식이 나오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장탄식이 나오면서 결국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건 영화에서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에 밝히지 않는 것이
예비 관객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마루타 라면 마루타같은 그 고문의 방식은 정말 혹독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감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ㅠ
앤드루 가필드는 무난히 로드리게스 신부 역할을 연기했다. 그러나 내게는 아담 드라이버 쪽이 훨씬 관심이 갔다.
그것은 꼭 로드리게스가 배교를 하고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한 신부가 순교를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후반부는 무척 어려운 종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멜 깁슨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같은 그런 각오로 이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굉장히 긴 영화다. 물리적인 제약으로 중간에 어쩔수 없이 화장실을 다녀오긴 했다.
리암 니슨이 나오는 씬이었는데 나중에 꼭 다시
봐야겠다.
일본 나가사키와 그 부근의 순교자 일본인들에 대해 눈물이 났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지하 교회의 핍박이 오랜만에 다시 생각났다.
관심있는 분은 김인권이 주연한 <신이 보낸 사람>을 보시면 좋겠다.
김진무 영화 |
기독교의 사순절 기간이 요즈음이다.
이런 때에 의미 심장한 작품을 감상해서 굉장히 뜻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