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
〈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처음 들어보는 작가 가르도시 피테르. 그는 헝가리의 영화감독인데 자신의 부모 이야기를 장편 소설로 썼다. 그 실화가 <새벽의 열기>다.
실화라는 것,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라는 점이 부담을 갖고 읽게 하였다.
그러나 작가가 묘사하는 청춘남녀는 여느 스물다섯, 열여덟의 청춘과 다르지 않았다.
작가는 독자를 어둡고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시작부터 마냥 무겁지만은 않게, 심지어 유쾌함을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스물 다섯의 미클로스. 열여덟의 릴리.
두 사람은 모두 죽음의 운명에서 이제 막 벗어났다.
강제 노역에서 구조되고 강제수용소에서 해방이 되어서 제3국인 스웨덴으로 옮겨졌다.
두 사람 모두 건강에 중대한 이상이 있었는데 특히 미클로스가 심각했다.
소설의 앞부분부터 미클로스는 청천벽력의 소리를 들었다.
스웨덴 담당의는 그에게 유감스럽지만 6개월만 살 것 같다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
미클로스는 좌절하지 않았다. 스웨덴에서 치료받으며 요양소에 있는 117명의 헝가리 국적 여성에게 편지를 쓴다.
미클로스는 전쟁 전에 저널리스트였으며 시를 쓰기도 했다.
그의 재주와 정성스러움이 보태져서 그의 편지는 여러 여성들의 심금을 울리게 되었다.
그 중에 릴리 라이히 라는 처녀도 있었다.
<새벽의 열기>는 홀로코스트 유대인 생존자라는 점만 빼면
청춘남녀의 로맨스 이야기다.
전쟁 후유증을 겪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남녀가, 6개월동안 편지와 만남을 가지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동화같은 이야기.
고전적인 이야기를 오랜만에 읽었지만 확 빠져들며 읽게 된 건, 전적으로 작가의 재치있는 필력 덕분이었다.
실화를 알고 읽어 나가는 것임에도 매 이야기가 생생했다.
잔잔히 미소를 짓게 되고, 코믹한 일화들에 웃음을 터트리게도 했다.
가장 놀랐던 건 미클로스와 릴리가 겪은 끔찍한 경험을 묘사하는 부분들이었다.
독자로서 반해서 어느새 사랑스럽게 느껴진 두 청춘.
그들이 겪은 생지옥과 같은 처참한 일은, 익숙한 역사임에도 다시 한번 충격과 공포를 일으켰다.
미클로스의 병이 극적으로 치유된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검사를 마치고 기적이라고 감탄한 스웨덴 의사처럼 그저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릴리와의 진정한 사랑의 힘이 미클로스를 살린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떠오르기도 하는 소설이다.
로베르토 베니니가 나온 그 영화는 비극을 희극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봤을 때 여전히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홀로코스트의 경험은, 극적으로 생존했다 할지라도 엄청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가르도시 피테르가 묘사한 것처럼, 성숙하고 유머러스하게 접근하여 읽는 이를 배려하는 표현법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쩌면 이토록 성숙하면서 지혜로울 수 있을까.
어떤 장애물에도 서로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주인공들의 용기가 전율을 준다.
불치병 치유의 기적. 사랑의 무한한 힘.
어느샌가 퇴색한, 동화에나 존재한다고 치부한 소재와 주제들.
낯선 헝가리의 작품에서 이것들을 진하게 느낄 수 있어서 참으로 감동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