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nd
2주 전에 봤었다. 인상깊게 보았는데 선뜻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보통 그런 영환 한 3-4일 지나면 대략으로라도 쓰게 되는데 이 영화는 그러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지금 생각나서 이 주만에 기억을 더듬어 본다.
추상미씨가 연출하고 출연 한 다큐멘터리이다.
작년에 다큐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상반된 감정이 교차했다.
추상미 배우 좋아했었는데 반갑네.
한편으론 ‘북한에 대한 이야기?’ 했더랬다. 추상미와 북한이라. 전혀 연상되는 바가 없었다.
추상미는 결혼과 출산 후에 휴식기를 거쳐서 새로운 영화 작업을 선택하고 있었다.
어떤 역사를 접하고는 그것을 시나리오로 써서 직접 메가폰을 잡기로 한다.
그 역사는 폴란드와 북한의 이야기였다.
나를 포함 대다수가 그렇겠는데 완전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추상미씨도 그런 점에 끌려서 이 소재에 빠지게 된 것 같다.
한국전쟁 직후에 남쪽 한국과 북쪽 한국 모두 전쟁고아가 많이 생겼다.
이때 한국을 찾았던 폴란드인이 있었는데 딱한 사정이 안타까웠고 돕고자 마음먹었다.
폴란드 정부에서 허락해서 1,500명의 한국 고아들을 폴란드로 데려갔다.
당시가 공산 정권이었어서 북한 정부랑 연계하여서 ‘자선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추상미도 이 역사를 그동안 몰랐던 건 아마 이 부분 때문이었으리라.
북한 정권하고 밀접하게 연결되었던 역사였다는 것.
폴란드 고아원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정부 사업」에 속했지만 아이들을 진정으로 대했다.
세월이 흘러 선생님 다수가 돌아가셨지만 다행히도 몇 분이 생존해 계셨다.
그분들이 건강하시고 기억을 생생히 하시기 때문에, 우린 추상미감독의 시선을 통해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백하자면, 몹시 생소한 이야기였다.
<우리학교>등 재일동포 다큐, 북한 관련 영화를 나름 보아온 1인인데도 매우 생소했다.
폴란드에서는 고맙게도 당시의 자료를, 영상 필름을 포함해 상당수 보유하고 있었다.
영화 속의 아이들은 전쟁 고아들인데 처음에는 낯설은 나라에 간 당황스러움이 고대로 묻어났다.
그런데 한달 두달 1년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특유의 회복력으로 밝은 모습을 찾아간다.
낯설고 놀라운 이야기.
폴란드의 교사들, 고아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국경·민족을 넘어서 아이들을 정성으로 돌보셨다.
오래 지난 역사지만 그 진심은 어렵지 않게 전해졌다.
바로 아이들의 표정과 태도 로부터였다.
처음에는 외적으로도 삐쩍 마르고 무표정했던 아이들이, 점점 오동통해지고 얼굴에 빛이 돌았다.
8년후에 북한 정책이 바뀌어 아이들이 송환되는데 그 직전의 아이들 모습은 건강 그 자체였다.
생존한 선생님들, 직원 분의 회고로 듣는 아이들은 놀라웠다.
특히 생면부지의 나라인 폴란드 언어를 금방 쉽게 익혔다는 이야기는 경이로웠다.
지금도 한국인의 교육능력은 인정받지만, 6.25 직후 50년대의 아이들이 이토록 똑똑했다니 뿌듯했다.
진심 그리고 사랑.
선생님들이 보여준 증언과 표정은 이념을 넘어 화면 바깥으로 전해졌다.
추상미씨가 그분들을 직접 만나서 전해 들었을 때 그 진심을 느꼈을 거라 확신한다.
대만영화 『청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랑과 꿈은, 들리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통역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아이들은 부모 대신에 그들을 돌본 파란 눈의 선생님들의 사랑을 광합성처럼 흡수했다.
폴란드어가 능통해지면서 서로 대화도 깊어졌고, 아이들과 어른들은 인간적인 교감을 이룰 수 있었다.
한 폴란드 선생님은 고백하고 있었다.
1959년에 아이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때 비행장에 나가서 작별을 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그때의 가슴 저리는 슬픔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겪은 것이었다고 하셨다. 그때 이후로도 그런 아픔은 없으셨다고 한다.
이러한 고백의 여운이 무척 컸다.
어쩌면 본 리뷰어가 한동안 글쓰기를 주저했던 건, 이 장면의 느낌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인가 보다.
저토록 절절한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분명 거짓이 아니다. 위선이나 가식도 아닌 증언이었다.
이제 비로소 깨닫는다, 저 분들의 진실된 사랑을.
덕분에 다시 가슴이 벅차온다.
시간이 흘러 헤아리면서 리뷰를 올리기를 퍽 잘한 것 같다.
왜냐면, 추상미 감독의 마음을 이제서 알 것 같아서다.
다큐의 엔딩에서 추상미씨는 선생님에게
조심스럽게 진심을 담아 한 마디 한 마디 감사를 표한다.
꾹 꾹, 눌러담으며
“그때 아이들을 사랑으로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들으시는 선생님도 옆의 동행인들도 눈물을 짓고 있었다.
추상미씨는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장편 상업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신중하게 접근하지만 그렇다고 위축되지는 않게, 영화에 다가가고 있는 걸로 보인다.
파이팅 이다!
지난 봄 <증언> 영화를 관람하면서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느낀 적이 있다.
증인은 오래전부터 기다리며 시놉시스를 알고 본 영화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재의 영화였다.
처음에 그렇게 많이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봐서 영광스러운 영화였다.
추상미가 컴백한다면 당연히 대중영화나 일반적인 드라마일 거라고 생각했다.
뜻밖에 다큐멘터리였고, 다큐가 다룬 묻혀진 역사는 무게감이 엄청난 것이었다.
드러내 표현되진 않지만, 홀로 이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 때 많이 외롭지 않으셨을까 싶다.
그 고독한 길을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고, 묵묵히 걸었고 완주해 냈다.
정말로 감사하다.
어떤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인도적인 관점으로 북한의 아이들을 바라보고자 애쓴,
감독의 勞苦가 역력히 느껴진 작품.
<폴란드로 간 아이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