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오빠
어니스트 베델과 호머 헐버트의 책을 각각 따로 읽으며 교차하는 지점에서 전율을 느꼈었다.
영국인, 미국인으로서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며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동참했던 그들.
처음엔 몰랐던 사실을 알아서 좋았는데, 역사 서술의 곳곳에서 우리의 역사가 숨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퍼즐을 찾아 끼우는 일임을 알았다.
숙연한 역사이기에 감히 쾌감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조심스럽지만.
학교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진실들을 스스로 마주할 때 짜릿함이 있었다.
역사 소설 <밀양 사람, 김원봉이요>에서도 동일한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
김원봉은 어렸을 때부터 항일의식을 고취하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친구 세주와 함께, 소학교에서 행사에 쓰려고 한 일장기를 화장실 똥통에 빠트린 사건은 밀양에서 유명하게 알려졌다.
약산의 할아버지는 중국어, 일어에 능통한 역관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덕분에 조선을 둘러싼 주변국의 동향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밝을 수 있었다.
또한 고모부가 황상규라는 분인데 이분은 임시정부의 임원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올해는 임정, 삼일운동 100주년임과 동시에 의열단 창립 100주년 이기도 하다.
약산 김원봉은 중국에서 의열단을 조직하고, 일제를 무력화 시키는 투쟁 운동에 돌입하기로 결심한다.
의열이란, 맹렬히 정의를 위해 싸운다라는 뜻.
의열단은 삼일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후에, 무장 투쟁만이 저항의 방법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군사를 양성하는 것인데 그렇기 전까지, 조선과 중국, 일본에서 일제의 지도자와 기관을 공격하는 것을 결의하였다.
강령은 구체적이고 심플하고 확실했다. 5파괴, 7척살 이라는 것이다.
쳐부술 대상으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주요기관, 일제 기관 언론을 정했다.
처단할 대상으로 조선 총독과 고관, 군부 수뇌, 매국노, 친일파 거두, 밀정 등 7척살을 선정했다.
밀정은 상해를 비롯한 중국으로까지 침투해 들어왔고, 김원봉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의열단은 완전하고 철저하게 점조직처럼 운영되는 방침을 정하였다.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이후에 밀정이 몇 차례 있었지만, 비교적 조직을 무사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의열단 단원들은, 김원봉의 최측근과 지도부를 빼고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일이 많았다.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임박해서 모일 때나 서로 얼굴과 이름을 밝히게 된다.
박시백의 역사만화를 통해서 접했던 박재혁 단원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자세하게 접했다. 역사책에 몇줄로 기록된 것을 넘어서, 김하늘의 글은 의열단원들을 살아있는 인물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소설의 본연의 재미를 느끼면서, 감동과 역사적인 사실까지 전달받게 된다.
「35년」에서 박재혁 부분에서 울컥했었는데,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이 소설로 접하면서 그때의 숙연함이 되살아났다.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던져서 경찰서장을 척살하는 데 성공했다. 거사의 방법부터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었고, 자신도 폭탄 파편에 부상을 입은 채 감옥에 수감되었다.
어차피 사형을 예감한 박재혁은 단식처럼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감옥에서 순국하셨다.
또한 잘 몰랐던 김지섭 대원의 의거도 이 작품으로 소상히 알게 되었다.
1923년 9월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은 자경단을 중심으로 조선인들을 무참히 살해하여서 알려진 것만 6000명의 조선인이 학살되었다.
의열단은 가만 있을 수 없었다. 김지섭이라는 외국에서 살던 의열단원이 스스로 자진하여 의백 김원봉을 찾아왔다. 그는 일본 동경의 심장부에서 폭탄을 던지고 요인을 암살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의열단의 계획과 지원을 거쳐서 김지섭은 도쿄에 잡입하는 데 성공했다. 애초의 목표는 제국 의회가 열리는 국회장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것. 그런데 첩보가 들어갔는지 갑자기 제국의회가 취소되었다.
김지섭은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는 의열단이 마련해준 폭탄 3정이 있었다.
그래서 급하게 황궁 거사로 변경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폭탄은 모두 불발되었고 그는 즉각 경찰에게 잡혔다.
재판과정에서 김지섭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투척의 정당성과 조선의 투쟁의지를 떳떳하게 밝히는 진술을 하였다.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죽음을 맞았다.
김하늘 작가는 김원봉의 시선을 빌려서, 김지섭 열사가 관동대지진으로 무고히 희생당한 조선인을 애통해 했다고 적었다.
이 대목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듯 했다.
박재혁, 김지섭. 그밖의 많은 의열 단원들. 20대, 30대의 젊은 청년들이 자신의 목숨보다 의거를 성공하는 것을 더 중히 여겼다.
이들 한명 한명의 시도는 실패한 일도 있었지만, 결코 의미 없지 않았다.
아니 너무도 소중한 가치들을 띄고 있었다.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하면서 조선인들은 신음하고 있었다.
젊은 의열단원들의 무장 투쟁은, 치기어린 혈기에 행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조국을 사랑하고, 나라의 독립을 뜨겁게 희망하였기에 자신의 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았다.
때로는 서로 먼저 하겠다고 하여서 김원봉이 말리거나, 순서를 정해주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영화 <암살>의 후반부에서 김원봉은 촛불을 밝히면서 대원들 한명한명의 이름을 부른다.
‘잊혀지겠지요?’라고 힘없이 말하는 대목에서 코끝이 찡했었다.
독립운동가에 서열이나 그런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비록 실패하였더라도, 그들이 가졌던 의로운 용기는 너무도 고귀한 것임을 느꼈다.
의열대원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들이 무척 신선했다.
목숨을 건 일이고, 늘 일제의 감시를 받는 일이다.
그럼에도 거사를 계획할 때부터, 이후의 평가 때까지 의열단원들은 전혀 경직되지 않았다.
유쾌하게 대화를 하는 장면들이 많았고, 유머와 위트까지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났다.
차츰 나는 이러한 묘사에 동조하게 되었다.
의무적인 일, 긴장이 존재하는 일이지만, 김원봉과 의열단에게는 당당함, 여유로움이 늘 있었다.
숱하게 동지들을 잃는 경험을 하는 김원봉의 마음도 잘 묘사되고 있었다.
서로 뜻을 규합해 하는 일이었지만, 대원을 떠나보낼 때 언제나 아파하고 비통해했다.
아픔을 씻을 시간도 없이, 또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 다음 투쟁을 계획하게 된다.
김원봉의 심중에는 언제나 조국을 위해 죽은 대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동지로 남아야 겠다는 다짐으로 다음 행보를 이어갔다.
뜻밖에 연결되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나올 때는 놀라웠다.
인맥을 통해서 20대에 김좌진 장군을 만났었다고 한다. 1930년대 만주사변 이후에 김원봉은 의열단을 멈추고 중국과 손을 잡아 군사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이때 ‘조선혁명군사 정치학교’를 설립했을 때 시인 이육사가 입학하게 된다.
이육사는 군사학교 졸업식에서 스피치로 시 하나를 창작해 동료들 앞에서 읽었다.
이 시가 「광야」 였다. (윤동주와 더불어) 좋아하는 시인인 이육사 이야기가 정말 흥미롭고 소름 돋았다.
김원봉은 동지들과 함께 진취적인 독립운동, 투쟁을 이어갔다.
그의 쾌활한 모습을 통해서, 암흑의 시대에 한번도 독립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의열단 이라고 하면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젊은 혈기에 무모하게 감행했다던가, 무조건 폭력을 지향했다든가 그런 지레짐작.
하지만 의열단은 무턱대고 폭탄 투척을 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했다.
일을 맡을 사람을 정하는 것부터, 확실하게 타게트만을 노리는 것까지. 그들이 함부로 생명을 경시했던 것도 아니었다.
무기를 옮기다가 발각되어 실패해도, 폭탄이 불발하여 실패해도, 그리하여 동지만 잡혀가고 죽임을 당해도. 의열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약산을 중심으로 서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고자 했다.
여성 대원 현계옥도 처음으로 대원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박재혁, 김지섭으로 대표된 의거들을 통해서 의열단의 대원들이 서로 끈끈한 믿음으로 형성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심전심. 단장 의백의 마음이 대원의 마음이고, 대원의 바램이 곧 김원봉의 마음이었다.
한명, 한 명의 열사들. 실패한 것도 포함한 각각의 의거 義擧들.
그들이 모두 진정 소중하게 여겨져, 가슴이 저릿해서 한동안 책장을 덮어야 했다.
이러한 일들이 소중하지 않다면, 우리의 역사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최근에 일본의 화폐의 인물이 바뀌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자세한 이름은 잊었는데 과거의 제국주의와 식민 침략을 정당화한 학자, 지도자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런 소식에 울분이 들었다.
분개하기 이전에,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화폐에서 우리의 독립운동가를 홀대하면서 남의 나라를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 것.
우리의 현대사를 이제는 역사의 주류로 이끌어 내야 할지 않을까.
근대사, 현대사, 독립운동사.
그 속에서 김원봉 의백과 의열단의 일들도 빠트려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조금 가벼운 얘기를 꺼내자면
김원봉 진짜 사기 캐릭터 아닌가 싶었다. ^^;
얼마전에 드라마 이몽을 보면서 유지태가 멋있게 나와서 좀 과하다 했었드랬다.
상해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면서 활동하는데, 누가 봐도 유지태는 빛이 나고 눈에 띄었다.
키가 훤칠하게 커서도 그랬고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런데 약산도 실제로 키가 크고 잘 생기고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소설에서 박차정과 연애하는 모습에는 설레이기까지 했다.
밀정에 시달리고, 일제가 어마어마한 상금 백만원을 걸었다는 김원봉.
당시에 경성의 집 한 채가 천원이었다. 신고하면 포상금으로 집 천 채를 사는 금액이었다.
체포대상 1호였던 김원봉이 어떻게 10년 넘게 자신을 보전하면서 활동할 수 있었을지.
이러한 면면들도 역사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게 한다.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와, 김원봉의 활약이 무척 잘 어울리는 멋진 작품.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이다.
【책에서】
『누가 가장 앞장서느냐를 놓고 소리까지 지르며 한 치도 양보가 없었다.
먼저 죽겠다는 고집을 아무도 꺾으려 하지 않았다. 1차 거사에 성공하면 순식간에 군인과 경찰에 에워쌓여 끌려갈 테니, 거사 성공이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죽음을 향해 서로 먼저 가겠다는 세 동지를 보고 있으니 비감이 절로 솟았다.
‘천하의 정의의 사 事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이라는 의열단 공약 1조가 저 청년 동지 모두를 이 자리에 모이도록 했으나, 육상대회에 나간 선수처럼 죽음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서로 먼저 내달리겠다는 이 상황이 너무도 아프고 아프다.』
(179쪽)
『유자명 말대로 황옥과 함께한 거사 때도 감시망을 피해 돌아왔으니 마음만 먹었으면 무사히 복귀했을 김지섭이다.
“자꾸 나이 말씀을 하시더니 무슨 일을 해서라도 지진으로 희생당한 동포를 위해 영혼을 달래고, 꼭 복수를 하려는 마음이었나 보오.”
내 말대로 모두 김지섭이 돌아오지 않은 까닭을 이해하게 되었다. 황옥과 함께한 거사를 실패했다는 자책이 누구보다 컸던 김지섭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165쪽)
『졸업식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육사가 직접 지은 시를 한 수 읊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굉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가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 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