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12.그의 노래
시간이 되어 유리와 합류해서 가라오케로 들어갔다. 한국 케이 팝도 수준급으로 부를 줄 아는 능력자 유리는 한국어로 검색해 아이돌 노래를 비롯해 나는 듣도보도 못한 발라드까지 척척 소화하고, 채한과 듀엣 송까지 부르며 둘이 제법 죽이 잘 맞는 것 같다. 별로 가라오케 체질이 아닌 나로 말하면, 커피와 간식 서빙을 자처하면서 내빼다가 채한의 독촉에 SMAP과 스피츠, 아무로 나미에 몇 곡 부르고는 손사래를 쳤다.
유리가 채한한테 ‘귀여운 외모에 노래까지 잘한다’며 한껏 칭찬하는 과잉친절에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도 온 몸으로 열창하는 그의 표정을 보니 오디션같은 걸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주책! 아야코짱~)
셋이 전철을 같이 타고 중간에 유리가 먼저 하차한 얼마 후에 문득 궁금해져서 그에게 마지막으로 부른 한국 노래 뭐냐고 물어봤다. 잘 모르는 내게도 애절한 멜로디, 채한이의 호소력 짙은 음색이 비범하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어로 말하고 나서는 종이 쪽지를 꺼내어 가수와 제목을 내게 건넸다.
지갑에 넣었다가 깜빡 까먹은 나는 열흘이나 지나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메모가 떠올랐고, 회사로 돌아와 바로 찾아봤다. 구슬프고 쓸쓸했던 그 노랜 1996년 일기예보란 팀이 처음으로 발표하고 나중에 혼성그룹 러브홀릭이 다시 부른 ‘인형의 꿈’이란 노래였다.
한국어 가사로 해석해 달라고 채한에게 부탁해 볼까 하다가 어쩐지 쑥스러울 것 같아 그만 뒀다.
다만 다운로드해 주구장창 듣고 또 들었다. 한 동료 말이, 한 남자가 한 여자를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면서 고백조차 못해 애달파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채한아, 혹시 나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는 거니?
별 것 없는 평범한 내게서, 무슨 흠모할 아름다움을 너는 찾아냈던 거니…?
13. 걱정말아요.
취재가 있어 교토로 2박 3일간 출장을 가게 됐을 때 채한이 자유시간이 포함됐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니까 신나서 말했다.
“아야코상, 저도 갈래요. 교토에서 우리 만나서 같이 보내요.”
“네가 왜 와. 가게는 어쩌고.” 젊잖게 타일렀다.
“그렇잖아도 꼭 가보고 싶었어요. 명색이 간사이에 살면서 교토도 못 가보면 말이 안되잖아요! 귀찮게 안 할께요. 우리 사귄 지 세달 기념으로다가-” 장난끼가 한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니 또 웃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누굴 사귀었다고 그래?”
손 펀치를 날리는 나.
어리버리한 유학생에게 고국의 자랑과 전통의 도시를 소개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허락해 준다. 의지를 보인 이상 꺾일 아이도 아님을 잘 알고 있어서라고 속으로 변명을 하면서.
그가 맞은편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한국어로 난데없이 말했다. 모르는 한국어는 뜻 좀 알려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알아들은 “걱정말아요.” 뒤였다. “해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