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
청년멘토 이영표를 움직이는 가치들.
《생각이 내가 된다》
축구 해설가로 활동중인 이영표의 책이다. 두란노 출판사에서 나왔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세계관을 기저로 청년들에게 조언을 건네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챕터와 두 번째 챕터까지는 평이하게 읽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린 후에 한동안 지척에 꽂아두고만 있다가 어제 다음 장부터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성공한 축구선수 출신의 작가의 성공담 같은 걸로 여겨질 수도 있는 책이다.
하지만 세 번째 챕터부터 나는 굉장히 정신이 번쩍 깨이며 읽게 되었다.
예상처럼 뻔한 그런 말을 하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영표는 「재능? 찾지 마!」 장 章에서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그 밑바탕에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얻으려는 경제 논리’가 숨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영표는 최고의 기량을 갖춘 운동선수에게 있어서 시간과 노력, 인내를 거치지 않은 이는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만이 결과를 만들어내 낸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든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최고 수준의 기술이 충분한 훈련과 노력, 그리고 일정한 시간 없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없다.』 (33쪽)
이영표는 많은 청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노력하면서 차근차근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야겠다는 생각보단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다시 말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어떻게든 쉽게 성공하고 싶은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청년들은 자신의 재능을 찾아 헤매다가 30대가 되었다. 게다가 어느 순간 재능 찾는 일을 멈추고 상황, 환경에 지배당한 채 더 이상 재능을 찾기 위한 시간조차도 갖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재능은 찾는 것인가? 라고 이영표는 직접적으로 묻는다. 재능은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작가는 재능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재능을 주셨다. 그런데 그 재능을 노력과 인내, 그리고 시간으로만 찾을 수 있게 하셨다.
재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재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노력하면 어떤 것이든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믿는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서둘러 자신의 재능을 찾아 어떻게든 남들을 제치고 쉽게 성공하려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안에 숨겨 놓으신, 노력으로만 찾을 수 있는 은혜의 선물인 또 다른 의미의 재능을 찾아나서야 하지 않을까?
『이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면서 노력과 인내, 고통과 좌절을 친구 삼아 천천히, 묵묵히 나아가면 된다. 그 시작은 지극히 작은 것이면 충분하다.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매일매일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으면 된다. 우리가 좌절하는 이유는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 p.40)
얼마전에 박진영이라는 심리학자의 책을 무척 인상깊게 읽었다.
심리학 분야의 책을 한동안 멀리 했는데, 유익하고 참신한 이론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멘토링하는 책 또한 읽기 전에 지레 짐작하기가 쉽다. 열심히 노력해라.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같이 일반적이어서 식상한 말을 늘어놓지는 않을까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큰 틀에서는 아주 다르지는 않았다.
노력, 고통이 성공의 필수요소임을 말하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런데 심리학 책이건, 멘토링 책이건 한 끗의, 작아 보이는 차별점이 그 책을 전혀 다른 책으로 만든다는 걸 깨달았다.
심리학도, 조언을 하는 책도 이 분야의 생명력은 여전히 살아서 그 유익함의 명맥을 잇고 있는 거다.
아무튼 이렇게 눈이 번쩍 뜨이는 일깨움을 얻고 책장을 넘겨 갔다.
긍정적이고 좋은 시선으로 보니 책을 더 좋게 받아들인 것 아니냐고 혹자는 볼지 모르겠다.
이것에 대해서도 단적으로 대답하면 ‘맞다’이다.
비소설 장르의 경우 앞부분 2/5 정도에서 독자로서의 책을 읽는 자세와 기대감은 거의 정해진다. 이르면 1/4 정도 일수도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다. 뭔가 비슷한 맥락의 주장을 하고 있는 듯 보여도, 분명 작가의 생각과 표현은 미세한 다름이 있다.
이런 ‘다름’이 책의 엔딩까지 이어진다면, 초반부(중반부)에 내가 가졌던 기대는 충족된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결정되는 거라고 난 생각해왔다.
예를 들면 이영표는
‘혹시 자신이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서 어려움, 좌절이 있다면 누군가 먼저 이 길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도 그걸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권한다.
굉장히 일반적인 조언 같지만 나는 이 부분도 무척 와 닿았다.
(엄청난 고난이 아니라면) 내가 이 일에서 겪는 낙심, 좌절은 반드시 누군가가 겪었을 거라는 것. 이 단순한 제안이 내게 갑자기 큰 깨달음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이영표의 경우는 유럽 리그에서 뛰고 선수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면 이러한 생각을 새겼다고 한다.
이영표는 어찌 되었든 스포츠인이라 할 수 있다. 실전을 경험해본 스포츠인으로서 이제는 한발짝 떨어져서 스포츠를 관전하고 깨달은 것들을 적은 글들이 참 좋았다.
이 속에는 축구 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 대한 견해와 감상도 있는데 이 파트가 꽤 설득력과 재미가 있다.
또한 자신이 예전에 성공을 추구하면서 한때 이기적인 축구를 했다는 사실들을 가감없이 털어놓기도 한다. 아무도 묻지 않고 또 굳이 꺼낼 필요가 없는데도 털어놓는 이야기들.
내밀한 고백들이 더 작가를 가깝게 느끼게 했다.
과정이 정직하고 결과도 최고였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이영표씨는 돌아보면 이기기 위해 온갖 수단을 사용하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저 정도는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했지 않을까 싶은 작은 과오들.
그러나 작가는 그것들이 결코 작지 않았으며 분명한 죄였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모습이 프로선수로서 존경스럽게 느껴졌고, 기독교 신앙인으로서는 더욱 귀감으로 느껴졌다.
나는 에릭 리들이라는 인물을 참 좋아한다. 영화 불의 전차의 모델이었던 스코틀랜드 육상 선수이다. 그의 일대기를 담은 책들에서 에릭 리들이 육상인으로서 얼마나 정직했는지를 이야기하는 파트가 있다.
오늘날에는 스포츠, 특히 프로 세계는 예전처럼 순수한 정직이 많이 사라진 듯 하다.
잊을만하면 국내 인기 스포츠에서 비리들이 발각된다. 승부를 조작하고 금메달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어두운 이야기들.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평범한 세계는 부패가 가득하다. 정치를 필두로, 경제, 산업계에는 이제 사람들이 정직이라는 가치를 거의 믿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예술계, 문화계까지 가끔씩 충격적인 사건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들,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들이 좋았다.
그런데 뜻밖에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동안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던, 기대하지 않았던 스포츠 세계에서 여전히 노력한 만큼 성공하는 법칙이 살아있다는 것.
예전에는 사람들이 스포츠에 유일하게 기대했던 게 실력만큼의 성과였다.
그러다가 많이 잃어버렸는데, 다시금 스포츠라는 분야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분명 스포츠는 정직과 노력이 결과를 이끄는 ‘순수한’ 영역으로서 느껴진다.
<생각이 내가 된다>에서 이영표는, 축구를 넘어서 스포츠라는 분야가 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적으며 책을 마무리한다.
스포츠가 복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해외 거주 경험과 축구인의 지식을 통해서 차분하게 이야기 한다.
소소한 재밋거리들도 풍부한 책이었다.
예컨대 축구 애호가라면 영원한 숙제인 ‘한국 축구와 일본 축구 중 누가 더 강한가’라는 질문.
이영표 작가는 이런 질문을 늘상 주기적으로 받는단다.
처음에는 자신있게 마냥 ‘대한민국’이라고 대답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망설이기도 한다고 한다.
질문이 몹시 단순한데도 무거운 질문이기 때문이란다.
그 챕터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는데 나는 괜히 빵 터졌다. (웃음)
『다른 것은 몰라도 축구만큼은 일본에 지고 싶지 않다.』
( 227쪽)
축구는 보는 것만 즐기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이영표 작가가 진솔하게 묘사하는 경험들이 공감이 되었음에 놀라웠다.
특히 대학교 축구팀에 들어가서 겪었던 시련은 깊게 이해가 되며 가슴이 찡했다.
저자는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여러 대학교에서 스카우트를 받았고 건국대에 입학했다.
당시에 국내 Big 4 인 대학 팀이었다.
당연히 결과를 즐길 수 있었고 자부심을 가질 만 했다. 건대 축구 선수중에 무려 6명이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영표선수는 주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에서 탈락했다.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어느 추운 겨울날에 운동장에 나와서 혼자 연습을 하다가 이영표선수는 크게 마음이 흔들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여태까지의 긴 축구 인생이 다 허무해보였고, 축구도 실력만으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는 좌절감이 들었다.
그러다 운동장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는 것이다.
왜 안 그랬겠는가. 자신은 팀 주장인데 동료들이 국가대표로 뽑혔고, 심지어 후배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축구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했다면 이영표는 퇴보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계속 축구에 전념했을 때 드디어 자신에게도 기회가 찾아왔고,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선발될 수 있었다. 이후 3개월 후에는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도, 이러한 예화들도 그냥 교훈적인 말들로 넘겨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다가온 <생각이 내가 된다>는 정말 새로웠고, 진실하게 다가왔다.
공인이나 스타 선수를 떠나서 한 사람의 진솔한 고백이 이토록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라고 느꼈다.
한국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청년이라면 한번쯤 읽어봐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정직은 어떤 의미에서 선택이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은 곧 우리의 인격이 된다.
( 91쪽)
선수들은 언론이나 팬들의 칭찬이 크면 클수록 똑같은 양의 비난과 비판이 그 뒤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론은 축구 팬들이 즐기는 것이지 선수가 즐기는 것이 아니다. 선수가 여론을 즐기려 하면 칭찬에 갇히게 되고, 칭찬에 갇힌 선수는 결국 비난에도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260쪽)
경기 결과를 바꾸는 가장 큰 힘은 기술이나 전술이 아니라 바로 멘탈이다.
기술을 다듬기 전에 먼저 마음을 다듬자!
( 231쪽)
육체적 고통과 내적 갈등 없이 무언가 얻을 수 있는 방법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충분한 노력과 실패 없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도 이 세상에는 없다.
노력에도 고통이 따르고 원하지 않은 결과에도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노력에서 오는 통증이 원하는 결과를 놓쳤을 때의 통증보다 더 견디기 쉽다.
( p. 236)
더디 자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을 두려워하라.
( 245쪽)